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과 인간에 무해한 살충성분 활용…호텔, 각국 정부 등과 협력
최근 유럽에서 뜨거운 뉴스 중 하나는 지하철에 출몰한 빈대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둔 프랑스발 빈대 소식은 프랑스를 방문하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세계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올림픽을 전후로 오가는 많은 방문객들이 매개체가 되어 빈대가 전 세계로 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낄 지경이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프랑스발 고속열차, 페리, 영화관에서도 빈대를 보았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SNS를 통해 급격하게 확산하자, 파리 올림픽이 불과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프랑스 당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대규모로 살포된 살충제 DDT의 독성이 드러나면서 사용이 금지된 이후 유럽에서는 빈대를 박멸할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구는 지속해서 뜨거워지고, 프랑스의 여름 기온이 올라갈수록 빈대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될 텐데, 이를 속 시원하게 해결할 대책은 없을까.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살충효과는 확실한 그런 아이디어를 분명히 누군가는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영국 케임브릿지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스포타(Spotta)’는 스마트 해충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충 감지 센서를 탑재한 시스템과 IoT 팟(Pod)을 이용해 고객에게 알람을 제공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한 서비스다. 호텔 침대뿐만 아니라 지하철 좌석에도 장착할 수 있으며 해충이 감지될 경우 조치할 수 있도록 관리자가 알람을 보낸다.
스포타의 공동창업자 로버트 프라이어스(Robert Fryers)와 닐 드소우자-매튜(Neil D’Souza-Matthew)는 케임브릿지에서 초저전력 센서를 연구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초기에 이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것은 초저전력을 이용한 심장박동기였다. 이후 해충 방제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2018년 스포타를 창업했다.
스포타는 지금까지 9개국 호텔에 약 4500개의 장치를 설치했고, 4개국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 장치 1개당 1박에 15페니(255원)의 비용을 부과한다. 알카라인 배터리 하나로 1년 동안 작동될 만큼 전력을 적게 쓰는 것이 특징이다.
스포타는 빈대뿐만 아니라 소나무 바구미, 대추야자 해충을 감지하는 센서도 개발했다. 이러한 센서는 주로 각국 농림청과 협업해 공공 해충 방제에 쓰이고 있다.
핀란드 스타트업 ‘발파스(Valpas)’는 IoT를 활용해 빈대퇴치 솔루션을 개발했다. 빈대를 추적하고 박멸까지 할 수 있다. 주로 호텔에서 쓰이는데, 호텔 침대 다리에 발파스의 스마트 빈대 트랩을 설치하면 기존의 빈대도, 손님에게 옮겨온 빈대도 자연스럽게 침대 다리 부분 트랩으로 모이게 된다. 빈대가 트랩에 모이면 호텔 관리자의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간다. 침대 다리 부분에 모인 트랩만 비워주면 빈대를 퇴치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든 것이 발파스 솔루션의 핵심이다.
침대 다리는 빈대를 유인하는 색으로 코팅했다. 각 방에 설치된 다리마다 고유한 QR코드가 있어 관리하기 용이하다. 센서가 빈대를 감지하면, 관리자에게 계속해서 알림을 보낸다. 빈대 퇴치 이후에도 일일 보고서를 제공해서 효과적으로 분석, 관리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도 발파스 솔루션의 특징이다.
발파스의 기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빈대 트랩에서 사용한 살충제가 무농약 성분이라는 것이다. 빈대는 이미 농약 성분이 포함된 살충제에 내성이 생겼다. 따라서 독하고 강한 살충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친환경적이고 인간에 해를 미치지 않는 성분을 사용하는 데에 집중했다.
발파스 시스템은 현재 핀란드의 소코스 호텔(Sokos Hotel), 덴마크의 ARP 한젠 호텔 그룹(ARP-Hansen Hotel Group)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13개국 호텔에서 사용되고 있다. 설치, 유지, 관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해 구독 서비스를 비즈니스 모델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1만 5000개 이상의 객실에 설치되었다.
발파스는 2017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설립됐다.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마팀 고이스(Martim Gois)는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후 빈대 때문에 고생한 경험으로 발파스를 창업하게 되었다. 이미 회사 설립 전 2013년부터 헬싱키 알토대학교의 학제 간 연구팀과 함께 유해한 살충제가 없는 빈대 퇴치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회사를 설립하고도 2년은 제품의 연구개발에 전력을 쏟은 뒤 2019년에 상용화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발파스의 제품은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독보적이다.
발파스가 기술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헬싱키에 있는 이웃 스타트업 와이어패스(Wirepas)와의 협력이 있었다. 발파스의 기술은 무해한 살충제를 포함한 스마트 침대 다리, 즉 하드웨어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이를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와 연동해서 최적화된 IoT 솔루션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는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필수였다. 발파스 팀은 직접 소프트웨어 개발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이 아이디어를 구현할 파트너를 찾는 데에 집중했다.
그래서 헬싱키의 이웃 스타트업 와이어패스와 협력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먼저 발파스의 스마트 다리에는 이미 IoT 알람 기능이 내장된 트랩이 들어 있다. 이 스마트 다리를 통해 빈대가 트랩에 빠지면, 내부에 있는 지능형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발파스의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와이어패스 매시브 네트워크(Wirepas Massive Network) 시스템이다. 와이어패스의 네트워크는 알람 메시지를 센서에서 센서로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발파스의 백엔드 시스템으로 전달한다.
와이어패스 매시브 네트워크는 추가적인 센서 데이터를 통해 추적기능이 좀 더 넓어지도록 발파스 시스템을 보완한다. 특히 발파스는 몇만 개의 침대 다리에서 백엔드 시스템으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전송할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와이어패스 매시브 시스템은 라우터를 포함해 시스템이 완전히 배터리로 구동되기 때문에 적은 전력으로도 폭넓게 관리할 수 있어 시너지를 일으켰다.
플러그 앤드 플레이 방식으로 별도의 무선 네트워크나 기술자가 필요하지 않고, 호텔 직원이 일반 침대 다리를 발파스 침대 다리로 교체하고 전원을 켜기만 하면 침대 다리의 센서가 자동으로 서로를 검색해 네트워크를 만든다. 네트워크에 센서가 많을수록 신호가 강력해지고, 단순해지기 때문에 데이터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발파스와 와이어패스의 협업은 유럽에서 이웃 스타트업의 최적 협업 사례로 꼽힌다. 각종 IoT 관련 기사에 두 회사가 함께 소개되고, 두 회사의 홍보와 마케팅도 각각 서로를 띄워주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린다.
발파스는 이웃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발파스 네트워크에 가입한 호텔들과 협력해 파리시에 보내는 청원서에 서명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전 세계는 해충으로 인해서 연간 5,0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 현재 파리시청은 빈대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빈대를 퇴치할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추가예산을 어느 정도로 편성할지 아직 논의 중이지만, 파리의 이 위기가 유럽의 해충 관련 스타트업에는 희소식인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은 <비즈한국>의 [유럽스타트업열전]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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