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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삼팩토리 Jul 29. 2023

모빌리티 스타트업 위한 최고의 허브 '드라이버리 베를린

유럽 최대의 모빌리티 스타트업 커뮤니티…물리적·재정적 지원과 아시아 시장

베를린 남쪽 템펠호프 지역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강 템펠호퍼 우퍼에는 상당히 인상적인 건물이 있다. 전체 건물이 적갈색의 벽돌로 지어진 울슈타인하우스(Ullsteinhaus). 건물의 육중한 무게감이 범상치 않아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게 된다.       


모빌리티 스타트업 허브 ‘드라이버리’가 자리한 베를린 템펠호프 남쪽의 울슈타인하우스. 사진=Dirk Ingo Franke


이 건물은 독일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울슈타인 출판사의 인쇄소로 1927년 지어졌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면적 8만 제곱미터, 높이 77미터의 거대한 건물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 나치 정권에 몰수되었다가 1952년에 다시 출판사 상속인에게 귀속되었다.  


이후 인쇄소는 축소되고, 건물 일부를 무역 및 패션 회사에 임대하는 등 상업용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건물 전체에 친환경적 난방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베를린 에너지 회사인 가작(GASAG)이 150만 유로를 투자해 열병합 발전소로 리모델링했다. 이는 전통적 건물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청사진이 되어 많은 역사적인 건물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2015년에는 로켓 인터넷(Rocket Internet)을 창업한 삼베어 형제(Samwer-Brüder)가 건물을 인수해 또 한번 화제가 된다. 로켓 인터넷은 베를린의 컴퍼니 빌더로 한국의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의 투자자로 유명하다. 이제는 글로벌 거대기업이 된 패션 스타트업 잘란도(Zalando), 밀키트 스타트업 헬로프레시(HelloFresh) 등에도 참여한 독일 스타트업계의 거물이다.  


이런 흥미로운 공간에 유럽 최대의 모빌리티 스타트업 커뮤니티 ‘드라이버리(The Drivery)’가 자리하고 있다.  


#업무공간과 제작소 비롯해 문제 해결 서비스도 제공 


드라이버리는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다. 코워킹 스페이스, 프로토타입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제작소 등 물리적인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초기 스타트업이 겪는 많은 문제를 커뮤니티 안에서 해결하도록 다양한 지적 서비스도 제공한다. 채용, 마케팅, 영업, 법률, 보험, 세무 등의 실무 문제 해결을 위한 서비스가 있고, 매치 메이킹, 액셀러레이팅, 인큐베이팅, 밸리데이션 등 스타트업 맞춤형 프로그램도 있다.    

   

드라이버리 내에서 자동차, 자전거, 전동스쿠터, 버스 등 다양한 모빌리티 수단을 직접 제작하고 실험할 수 있는 제작소. 사진=이은서


드라이버리는 2019년 베를린 울슈타인하우스에서 문을 열었다. 약 1만 제곱미터의 공간을 드라이버리 커뮤니티를 위해 제공한다. 현재 약 700명의 멤버가 있고 스타트업, 대기업을 비롯한 130개의 기업 멤버가 참여하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의 AI 개발을 위해 GPU 팜(GPU farm)이라는 이름으로 대용량 GPU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모빌리티 분야에 초점을 맞춰 멤버가 구성되기 때문에 커뮤니티 내에서 네트워킹이 실제 비즈니스로도 이어진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기존 대기업의 혁신 부서도 드라이버리 내에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차원의 교류가 이어질 수 있다.  


혼다(Honda) 같은 자동차 기업뿐만 아니라 콘티넨탈(Continental), 헬라(Hella) 등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의 일부 부서도 드라이버리에 상주한다. 현대자동차의 미래 모빌리티 핵심 분야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현대크래들(Hyundai Cradle)도 드라이버리의 멤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행사를 함께 유치한다.  

비전 AI 기반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Driver Monitoring System)으로 유럽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한국계 AI스타트업 노타(Nota)도 최근 멤버로 합류했다. 


#타고난 연결자 드라이버리 CEO, 티몬 럽 


드라이버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위해 울슈타인 하우스를 방문한 날, 마침 한국의 모빌리티 디자인 기업 클리오 디자인(Kliodesign)이 드라이버리 투어를 위해 먼길을 달려와 있었다.  


클리오 디자인의 윤정채 실장은 “한국에서 의왕시와 협력해서 모빌리티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데, 유럽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다가 드라이버리를 알게 되었다”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윤 실장은 “지금까지 경험한 커뮤니티 중 가장 쾌적하고, 모빌리티에 최적화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며 드라이버리의 훌륭한 인프라에 감탄했다.        


한국 모빌리티 디자인 기업 클리오 디자인과 미팅 중인 드라이버리 CEO 티몬 럽(왼쪽). 사진=이은서


놀랍게도 공간을 소개하고, 스타트업을 만나는 일은 모두 드라이버리 CEO 티몬 럽(Timon Rupp)이 직접 했다. 물론 드라이버리에도 공간을 관리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세일즈하는 역할을 맡은 직원들이 있다. 하지만 티몬은 “이곳에 오려는 스타트업들은 직접 만나 소개를 들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것이 흥미롭고, 그들의 강점을 알아야 누구와 어떻게 연결을 해줄지 구체화된다”며 현장형 경영 철학을 밝혔다.  


실제로 투어를 진행하는 동안 대부분의 멤버가 티몬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방문자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며, 서로 잠재 협력사가 될 수 있음을 알렸다. 30분으로 짧게 예정됐던 투어가 거의 1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티의 힘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드라이버리 멤버로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스타트업 일렉시어(Elexir)는 “드라이버리는 모빌리티 스타트업으로서는 최적화된 환경이다. 티몬과 커뮤니티의 다양한 네트워크 덕분에 투자에 관한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며 드라이버리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드라이버리 로비. 우크라이나 국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이버리의 로고가 보인다. 독일 스타트업들은 우크라이나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사진=이은서 제공


티몬은 독일 기업 오스람(Osram)에서 자동차 부문 아시아 마케팅 매니저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오랜 기간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 지역의 자동차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이후 오스람 아시아 태평양의 R&D 부문 부사장을 역임했다. 그의 타고난 창업가 정신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이후 스마트 홈·오피스 분야의 IoT 플랫폼 기업인 라이티파이(Lightify)를 창업해 스타트업 세계에 입문했다.  

라이티파이를 성공적으로 엑시트(Exit)한 후 모빌리티 전문 투자사 헬라 벤처스(Hella Ventures)에 합류에 베를린 모빌리티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끌었다. 이렇게 축적된 모든 경험은 드라이버리에서 한껏 발휘되고 있다. 티몬은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전통 모빌리티 기업과 교류되도록 두 팔 걷고 나서는 행동하는 경영자다.        


드라이버리 CEO 티몬 럽(가운데)은 탁월한 네트워킹 능력으로 아시아 국가들과도 협력해 일하고 있다. 사진=thedrivery.com


드라이버리는 베를린 기반의 유럽 모빌리티 스타트업 생태계지만, 이런 티몬의 네트워킹 능력 덕분에 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로 뻗어가고 있다. 상하이의 파트너와 함께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상하이 자딩 구에 드라이버리 차이나(Drivery China)를 론칭해서 중국으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유럽의 모빌리티 스타트업에게 중국 현지의 네트워킹과 공간을 제공한다.  


2021년에는 일본 파트너 크로스비(Crossbie)와 협력해 드라이버리 재팬(Drivery Japan)도 문을 열었다. 드라이버리 재팬은 요코하마시와의 협력을 통해 독일 스타트업이 일본에 진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도시 기반 모빌리티 관련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나 드라이버리의 지원을 받아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티몬은 “이제 한국 차례이다. 유럽이 전통 모빌리티의 강자였다면, 미래 모빌리티는 아시아가 주도하는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전통과 미래를 연결하는 것이 드라이버리의 역할”이라며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에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유럽 최대 규모의 모빌리티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이처럼 긴밀하게 아시아 국가의 파트너들과 협력해 일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연결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한 사람의 역량이 잘 발휘된 덕분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 나갈 거대하고 역동적인 생태계가 기대된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unseo.yi@123factory.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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