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품·지속가능성에 가치 둔 '착한 화장품'…
커버 사진 출처=예쁘다 홈페이지
'K-뷰티'로 승부하는 독일 화장품 스타트업 '예쁘다'
한국 화장품·지속가능성에 가치 둔 '착한 화장품'…온라인·SNS 통해 1년 만에 급성장
4~5년 전부터 독일 드럭스토어에 한국산 마스크팩, BB크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된 포장이 그대로 독일 시장에 소개되는 것을 보고 한국 화장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백화점, 드럭스토어 등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에서 ‘Korea’라는 단어가 안 보이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만큼 한국산 화장품 또는 한국 스타일의 스킨케어 제품이 대중화되었다.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뉴미디어 덕택에 전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의 영향 덕분이다.
실제로 예전 같으면 유행이 퍼지는 데 3~4년은 족히 걸렸을 것 같은 것도 이제는 유튜브 조회 수에 따라 실시간으로 전파된다. 코로나 시국에 한국에서 시작된 ‘달고나 커피 만들기 챌린지’가 전 세계를 강타하더니, 바로 독일 슈퍼 매대의 인스턴트 커피 앞에 ‘Dalgona용으로 사용 가능’이라는 광고판이 붙기 시작한 것이 그 예다. 독일어 번역 없이 한국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도 흥미로웠고, 이후 몇몇 카페에서 ‘달고나 커피’를 메뉴로 출시한 것을 보고 여기가 한국인지 독일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었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이제는 공간적·시간적 제약과 차이가 극복되고 있다.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것은 더 빨리 전파된다. 그 중에 최근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한국 뷰티 관련 제품이다. 녹차, 달팽이, 쌀, 인삼 등 자연에서 추출한 성분이 함유된 마스크팩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독일에서는 ‘전통적이면서도 혁신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방 성분이 함유된 기초 화장품은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신박한 제품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코스메틱 유럽 2019’에 따르면, 유럽은 가장 큰 화장품 시장 규모가 가장 크다. 2018년 유럽 화장품 시장 규모는 총 786억 유로(약 106조 원)이며, 이 중 독일이 약 17.6%로 유럽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즉, 독일 시장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유럽에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 시장에 ‘K-Beauty’를 모토로 뛰어든 스타트업이 있다. ‘예쁘다(YEPODA)’의 창업자이자 CEO 샌더 반 블라델(Sander van Bladel)과 박은영 마케팅팀장을 만났다.
#친구들에게 부탁받던 한국 화장품의 비밀이 궁금했다
‘예쁘다’는 지난 2020년 2월 베를린에서 설립되었다. 창업자이자 CEO인 샌더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국인인 어머니 덕분에 자주 한국을 방문했고, 네덜란드인인 아버지도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 일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와 산업에 익숙했다. 대학생이 되어 한국에 갈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샌더는 반복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에 간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면, ‘한국 화장품 좀 사다 줘’라고 늘 부탁을 받았어요. 화장품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게 반복이 되니까 궁금해지더라고요. 한국 화장품에 어떤 비밀이 있을까?”
샌더는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스타트업 투자회사 ‘로켓 인터넷’에 입사하면서 베를린으로 왔다. 이후 이커머스 분야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베로니카 슈트로트만을 만나 의기투합해 ‘예쁘다’를 창업했다. 이어 같은 이커머스 회사에서 근무했던 박은영 씨가 합류해 초기 멤버로 힘찬 출발을 하게 된다.
화장품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K-Beauty에 기반을 둘 것, 화장품 생산에서 판매까지 전 과정이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기준으로 설계될 것, 이 두 가지였다. “한국의 뷰티 산업은 독일보다 많이 앞서 있습니다. 한국에서 화장품 연구개발에 투자되는 비용은 연간 6억 유로가량이니, 당연히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샌더는 한국 화장품 산업의 구조와 규모를 살펴보니, K-Beauty가 왜 성공할 수밖에 없는지가 바로 이해됐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가진 스킨케어 루틴이 문화적으로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세수한 후, (독일 화장품 업계 부동의 1위인) 니베아 크림만 바르면 끝이던 독일식 스킨케어 문화에 비해 ‘클렌징-세안-기초-에센스-보습-영양’ 등에 이르는 한국식 스킨케어 루틴은 아침과 밤에 하는 피부와 자기 몸을 위한 일종의 집중과 명상의 시간처럼 여겨졌다. “(단순히 피부를 위한 것만이 아닌) 전체론적 관점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셀프 케어의 시간 같아서 이런 ‘문화적’인 요소를 유럽에 소개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습니다.”
그래서 2019년 1월에 처음으로 회사를 설립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샌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 개발이었다. 한국에 있는 연구소와 협력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제로 상태인 스타트업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 과정이 창업의 전 과정에서 가장 도전적인 시간이었어요. 스타트업으로서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화장품 용기도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를 쓰고, 포장재도 재생 종이를 사용하고 싶었어요. 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도 화학적인 성분은 다 빼고 자연 성분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미쳤다(You are crazy)’였습니다.”
그래도 샌더는 자신의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유리 용기로 제작하면 파손 위험이 있고 무게도 더 나가기 때문에 배송 등에서 더 까다롭지만, 단순히 화장품 판매 회사가 아닌 ‘스타트업’으로서의 가치에서 지속가능성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가자는 파트너들의 제안을 다 물리쳤다. 동물실험이 없는 생산, 실리콘, 파라벤, 마이크로 플라스틱 등 피부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유해한 성분 배제, 모든 제품에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는 비건 성분 사용, 배송에서도 DHL GoGreen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기후 중립적으로 진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총 매출의 1%를 ‘1% for the Planet’에 기부하는 등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제품 개발을 위해 20여 군데 연구소와 미팅을 했고, 샌더의 아이디어에 동의한 생산자를 여섯 번이나 찾아가서 제품 생산에 협의하기까지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코로나와 SNS, 시작과 성장
예쁘다는 독일 스타트업이지만, K-Beauty를 가장 큰 모토로 삼고 있다. ‘한국’이라는 가치에 일종의 베팅을 한 셈이다. ‘K 열풍’이 끝나고 나면 이 유행도 사그러들지 않을까. 샌더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스위스 시계, 독일 자동차처럼 국가를 브랜딩한 산업들이 많고, 제품의 질이 우수하다면 그 가치는 지속됩니다. 한국 화장품도 하나의 고유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유행의 물결을 탔다기보다는 ‘유니크’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독일에 한국인이 직접 창업한 소규모 화장품 가게들은 종종 눈에 띄지만, 존재감이 크지는 않다. 한국의 미샤(Missha)는 독일에 자사 브랜드로 진출해 현지 매장을 보유한 유일한 기업이지만 아직 대도시에 진출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실제로 K-Beauty 자체를 간판 삼아 현지인이 직접 창업한 회사로서는 예쁘다가 유일무이하다.
예쁘다는 1년의 제품 개발과정을 거친 후 회사를 설립하고 지난 2020년 4월 첫 제품을 내놨다.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 코로나가 시작을 늦추게 된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 걸림돌은 도약의 디딤돌이기도 했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록다운이 시작되자 온라인 쇼핑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예쁘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첫 제품을 론칭하고 6개월 동안은 매달 2배씩 매출이 증가했다. 지금도 매달 평균 179% 정도씩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로레알, 니베아처럼 전통적인 강자들뿐만 아니라 Esprit, Primark, H&M 등 의류업체들도 화장품 라인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화학 첨가물을 최소화하거나 없앤 약국 화장품들까지 고려하자면 유럽 화장품 시장은 그야말로 거대하다. 거기에 헬로 바디, 솔티드뷰티, 융글뤽, 벨리비아 등 개인 맞춤형 화장품, 구독형 화장품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스타트업들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만으로 연간 1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던 뷰티 스타트업 헬로 바디가 작년 7월 독일의 뷰티케어 & 홈케어 대기업인 헨켈(Henkel)에 인수되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것만 봐도 화장품 스타트업의 위상이 느껴진다. 이처럼 화장품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디지털화’와 ‘젊은 세대’를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 스타트업의 노하우를 배우려 대기업들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소위 마케팅의 꽃은 화장품 산업이라고들 한다. 예쁘다의 박은영 마케팅팀장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존에는 유명한 회사의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이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구독하는 사람에게서 신제품 정보를 얻는 세상입니다. 평소 익숙하지 않은 신기한 제품이 출시되면 사용법을 몰라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도 지금은 SNS나 뉴미디어를 통해 제품 정보를 얻고, 자신의 피부 유형에 맞는 화장품 사용법, 피부 관리법을 익힙니다. 그래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러니 이제 막 시작한 신생 브랜드 예쁘다의 성장, 그리고 K-Beauty의 유행은 유럽에서 이제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은서 eunseo.yi@123factory.de
*본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을 편집 및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