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이지쿡아시아' 이민철 대표의 하루를 통해 엿본 스타트업의 생활
△7:30~9:30 주문 확인 및 배송 준비(아마존, DPD, DHL 등 독일 물류 서비스에 대해 섭렵했다.)
△9:30~10:00 아이 방학 축구 캠프 데려다주기(독일은 ‘학원차’가 없어서 일하는 부모에게 아이 일정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10:00~11:00 집중 업무시간(수시로 미팅이 있어서 집중 업무 시간을 갖기 쉽지 않다. 그래도 확보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11:00~12:00 팀 미팅(매주 월요일 팀 미팅은 일주일의 업무 정리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12:00~13:30 언론 인터뷰(사무실과 물류센터를 같이 쓰고 있어 중간중간 출고 업무도 해야 한다.)
△13:30~14:30 팀 미팅 2(30분을 계획했던 미팅이 예정 시간을 초과했다. 매 사안이 다 중요한 스타트업의 일상이다.)
△15:00~16:00 외부 협력사 미팅(영국 밀키트 플랫폼과의 협력 논의 미팅. 코로나로 대부분의 미팅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16:00~16:30 아이 데려오기
△16:30~17:00 인턴 등 직원들과 하루 일과 정리(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다가 이쯤 서로 업무 공유하며 간단히 빵을 먹는다.)
△17:00~20:00 가족과 시간 보내기(저녁 미팅이나 행사가 있는 경우도 많다.)
△20:00~ 아이들 취침 후 남은 업무 정리(스타트업 대표에게 퇴근은 없다!)
베를린에서 아시아 밀키트 스타트업 ‘이지쿡아시아(EasyCookAsia)’를 창업한 이민철 대표의 일과다. 베를린의 스타트업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베를린 북쪽 판코 지역에 위치한 이지쿡 사무실에 방문해 직접 관찰했다.
#까다로운 독일 소비자에게 재빠르게 대응한 한국 창업자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말아달라, 너무 맵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레시피를 개발해 달라, 양은 많게, 비용은 더 싸게, 또는 양은 적지만 다양한 가짓수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아시아 밀키트를 판매하는 베를린의 스타트업 이지쿡아시아에게 독일 소비자들이 보내준 피드백이다.
두바이를 비롯한 중동 여러 지역과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외국 생활을 10년 넘게 한 이민철 대표도 “독일 소비자만큼 까다로우면서도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독일 시장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운 시장이기 때문에 포기하기보다 ‘이들이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굴까’를 곰곰 생각하며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독일 특유의 음식문화부터 아시아 음식에 대한 이들의 기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분석하기 위해 고객의 리뷰를 모두 꼼꼼하게 분석했다. 한국인답게 추진력과 속도에 자신 있던 이 대표는 이들의 의견을 즉각 반영해 제품을 개선해 나갔다.
1차 피봇 과정을 거쳐 사업모델이 완성됐고, 이제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다. 처음 이지쿡아시아의 밀키트 박스는 채소, 고기 등 신선식품이 포함된 일반적인 모델이었다. 도시에 살면서 이국적이고 힙한 것에 관심이 많은 20대를 타깃으로 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실제 아시아 밀키트 주요 구매층은 가족 단위의 30대로 도심이 아닌 외곽에 거주했다. 아시아 음식을 직접 요리하고 싶지만 아시아 식품점이 멀어 도전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쉽게 배송을 받아, 일주일에 한 끼 정도 특별한 식단을 경험해보려 했던 것이다.
아침과 저녁은 빵으로, 점심은 회사나 학교에서 먹는 문화이기 때문에 하루에 한 끼를 요리하는 것도 독일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드문 일이다. 따라서 오래 보관이 가능하지만 소량 포장되어 ‘특별한’ 요리가 먹고 싶을 때 바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획이 필요했다. 이민철 대표는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우리의 모토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고 이때를 회고했다. 레시피에 대한 설명을 더 자세히 담고, 밀키트 안에 음식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 그 나라의 문화에 관한 소개도 추가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에게 ‘아시아 문화로의 여행’을 보내준다는 생각으로 배송 박스도 여행가방 모양으로 제작했다. 여기에 아시아 각국의 관광공사와 협력해 각종 관광 기념품도 선물로 넣었다.
과감하게 신선식품은 제외하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주요 건조 식품과 향신료 및 양념 위주의 제품으로 밀키트를 재구성해 재빠르게 대처한 그들의 변신은 성공했다. 2년 만에 ‘제품기획-생산-포장-운송’까지 체계를 잡았고,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스케일 업
이지쿡아시아는 그렇게 만 2년간 이 시장의 생리를 파악하고 체계를 갖추는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코로나가 오면서 온라인 밀키트 시장에 활기가 돌았고, ‘오징어 게임’이 대박을 터뜨리자 달고나 등을 만들 수 있는 ‘코리아 게임 박스(Korea Game Box)’를 출시해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화를 판다’는 콘셉트가 그야말로 ‘먹혔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4명의 풀타임 직원과 1명의 파트타임 직원, 1명의 인턴과 상시 프리랜서 번역가 1명으로 운영하던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규모를 확장할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매년 5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생긴다는 유럽 스타트업의 허브 베를린, 그리고 그 중 30%는 창업 2년 만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상품 및 서비스 개발, 매출 부진, 신규 투자 유치 실패, 자금 고갈 등으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너지 못한 채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런 치열한 전장에서 ‘한국’과 ‘아시아’는 꽤 가능성 있는 아이템이다.
실제로 이민철 대표의 하루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은 이지쿡아시아와 협력하고 싶어하는 영국과 유럽의 다양한 푸드 관련 업체들의 러브콜이었다. 이들과 협력을 의논하는 미팅을 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틈틈이 올 상반기 유치할 투자를 위해 IR 자료를 보완하고, 그 와중에 아이들까지 데리러 가는 것을 보니 ‘생활 스타트업인’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이 대표는 “베를린이라는 생태계가 주는 든든한 지원책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지멘스(Siemens)에서 후원하는 스타트업 대회에서 상을 받아 순조롭게 출발했고, 이후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베를린(Startup incubator Berlin)에서 창업자 한 명당 월 2000유로, 1년 동안 총 6만 유로의 자금을 지원 받았다. 이후 베를린의 앤젤 투자자로부터 바로 초기 자금 15만 유로를 받아 안정적으로 매출을 이뤄나가는 바탕을 만들었다.
이제 이지쿡아시아는 신선식품까지 포함해 생산, 물류와 배송, 오퍼레이션의 규모를 확장하고 체계를 잡기 위한 두 번째 투자 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주로 푸드테크에 투자하는 VC(벤처캐피털)의 문을 두드려보고, 독일 식품회사와의 콜라보나 투자도 고려하고 있다. 한국의 밀키트 회사나 VC도 고려 대상이다. 독일과 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과 대만을 든든한 배경으로 가진 창업자들이 있으니, 두 문화권에서 기회를 최대한 많이 발견하고 문을 두드려 볼 생각이다.
창업이 뭔지 모르고 도전했다가 그동안 가장 어려운 길로만 왔다는 이민철 대표. 이제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독일에 진출할 때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도울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그는 더 큰 무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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