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보험, 헬스케어 등 소비욕구 변화 포착한 스타트업이 전통 강자들
1인 가구 증가와 저출산·고령화는 산업구조 변화의 주요 키워드다. 지난 2년 동안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코로나’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도 그 영향 아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성장 속도를 가속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한 것이 1차적인 요인이다. 또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중요해지면서 디지털 트렌드를 움직이는 ‘MZ세대’의 역할도 한몫했다.
#집사 #펫스타 #멍스타 #댕댕이 #캣스타그램 #펫튜브와 같은 해시태그가 트렌드 세터 역할을 하는 MZ세대에게 핫한 키워드가 되면서 시장도 함께 움직였다. 이들은 반려동물 관련 사진, 영상, 콘텐츠를 이용해 놀고 협업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의사소통하면서 전 세대의 소비를 끌어냈다.
펫케어 산업의 성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60여 개국의 반려동물 개체수는 2016년 16.5억 마리에서 2020년 18.7억 마리로 약 13.5% 증가했으며, 2026년에는 19.7억 마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글로벌 펫케어 시장은 전년 대비 6.9% 성장한 1421억 달러(172조 원)를 기록했으며, 2026년에는 2177억 달러(26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항목별 비중을 살펴보면, 개·고양이 사료 등 펫푸드가 1021억 달러(123조 원)로 71.8%를 차지하고, 헬스케어 용품, 장난감 등 반려동물용 제품이 400억 달러(48조 원)로 28.2%를 차지한다.
펫케어 산업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펫푸드 시장만 살펴보자면, 독일과 미국이 수출·수입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수출입 점유율 10위권 국가 중 8개국은 북미·유럽이다. 이 지역은 반려동물 시장이 일찍부터 발달해 이미 성숙기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높은 성숙도를 자랑하는 유럽의 펫케어 산업에서 스타트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 산업의 ‘오래된 미래’를 점쳐보자.
#반려견 밀키트 스타트업 ‘버터넛박스’
펫푸드 산업은 유럽의 전통 강자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도전하기 힘든 분야다. 그럼에도 소비욕구와 패턴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 기회를 노리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런던의 스타트업 버터넛박스(Butternut Box)는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트렌트를 재빠르게 포착했다. 버터넛박스는 당근, 브로콜리 등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안전하고 건강한 원재료를 가지고 보존료나 첨가제 없이 요리한 펫푸드 제품을 집으로 배송한다. 전 제품을 사람이 직접 시식하고 테스트한다.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반려동물의 체중, 품종, 활동 수준, 연령 등을 고려한 칼로리에 맞춰 만든 맞춤형 식단을 영국 전 지역에 무료배송 하고 있다. 밀키트 사업으로 성공한 독일의 헬로프레시(HelloFresho)처럼 구독모델을 채택해 ‘반려견을 위한 헬로프레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반려견을 위해 짠 맞춤형 식단을 더 많은 개가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창업자들은 2016년에 회사를 설립했고, 2021년 8월 시리즈 C 단계, 554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누적 1.1억 달러 투자를 기록했다.
#펫보험에 집중하는 ‘보오트바이매니’
핀테크, 인슈어테크는 전통기업과 스타트업 모두에 가장 핫한 영역이다. 대부분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은 여러 분야의 보험을 다루지만, 런던의 보오트바이매니(Bought By Many)는 오로지 반려동물을 위한 펫보험에 집중한다. 그래서 반려동물 관련 유럽의 스타트업에서 빠지지 않고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12년 설립된 보오트바이매니는 반려동물 전 생애 동안 1만 5000파운드(약 2400만 원) 규모의 수의사 비용을 보장하고, 보험 가입·청구 절차를 모두 온라인으로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온라인 수의사 상담 서비스 퍼스트벳(FirstVet)과 제휴해 무료 상담을 제공하고, 반려동물 맞춤형 약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서비스 벳박스(VetBox)와도 제휴해 할인해준다.
벳박스는 2016년 수의사가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지난 12월 보오트바이매니가 인수했다. 보오트바이매니는 조류, 포유류, 파충류 등을 위한 반려동물 보험을 제공하는 엑소틱 디렉트(Exotic Direct), 디지털 제품 개발을 돕는 플랫폼 코티디아(Cotidia)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슈어테크 분야의 주도권을 기존의 대형 보험사들이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산업 분야의 가치사슬이 전통 기업 위주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오트바이매니는 그 예상을 뛰어넘고, 한 분야의 전문성을 부각하며 반려동물 보험 분야의 강자로 우뚝 섰다. 오히려 보험 플랫폼을 기반으로 반려동물 산업 전반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모양새다.
#유럽 최대 온라인 수의사 서비스 ‘퍼스트벳’
보오트바이매니가 보험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사업이 되는 데에 일조한 퍼스트벳(FirstVet)은 온라인 수의사 상담 플랫폼으로 2016년 스톡홀름에서 설립됐다. 1년 365일, 24시간 온라인 수의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병원에 가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 반려동물을 돌보는 데 조언이 필요한 경우, 응급 상황 등에서 온라인을 통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퍼스트벳에는 5년 이상의 경험이 있는 수의사만 등록할 수 있다. 고객은 앱을 다운로드한 뒤 이메일 주소와 휴대폰 번호만 있으면 간단하게 계정을 만들고 바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현재는 스웨덴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영국, 독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0년에는 미국에 진출해 이미 7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지역별로 평균 450여 명의 수의사를 보유하고 있다.
사용자가 시간당 지불하는 상담료가 기본 수익원이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은 다양한 보험회사와의 제휴다. 현재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의 보험사들과 제휴를 맺어, 반려동물보험 가입시 퍼스트벳 상담을 무료로 제공한다. 퍼스트벳은 보험사들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이처럼 최근 펫케어 산업의 주요 트렌드는 ‘원스톱 서비스 모델’이다. 보험이 온라인 의료 상담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기도 하고, 온라인 의료 상담 앱이 수의사를 연결하고 반려용품숍까지 추천해주는 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펫테크, 펫금융, 펫리테일 등 다른 분야에서도 누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필요 서비스를 빠르게 결합하는지가 관건이다. 이는 고객의 수요를 철저히 분석하고, 사용자 경험을 섬세하게 조사해 이루어져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수요가 늘었다’라고 평면적으로 산업 동향을 분석하기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위험 요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제조 및 물류 분야의 공급망에 차질이 생겨, 빠르게 성장하던 이커머스 시장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온라인 기반 사업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또 경기 침체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면서 반려동물에 돈을 아끼지 않던 소비 흐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펫케어 산업의 강자였던 유럽 시장은 많은 스타트업에게 ‘오래된 미래’로서 탐구해봐야 할 영역이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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