그리고 호주로 떠난 이유 한 가지
호주 유학을 결심한 건 단순했다. 청춘을 대표하는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대체제로 택했을 뿐이다. 가정 폭력으로 집에서 탈출한 그때부터 나는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폭력 앞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수준의 사법 시스템을 갖춘 나라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미래는 존중받아 마땅했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유학은 퇴사한 이후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회사에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한 만큼, 영어 공부를 빠듯하게 해서 겨우 원서 지원이 가능한 점수를 만들었고, 연이어 원서 접수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한 달이 훌쩍 흘렀다. 학교에서 장학금과 오퍼 레터가 한 2주 만에 발표가 나고, 비자 접수를 위한 신체검사와 서류들을 구비하느라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금세 또 한 달이 흘렀다. 그렇게 약 두 달만에 초스피드로 학생 비자를 받게 되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왜 한국을 떠나는지 묻지 않았다. 약 2년 간 내가 견뎌온 시간을 이해하므로 그저 축하했을 뿐. 왜 떠나는지 묻는 이들은 대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악의보다는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물어봤을 터. 나의 대답은 늘 달랐다. 깊은 대화로 이어가고 싶을 때는 '한국 사회가 병들고 있어서', 귀찮을 때는 '미세먼지 때문에', 어른들과 대화할 때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아서' 등. 가지각색으로 이유를 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왜 호주냐는 대답에는 오직 한 가지의 대답뿐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 한마디 안에 모든 이유를 포괄했다. 2024년의 나는 안티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혐오가 빗발치는 한국 사회보다 더 나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원했고, 더 나은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애쓰면서 살아도 제자리인 삶이 지겨웠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삶을 원했다. 마침, 호주에서는 업무시간 외 연락을 취하는 회사에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세 시가 되면 온 동네 카페가 문을 닫는 나라라니. 호주의 노동권은 한국보다 나을 게 뻔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살아본 적 있었지만, 둘 다 각기 다른 이유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호주를 다음 정착지로 결정하기 수월했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적절히 섞여 있고, 적당히 자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생태 친화적인 비교적 균형이 잘 잡힌 국가라고 여겨졌다.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조국에서 살 수 없는 처지가 슬퍼서 찔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겠구나 싶어서. 늘 테두리 밖에 있다고 느껴졌는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밖을 맴도는 삶으로 향하는 길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언제나 마음 놓고 쉴 나의 '집'이 없었으므로 아쉬울 건 없었다. 이제는 새로운 '집'을 짓는 데에 집중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