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보쉬'가 운영하는 기술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9월 30일까지
영어 단어 ‘harbor(harbour)’는 항구, 피난처, 보금자리, 비행기 격납고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곳이 ‘스타트업 하버(Startup Harbour)’를 다녀왔다. 스타트업 하버는 베를린의 보쉬 IoT 캠퍼스에 있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이다.
베를린 템펠호프 남쪽 지역에는 베를린 근교 도시 포츠담에서 텔토우(Teltow)를 지나 베를린을 동서로 가로질러 슈프레발트까지 연결되는 텔토우 운하(Teltowkanal)는 베를린 남쪽 지역의 중요한 물자 교역을 위한 수로로 활용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스타트업 하버가 위치한 템펠호프 항구(Tempelhofhafen)는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뉘어져 있을 때, 미국이 서베를린을 원조하기 위해 템펠호프 공항으로 운송된 물자를 보관하던 물자 창고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서베를린은 항공으로 운송 받은 물자를 텔토우 운하를 통해 각 지역에 배송했다.
템펠호프 항구의 랜드마크는 울슈타인하우스이다. 울슈타인하우스는 1927년에 지어진 당시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다. 이후 울슈타인하우스의 뒤쪽으로 운하를 따라 줄지어 세 동의 산업 단지가 건설되었다. 맨 첫 번째 건물에는 독일 최대 자동차 부품 회사 중 하나인 헬라(Hella, 현 Forvia)의 혁신 부서가, 두 번째 건물에는 루프트한자 CS부문인 인터치(InTouch)계열사가, 세 번째 건물에 스타트업 하버가 위치한 보쉬 IoT 캠퍼스가 자리 잡았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 독일 대기업들이 모인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직접 방문해보았다.
보쉬는 독일 대표 기업 중 하나로 1886년 슈투트가르트 근교 게어링엔(Gerlingen)에서 설립됐다. 정밀기계, 전기기계 생산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자동차 부품, 가전제품, 전기 공구 등 다양한 산업제품을 생산한다. 동시에 미래 모빌리티와 IoT 분야에서 다양한 혁신을 고민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보쉬가 가장 중점을 두고 개발한 영역은 소프트웨어 부문이다. 세계화에 따른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제조업에서 신산업으로 확장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자동차 부품 생산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량 내 운전자를 보조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나이트 비전과 같은 시스템 개발이 보쉬의 혁신을 가속했다. 전동 공구에는 스마트 기능을 탑재해 웹 기반 공구와 가전제품을 개발하는 등 미래 사업 전략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쉬는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소프트웨어, 인터넷 기반 비즈니스 모델, 데이터 보호 영역에 많은 투자를 한다. 이후 이 분야를 모두 결합해 자율주행, 스마트 홈, 공장 기계 간 자율 통신을 하는 스마트 팩토리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쉬는 베를린, 쾰른, 남부 소도시 이멘슈타트(Immenstaad), 바이블링엔(Waiblingen) 총 네 군데의 IoT 캠퍼스를 설립했다. IoT 캠퍼스가 주력하는 산업 분야는 농업기술(AgTech), 전문 서비스 영역(재무, 법률,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스마트 시티로 이 영역 전반에서 혁신을 발굴해 보쉬의 사업과 연결하는 것이 과제다.
그 중에서도 베를린의 IoT 캠퍼스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300명 이상의 직원이 IoT와 디지털 혁신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IoT 관련 스타트업을 모아 일종의 미래 혁신 IoT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보쉬 IoT 캠퍼스는 스타트업과 함께 비즈니스 모델 개발 워크숍, 프로토타입 제작 지원, PoC 프로젝트, 시연에 관한 인프라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IoT 교육 및 컨설팅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관련 행사에 필요한 공간도 제공하는데, 담당자 말로는 아직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베를린 IoT 캠퍼스에서는 보쉬 스타트업 하버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스타트업 하버는 보쉬에서 운영하는 이노베이션 허브다. 주기적으로 기술 스타트업을 초대해 협업공간과 보쉬 내부의 네트워크를 제공해 스타트업의 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다. 스타트업에게는 공간과 인프라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협업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현재는 AI와 가상현실, 메타버스 기술, 미래 공장에 적용 가능한 기술 스타트업들이 초대된다.
마침 우리가 방문했을 때 스타트업 하버의 새로운 기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쉬 스타트업 하버 대표이자 IT 이노베이션 유럽 부문 디렉터인 베로니카 브란트(Veronika Brandt)는 보쉬 IoT 캠퍼스 곳곳을 보여주며 IoT 캠퍼스와 스타트업 하버의 미션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보쉬 스타트업 하버는 아주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후기 단계의 스타트업은 로버트 보쉬 벤처 캐피털(Robert Bosch Venture Capital)에서 직접 투자를 진행한다. 보쉬 같은 큰 기업은 내부적으로 어떤 솔루션을 찾고 있는지 소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쉬 IoT 캠퍼스의 스타트업 하버 프로그램을 통해 내부 혁신 니즈를 발굴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베로니카는 “훌륭한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면, 현재 모집 분야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보쉬 내부의 다른 부서와 연결이 가능할 경우 최대한 지원하겠다”며 글로벌 스타트업의 도전을 당부했다. 마감이 9월 30일까지고, 매년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하니 독일 진출을 비롯하여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이 눈여겨본다면 좋을 듯싶다.
두 세기 전에 시작한 기업이 여전히 혁신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혁신이 지속 가능성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쉬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해외에 진출했던 상표를 빼앗기고 주요 공장도 모두 폭파된 경험이 있다.
다양한 위기 속에서 또다시 일어서고 새로 만들어 나가야 했던 그들의 역사도 결국 스타트업과 같지 않을까. 베를린 작은 운하의 항구에 위치한 보쉬 IoT 캠퍼스가 앞으로 그들의 병아리 시절과 비슷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훌륭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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