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디자이너 출신 매니저 양효나, 안세리, 클레멍띤 진희 님
베를린 스타트업 씬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어느 정도 알려진 스타트업에는 꼭 한국인이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일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에는 주로 독일어권에서 학업을 했거나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다. 그런데 독일어는 언어 자체가 상당히 장벽이 높고, 독일 문화권의 비즈니스 컬처는 한국과는 사뭇 달라서, 평범한 한국인이 일반 독일 기업에 취업하기에는 장벽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스타트업은 그 문턱이 낮은 편이다.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베를린은 워낙 글로벌한 도시이고, 베를린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독일을 너머 유럽과 세계무대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가 공식 언어인 경우가 많다. 또한, 글로벌 유저들을 위한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이 스타트업으로서도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개발자의 경우는 실력이 채용의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업의 문이 넓다.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의 최대 SNS인 링크드인을 통해서 관심 있는 스타트업을 팔로우하다 보면,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한눈에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들과 네트워킹도 가능하다. 비슷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운이 좋다면 간단하게 줌 미팅 기회도 얻는다.
링크드인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스타트업의 채용공고를 통해 그들의 성장 속도와 방향을 실시간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스타트업이 얼마나 사람을 뽑고 있는지, 어떤 분야의 사람을 뽑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투자 현황과 사업 방향성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유럽 스타트업계에서 한국인들이 어떻게 활약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독일의 스타트업 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여성 세 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양효나 님
한국에서 홍익대학교 게임 디자인 학과를 졸업하고, 네이버 글로벌 디자인 파트에서 인턴쉽, IBM의 마케팅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건너가 코펜하겐 인터랙션 디자인 학교(CIID, Copenhagen Institute of Interaction Design)에서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 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베를린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디자인 에이전시 아이콘 모바일 그룹 (iconmobile group), 핀테크 전문 컴퍼니 빌더 (company builder) 핀립(Finleap)을 거쳐 현재는 독일 최대 부동산 플랫폼 이모스카웃(ImmoScout24)의 리드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링크드인 (https://www.linkedin.com/in/hyeona/)
클레멍띤 진희 님
프랑스-한국 혼혈로 자라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고 프랑스 파리 소르본 누벨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 있는 LG 전자 프랑스 법인에서 UX 연구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베를린의 아이콘 모바일 그룹 (iconmobile group)의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베를린에 첫 발을 딛게 되었다. 현재는 유럽 최대의 패션 이커머스 기업 잘란도의 프린시펄 프로덕트 디자이너(Principal Product Designer)로 일하고 있다.
*링크드인 (https://www.linkedin.com/in/clementinejinhee/)
안세리 님
계명대학교 산업디자인 학과를 졸업한 후, 세계적인 디자인 인재들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 우메오 대학 디자인 스쿨(UID, Umeå Institute of Design)에서 트랜스포테이션 디자인(Transportation Design) 석사를 마쳤다.
이후 아이콘 모바일 그룹 (iconmobile group) 산하 아이콘 인카(icon incar)에서 자동차 UX/UI 디자인을 하면서 베를린으로 오게 되었고, 이후 베를린 맥킨지 디지털 랩에서 자동차 OEM 전략 컨설팅 프로젝트 등 다양한 자동차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후 5년 넘게 다임러 플릿 보드 이노베이션과 다임러 트럭에서 리드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독일 대기업 내 혁신 부서에서 일하다, 최근 한국계 베를린 스타트업 노타(Nota AI)의 제너럴 매니저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다.
*링크드인 (https://www.linkedin.com/in/seri-saekyoung-an/)
베를린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에서 일하는 한국 출신의 분을 만나니 너무도 반갑습니다. 베를린에서 일하게 된 계기와 그간의 경력이 궁금합니다.
양효나(이하 ‘효’): 저는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네이버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유학 생각이 있었던 저에게 현역 선배 모두 ‘유학을 가라’라고 조언해 주었어요. 한국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그게 좋다고요.
이후 UX/UI 개념도 없었던 2008년, 한국 IBM에서 잠깐 일을 했는데 당시 IBM을 통해 유비쿼터스, 인터랙션, 서비스 디자인을 알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관련 분야로 유학을 알아보다가 미국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유럽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유럽의 알려진 디자인 학교에 원서 지원을 하면, 다음 단계가 온라인 인터뷰인데, 저는 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어요. 근데 그때 돈이 없어서 학교 입학처에 직접 연락을 해서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고, 그렇게 재학 중인 학생들이 사는 곳에서 묵을 수 있게 되었어요. 숙소를 얻고 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죠.
최종적으로 코펜하겐 학교를 선택했어요.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북유럽 치고는 역동적인 분위기를 가졌고, 레고처럼 덴마크에 있는 유명한 회사들과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또 다양한 인종,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는 점도 장점이었어요. 엔지니어, 영화감독, 연구원 등 여러 경험을 가진 친구들과 팀이 되어 일했는데 학교는 이를 통해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덴마크 친구들이 베를린을 추천해 줬어요. 그 당시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젊은 유럽인들이 사랑하고 동경하는 도시였고,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베를린에 오게 되었어요. 와서는 문화 충격을 많이 받았죠. 깨끗한 코펜하겐에 살다가 펑크족도 많고 상대적으로 지저분한 베를린 모습을 보고요.
안세리(이하 ‘세’): 저는 학사를 마치고 자동차 디자인을 좀 더 깊게 공부하려고 대학원을 알아봤어요. 조금 더 넓고 유연한 곳에서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고요. 자동차에 대해 공부할 수 있으면서, 학비 부담이 없고 좋은 퀄리티의 교육을 하는 학교를 찾다 보니 독일 혹은 스웨덴으로 선택지가 좁혀지더라고요.
최종적으로 스웨덴 북부 작은 우메오라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서 석사를 하게 되었어요. 우메오는 정말 인구가 적은 도시인데, 그 안의 대학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질 만큼 다양한 국가 출신의 학생들이 있어요. 저와 비슷하게 학교 때문에 이 작은 곳에 모이게 된 친구들이죠. 그러다 보니 늘 친구들끼리 똘똘 뭉치고 선후배 간 연대감이 굉장히 좋아요. 전 세계 어딜 가도 학교 선후배가 있고, 어떤 기업에 가도 우메오 출신이라고 하면, 그 네트워크의 힘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메리트가 있어요.
저는 여기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이게 저랑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자동차 디자인 자체는 아니더라도 디자인 프로세스와 접근 방법, 디자인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져갔어요. 그래서 인터랙션 디자인과의 수업을 많이 들었고, 졸업할 때도 자동차 디자인과 인터랙션 디자인을 연결한 주제로 졸업논문을 발표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학교 출신 친구 중에서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으니, 자기 회사가 바로 그 두 접점에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저를 추천해줬어요. 너무 고맙게도 바로 다음 날 인터뷰 요청이 와서 약속을 잡고, 첫 인터뷰에서 바로 면접자와 악수를 하며 나왔어요. 이렇게 제 첫 직장 생활을 베를린에서 시작했어요.
클레멍띤 진희 (이하 ‘클’): 저는 아버지가 프랑스분이고 어머니가가 한국 분이라 어렸을 때부터 두 문화 사이에서 자랐어요. 서울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에 있는 프랑스 학교를 다니면서 점심시간에는 전식, 본식, 후식을 갖춘 프랑스식을 먹고 저녁에는 집에서 할머니께서 만드신 김치와 따스한 밥을 먹으며 컸어요. 저는 누가 넌 한국인이니 프랑스인이니 하면 백 프로 반반이라고 답해요.
저는 파리에서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 파리의 LG 전자 모바일 사업부 유럽 R&D에서 4년 정도 일을 했어요. 컴퓨터와 IT 쪽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R&D 관련 일을 원했었고 한국어와 불어에 능통했던 게 입사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2007년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전 피처폰 시대에 모바일 폰 소프트웨어 검증 업무를 하는 코디네이터로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이후에 UX 리서치로 모바일 폰 사용자 경험 테스트를 진행하며 UX 리서치 그리고 모바일 인터랙션 디자인 경험을 필드에서부터 쌓아갔어요. 당시에는 UX라는 용어도 참 생소했었고 관련 직종도 지금 만큼 많지 않았어요. 이 분야로 커리어를 더 쌓고 싶어 이직을 고민하다가 아는 친구가 베를린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독일 사람이 아닌 인터내셔널 한 프로필을 가진, 모바일 프로젝트 경력자를 찾는다고 해서 얼떨결에 지원한 게 잘 되었고, 그게 제 첫 베를린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독일어는 하나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독일에 와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었거든요.
현재는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클: 지금은 패션 이커머스 회사인 잘란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잘란도는 2008년에 온라인 신발 셀러로 시작한 스타트업이고 지금은 유럽의 18개국이 넘는 시장에서 2,000개가 넘는 패션 브랜드를 쇼핑할 수 있는 패션 플랫폼으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최근에는 루이뷔통 모에네시(Louis Vuitton Moët Hennessy)의 코스메틱 플랫폼 세포라(Sephora)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해 고급 뷰티 제품들도 쇼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스케일업을 계속해나가는 조직이에요.
저는 2016년에 잘란도 모바일 프로덕트 개발팀에 합류해 잘란도의 메인 모바일 앱 UX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LG와 아이콘 모바일을 거치면서 ‘모바일’이 저에게 계속 커리어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네요. 2015년 잘란도의 앱과 지금의 앱의 UX를 비교해보면, 개선된 부분이 정말 많은데요. 프로젝트 당시 프로덕트 매니저, 엔지니어 그리고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팀 안에서 팀원들과 함께 일구어낸 성과라 개인적으로 뿌듯했던 커리어 경험 중 하나예요. 새롭게 바뀐 디자인을 바탕으로 더 많은 UX 개선과 비즈니스 성장을 꾸준히 이끌어가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세: 저는 현재는 베를린의 스타트업 노타의 제네럴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타는 한국에 본사가 있고, 유럽에 지사를 설립한 AI스타트업입니다. 노타는 AI 최적화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대표 플랫폼인 ‘넷츠프레소(NetsPresso)’ 베타 버전을 론칭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능형 교통 시스템, 안면인식 기반 출입 인증, 차량 내 저전력 운전자 모니터링 등 최적화된 AI 솔루션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베를린에 법인을 설립하면서 유럽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지금까지 UX 디자이너, 디지털 프로덕트 디자이너, 유저 리서처, 전략 디자이너 등의 이름으로 일을 해왔는데, 노타를 통해 처음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유럽법인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효: 저는 독일의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인 이모스카웃24(ImmoScout24)에서 리드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디자이너가 13명 정도 있는 팀을 서포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이너로서의 일뿐만 아니라 매니징 하는 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일과 매니징 하는 일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업무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지금은 다들 팀이나 회사를 이끌고 있는 입장인데, 기본적으로 디자이너가 하는 일 이상의 일들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세: 우선, 노타의 리더십 원칙 중 하나가 ‘고객 중심(Customer Centric)’입니다.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저희 고객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고객 중심으로 사고를 해야 저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요. UX designer로서 가졌던 마인드 그리고 가치가 노타의 운영방침과 잘 맞아떨어져 시작할 수 있었어요.
디자인의 역할은 흔히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에 있다고들 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 팀원을 유저라 생각하면 그가 처한 환경, 일하는 프로세스 등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 또한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하던 업무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디자인 매니저가 굉장히 잘 맞았어요. 다른 사람들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고, 각자 가진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거든요. 그 영역이 조금 더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그동안 많이 했던 일이 ‘연결하는 일(connecting dot)’이에요. 부서와 부서 연결, 다른 업무 간 연결 등의 역할이죠.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방향성의 불일치가 일어나고, 이게 결국 고객의 불편함으로 나타나게 되거든요.
그래서 늘 고객을 중심에 두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설계를 잘해야 하는데 디자인 성숙도 (design maturity)가 낮은 조직에서는 이게 쉽지 않은 과정이에요. 결정권자가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비즈니스에 결정권자가 디자이너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비즈니스 성공 케이스들을 보면 디자인 성숙도가 높은 회사에서 유저 중심의 프로덕트와 서비스(user-centric products and services)를 만들어 제공한 경우였습니다. 그동안은 디자인 리드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면 노타에서는 유럽법인의 방향을 고객 중심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 중심으로 성공적인 운영을 도전하고 싶어요.
클: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경험 디자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프로덕트를 이용하는 건 결국 사람이고 그 프로덕트를 통해서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니까요. 기술 기반의 회사가 만든 프로덕트라도 결국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이잖아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가며 좋은 UX를 전달하는 게 디자이너의 미션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UX/UI의 결합인 프로덕트 디자이너, 유저 리서처, 브랜딩 디자이너, UX 라이터 (Writer), 프로덕트 매니저, 엔지니어 등의 세부적인 전문직들이 모여 밀접히 협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런 협업이 잘 이루어지도록 능동적으로 리드하는 것이 프린시펄(Principal) 디자이너의 역할 중 하나예요. 저의 일상적인 업무이기도 하죠.
그리고 프린시펄로 회사의 2-3년 후의 장기 방향을 정립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자주 하게 되었어요. UX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의 진화 방향도 고려해서 추진하는 전략적 비전 프로젝트죠. 프린시펄 디자이너는 좀 생소한 직책일 수 있는데 시니어(Senior) 디자이너 다음 단계로 보시면 되고 프로덕트의 전체적 (Holistic) 경험과 비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롤이에요.
효: 저는 지금은 디자인 자체의 일보다는 팀을 매니징 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디자이너들이 일을 편하게, 잘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설명하면 쉬울 것 같아요. 그래서 주로 하는 일이 현재의 문제점을 임원진들에게 피칭하는 일이에요.
처음에 디자이너로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은 프로젝트의 전략적 비전을 보여주고 시각화시키는 일이었어요. 프로덕트가 2년 후에 어떤 방향으로 갈지,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를 통해서 문제점을 도출해내고, 솔루션에 대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비전을 보여주는 일이었어요.
이런 일은 처음 핀테크 컴퍼니 빌더 ‘핀립(Finleap)’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일이에요. 핀립은 스타트업이 회사를 만들고 투자를 받게 도와주는 컴퍼니 빌더인데, 그렇다 보니 핀립을 거쳐 간 많은 스타트업들의 프로젝트를 제가 디자이너로서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핀립 시절 디자인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썼어요. 프로덕트 팀 안에 리서치 디자이너, 비즈니스 디벨로퍼, 오퍼레이션 매니저, 법률 전문가 등이 합류해서 과제를 하나 던져줘요. 특정 분야에서 될 것 같은 비즈니스를 찾아보는 거죠.
그때 했던 프로젝트가 현재 보험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 ‘클락(clark)’과 ‘엘레멘트(element)’ 등의 초반 작업이었어요. 저는 보험에 대해 하나도 몰랐는데, 그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현재 보험에 대한 문제점 찾고, 그 문제점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플랜 하나를 만들었어요.
당시 제가 외국인으로 베를린에 살고 있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독일에 외국인 친화적인 보험이 없다는 것을 비즈니스 기회로 포착했어요. 그래서 이걸로 일종의 스타트업 하나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어요. 유저 리서치도 하고, 그걸 바탕으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피칭도 하고 정말 다양한 과정을 경험해보았어요.
이후 이모스카웃24에서는 리브랜딩 작업을 진행했었고, 프로덕트를 만드는 과정의 프로세스를 짜는 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직업 타이틀은 디자이너이지만, 실제로는 프로덕트가 나와서 잘 팔리게끔 만드는 전략을 짜는 일을 한다고 보시면 쉬울 것 같아요.
세 분의 이력이 모두 다른데요. 지금은 모두 베를린에 와 계시지만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를 경험하고 오신 분도 있고, 프랑스에서 한국 대기업을 경험하고 오신 분, 그리고 베를린에서 첫 회사 생활을 하신 분도 계시네요. 한국 회사와 유럽 회사는 일하는 환경의 측면에서 어떻게 다른가요?
클: 유럽 테크 씬의 스타트업이나 기업들이 좋은 점은 첫 번째로 인종, 학력, 나이나 젠더(Gender)와 같은 차별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채용절차에서 최대한 제거하고 진행한다는 것이에요. 채용 심사 과정에서 편견(Bias) 없이 오로지 조직의 문화와 포지션에 맞는 적절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죠.
두 번째는 업무 성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지급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한다는 점이에요. 잘란도 같은 경우 수행한 업무 결과를 평가하는 성과 보상 제도가 있어요. 1년에 한 번 가까이서 일한 팀원들한테 피드백을 받고 요약된 내용이 이사회로 올라가서 연봉 인상이 필요한지 승진 대상인지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결정해요. 연봉협상에 대한 큰 고민이 필요 없고 내 상사의 주관적인 생각에 의해 결정되지 않아요. 인재 관리를 위해 최근 더 많은 테크 회사들이 이러한 공정한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효: 한국에서는 정말 힘든 점이 많았어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잠깐 일했는데, 계획에 없던 프로젝트에 갑자기 투입되기도 하고, 디자인 프로세스 없이 밤새 만든 프레젠테이션도, 위에 상무님이 와서 딱 보고 ‘아니야’하면 바로 프로젝트가 중단되기도 하는 경험을 했어요.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선배들도 회사에서 오래 일한 것에 비해 비전을 갖고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다들 회사 힘들다, 그만두면 치킨집을 해야 하나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눈 기억도 있어요. 그런 점에 비하면 IBM은 외국계 회사라 그런지 당시에도 다른 점이 참 많았어요. 우선 칼퇴근하는 문화가 있었고, 소통 구조가 굉장히 평등했어요. 업무적으로도 배울 점도 많았고, 경험도 없었고 나이도 어렸지만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요.
또 한국 회사와 비교했을 때, 매니저들의 일이 굉장히 달라요. 한국은 보통 직장 상사나 매니저가 위에서 지시하는 입장이지만, 독일에서는 보통 매니저가 팀원을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역할을 가장 많이 해요. 예를 들어, 매니저가 모든 팀원과 1~2주에 한 번씩 일대일 미팅(1:1 meeting)을 하는데, 여기서 팀장은 보통 팀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도와줄 것이 없는지를 물어봐요. 그 점을 숙제로 가져가서 팀원을 도와주는 것이 매니저의 일이죠. 그래서 팀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매니저가 좋은 매니저라고 평가받아요.
하지만 핀립 덕분에 ‘유럽 회사에 모두 워라밸이 있는 것은 아니다’는 환상을 깨는 계기를 갖기도 했어요. 핀립에서 일하는 4년 동안, 벤처를 7~8개 만들었으니까요. 정말 미친 듯이 일했어요. 한 달 안에 프로젝트 결과물을 내야 했고, 다시 3개월 안에 MVP가 나와야 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바로 접고, 피봇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프로덕트를 내야 하기도 했고요. 즐겁게 일했지만, 정말 치열하게 일했어요.
그런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보니 조금 더 안정적이고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회사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리서치를 하다가 좀 더 워라밸이 맞는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죠.
말씀하신 것처럼 ‘유럽의 회사는 워라밸이 완벽히 보장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부분이 많은 한국분이 가진 환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맥락에서 또 다른 유럽 기업에 대한 환상이 있을까요?
효: 독일에도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는 있어요. 사람들이 막연하게 ‘유럽은 좀 더 평등하겠구나’ 생각하지만 육아나 출산으로 많은 독일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겪어요. 다만, 한국보다 좀 더 탄탄한 사회적 제도와 법이 있죠. 출산 후 12개월 동안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으며 쉴 수 있는 사회 보장 제도가 있고, 그 외에도 반드시 주 40시간을 일하지 않고, 자신에 상황에 맞게 20-30시간 정도만을 일할 수도 있어요. 출산 후 돌아온 직원을 해고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규율도 있어요.
하지만 적게 일하는 사람이 많이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경력이나 파워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게 되어요. 회사에서 영향력이 작아지면 커리어가 밀리는 것은 당연하고요. 아이가 아프면 일을 쉬어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구조적으로 아이가 아프면 쉴 수 있고, 그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은 맞지만, 그렇게 해서 일에 완벽하게 몰입하지 못하면, 결국 목소리가 작아지는 거죠.
세: 한국에 비하면 정말 훨씬 낫지만, 그럼에도 워킹맘은 어딜 가나 어려운 점이 있어요. 아이를 낳고 초기에는 여기서도 어려운 점이 있죠. 그래서 저는 ‘워킹맘’으로서 두 마리 토끼(육아와 일)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게 세 마리 토끼(육아, 일, 커리어)더라고요. 일과 커리어는 엄연히 달라요. 유럽에서 워킹맘에게 경력 단절은 없을 수 있어요. 사회적으로 보장을 해주니까요. 하지만 커리어에 있어서의 단절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복지가 좋은 유럽 국가들은 워킹맘의 경력 단절의 고민을 넘어서 평등한 커리어의 성장 기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의 시스템이 탄탄하게 지켜주는 부분이 있어 경력 단절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편견은 아직 존재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로 쿼터제 등을 도입하고 있어요.
효: 이번 저희 회사의 새로운 CTO가 인도 여성인데, 그것이 최근 가장 센세이셔널한 뉴스 중 하나였어요. 글로벌한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 여성이 리더가 되는 것이 드문 케이스 이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여전히 인종, 성별에 따른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유럽의 현실이에요.
클: 하지만 그것이 문제라고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잘란도에서는 임원진의 80%가 남자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의식적으로 여성 리더를 더 많이 뽑으려는 노력을 해요.
세: 함께 일하는 모든 동료가 오픈 마인드가 아닌 경우도 있어요. 베를린이 글로벌한 도시라 하지만 독일 기업에서는 언어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하고요. 요즘은 많은 회사들이 팀원의 다양성, 다문화가 월등히 나은 창의성과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곳이 많아요.
(2편에서 계속)
* 이 글은 <원티드>의 [해외 취업의 모든 것 '유럽]에 기고하였습니다.
이은서
eunseo.yi@123factory.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