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디서나 사용하는 협업 툴 '깃랩' 비롯해 팬데믹 기간 급성장
코로나 2년. 유럽에서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를 비롯한 코로나 관련 규제를 점점 완화하고 있다. 코로나의 ‘끝’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업에서는 코로나 이후에 업무 환경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 팬데믹 기간에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는 일상이 되었다. 기존 대면 근무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근무 형태를 고민하는 좋은 실험의 시간을 가졌다. 근무 형태와 무관하게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고 근무 환경을 최적화하는 방법과 툴도 과감하게 도입했다.
특히 스타트업은 초기 단계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팀을 꾸리고, 업무환경을 구축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툴을 빠르게 도입하고 평가하며 최적의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그룹이다. 따라서 스타트업 스스로가 협업 툴을 사용하는 적극적인 사용자이자 직접 툴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되기도 한다. 유럽 스타트업들은 어떤 업무 협업 툴을 쓸까? 효율적인 업무 협업 툴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멘티미터·구글 잼보드·뮤랄·미로 등 화상회의 툴 '필수'
베를린 기반 암호화폐 핀테크 스타트업 누리(Nuri)에서는 새로운 직원이 합류하면 회사를 잘 이해하고 빠르게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일종의 위키(Wiki) 역할을 하는 컨플루언스(Confluence)를 사용한다. 코드에 접속하는 방법, 컴퓨터에서 코드를 실행하는 방법, 코드 변경 방법 등의 프로세스를 컨플루언스를 통해 안내한다. 모든 과정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템플릿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동료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동기화(synchronize)할 필요가 없다.
컨플루언스는 아틀라시안에서 개발한 자바 기반의 소프트웨어다. 팀 내 공동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일정, 목표, 할 일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관련 테이터를 한 곳에 정리할 수 있다. 특히 문서 기반으로 협업과 공유가 필요한 경우 편집과 리뷰를 공동으로 할 수 있어 가장 적합한 툴이라고 할 수 있다.
원격근무가 본격화되면서 화상회의 툴이 스타트업에게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화상회의 툴을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화상회의에서 자신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부가적인 툴을 잘 사용하는 것도 이제는 필수가 되었다. 영국의 브래킷(Bracket)은 기업과 스타트업의 팀 워크숍을 전문적으로 이끄는 코칭 회사로 팀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코로나 이후 일의 형태와 환경이 바뀌면서 브래킷은 특히 협업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화상회의’에서 도움이 되는 툴을 소개했다.
가장 먼저 소개된 곳은 스톡홀름의 스타트업 멘티미터(Mentimeter)이다. 멘티미터는 실시간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결과를 시각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앱이다. 웹에서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온라인 수업에서 많이 활용하지만, 특히 유럽 스타트업에서는 회의를 위한 브레인스토밍 앱으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멘티미터는 전 세계 20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했으며, 스웨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이 되었다.
브래킷은 구글 잼보드(Google Jamboard), 뮤랄(Mural), 미로(Miro)도 화상회의에 유용한 도구로 소개했다. 셋 모두 실시간 디지털 보드로 브레인스토밍, 마인드맵 등의 기능을 가진 일종의 온라인 화이트보드 프로그램이다. 구글 잼보드는 구글 계정 안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미로와 뮤랄은 기능이 유사하지만 미로는 슬랙과 노션에 연동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미로는 샌프란시스코와 암스테르담에 공동 본사를 두고 있어 유럽 환경에 더 친근하다.
#원격근무와 적합한 협업 툴 마련하는 것도 복지
대기업이나 유명한 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을 직장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혁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업무 환경 최적화를 위해 협업 툴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 스타트업에서는 신규 직원을 교육하는 온보딩(onboarding) 과정에서부터 협업 툴을 중요하게 소개한다. 이 과정을 일종의 ‘합을 맞추는(culture check)’라고 생각해서 채용과정에서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깃랩(GitLab)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스타트업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위한 협업 플랫폼이다. 깃랩 자체가 원격근무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사 중 하나다. 이제는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 작년 10월 나스닥 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한 후 기업가치가 약 20조 원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이 되었다.
깃랩은 미국의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선정된 이후, 잠시 샌프란시스코의 사무실에 사람이 북적거리던 시절을 보냈지만, 그 시기는 금방 지나갔다. 전 세계의 개발 인재들을 채용하는 데 열을 올리던 깃랩에게 원격근무는 필수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부터 슬랙, 줌, 깃랩, 구글 독스를 사용해 원격근무를 최적화했다.
협업 툴을 잘 사용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차를 맞추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깃랩은 협업 툴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회의에 시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 근무자의 시간에 맞추어 회의할 수 있는 ‘비실시간(asynchronous)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 참석할 수 없더라도 질문하고 회신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회의가 미리 준비됐고, 최종 결과를 아주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를 통해 깃랩만의 핸드북이 만들어졌다.
깃랩의 CEO 시드 시브란디(Sid Sijbrandij)는 유럽 스타트업 전문 매거진 시프티드(sifted)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러한 환경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지시와 관리를 통해서 일하는 사람은 깃랩과 맞지 않는다. 스스로 관리하고,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깃랩에 적합하다”고 회사의 문화를 설명했다. 그는 “매주 깃랩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 3000명이 지원하는데, 대부분은 우리의 핸드북을 보고 우리의 가치, 의사소통 방식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며 깃랩의 협업 방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런던의 결제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 패들(Paddle)은 일단 모든 근무 방식 중에서도 ‘디지털 우선(digital first) 방식을 채택해 직원들이 각자 의미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것에 큰 비용을 투자했다.
런던 사무실은 필요할 때 예약해서 사용할 수 있는 열려 있는 협업 공간일 뿐이고,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디지털 도구들을 활용한다. 자료 공유와 아카이빙을 위해서는 뉴클리노(Nuclino), 노션(Notion), 컨플루언스(Confluence), 구글 드라이브(Google Drive)를, 기획과 프로젝트 관리에는 트렐로(Trello), 먼데이(monday), 아사나(Asana)를 사용한다. 아이디어를 모을 때는 미로(miro)와 매시업(Mash-up)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슬랙, 줌, 팀스, 왓츠앱(WhatsApp)을 사용한다.
또 모든 직원이 1년에 6주 동안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내비게이트(Navigate)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전 세계 인재들의 다양한 업무 방식을 아우르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직원들이 내비게이트 프로그램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른 나라에서 일할 때 필요한 에어비앤비 크레딧 등을 일부 지원해주기도 한다. 패들만의 독특한 복지 혜택이다.
포르투갈 섬 마데이라는 축구선수 호날두의 출생지로 유명하지만, 유럽 스타트업에게는 ‘디지털 노마드 마을’로 유명하다. 코로나로 원격 근무가 일상이 되자, 오히려 이 작은 마을에는 사람이 많아졌다. 마데이라 지방 정부가 디지털 노마드와 스타트업을 유치하려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년씩 이곳에 거주하며 전 세계를 일터 삼아 일하고 있는 것이다.
마데이라 지방정부는 마데이라의 폰타 도 솔(Ponta do Sol)에 디지털 노마드 마을을 만들고, 비자 지원, 숙박 및 정보 공유, 그 밖에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지원했다. 인구 부족으로 활기를 잃어가던 섬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단기 프로젝트로 시작됐지만, 지역 주민과 외부에서 온 사람들 모두에게 호응이 좋아 최소 2024년까지 더 이어질 예정이다.
인터넷망만 안정적이라면 스페인의 바닷가, 그리스의 작은 섬이 일터가 될 수 있다. 유럽의 스타트업은 이런 업무 환경 변화를 재빠르게 포착하고, 더욱 매력적인 일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낸다. ‘일의 미래’를 이미 많은 스타트업에서 호기롭게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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