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새로운 경험이 나를 있게 만들다 #쉐어하우스#도미토리
생전 외국에서 처음 혼자 산다는 건 생각보다 낯설고 고요했다. 시드니의 한 베란다 룸, 창문 밖엔 늘 같은 바람이 불었다.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시드니에 와서 처음 딱 좋았던 점은 아이러니 하게 '영어를 잘 못하는것이 였다. ' 리스닝이 안되는게 이렇게 평화롭고 행복할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한국에서 조용히 혼자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들어가면, 듣고싶지 않은 옆 테이블의 얘기를 듣게 된다.
버스 안, 지하철에서 조용히 경치를 감상하고 싶다가도 궁금하지 않은 옆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매일 매일 울리는 전화기, 간혹 친구와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각종 TV, 습관적으로 보는 쇼츠등
하루에도 수없이 주고받는 메신저와 카톡들,
퇴근길에는 스트레스 받는 일들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하소연 하는것이 해소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호주에 있으면서는 커피한잔을 마시러 카페에 들어가도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 지지 않는다.
'잘 들리지 않은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 소음이 차단된 느낌이였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며, 나는 어떠한 커피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맛은 어떤 맛이며 음미하게 된다.
혼자라는 건 고립이 아니라, ‘회복’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꼭 누군가와 얘기하지 않아도 나는 하루를 정리할수 있구나. 노이즈캔슬링 에어팟을 끼지 않아도 이렇게 고요함을 느낄수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내가 들렸다.
시드니의 한 베란다 룸. 작은 창문 하나, 얇은 침대 하나,그리고 나 혼자. 딱 5평이 되는 베란다룸
그 공간에서 나는내가 얼마나 많은 소음 속에서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다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배움이다.
다른세대와 살아보기
준비를 하고 오지 않아서, 쉐어하우스의 작은 베란다 룸에서 호주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이라면 난 분명히 편한 호텔을 구했을것이다.
3개월이지만 난 살러 온거고, 생활을 해야하고 월세로 지낼수 있는
쉐어하우스 작은 베란다룸을 구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게 당연한게 아니였구나'
베란다 룸은
불법이지만 개조해서 이렇게 라도 돈을 받고 있는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 하다. 한국에서 내방이 그렇게 큰
공간이였구나. 창문이 있는것도 당연한게 아니였고, 침대 1개 가구들이 당연한게 아니였구나 . 이불이 있는게 당연한게 아니였고, 방에 보일러가 당연한게 아니였구나.
쉐어 하우스에서는 창문이 방안에 있으면, 사용할 물건들이 있고 없음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 달랐기 때문이다. 당연한게 당연하지 않다는것을 또 한번 알게 되었다.
40대가 언제 쉐어하우스에 살아볼까? 내가 어떻게 도미토리에 살아볼 경험을 할수 있을까? 어찌보면, 나는 자발적 불편함을 자처했다. 앞으로도 내가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과 살아볼수 있을까? 이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떤게 생활하게 될까? 궁금했다.
부엌에서는 늘 소음이 났다.누군가는 파스타를 만들고, 누군가는 스피커로 노래를 틀었다.
누군가는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0대와 함께한 쉐어하우스 그속에서 나는 '다름'을 배웠다.
이들의 '아침'은 이렇게 다르구나. 참 부지런하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늦잠을 좋아하는 나조차 제일 먼저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고,
나갈 채비를하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한국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쉐어하우스엔 20대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빠르게 생각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처음엔 그 솔직함이 낯설었다. 미래에 고민이 많았지만 생각만 하지 않았다. 행동하고 그다음은 고민을 해결하는 방식이였다.
그중 한국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사진학과'를 나와 한국에서 포토그래퍼로 살아온 친구는 호주에서의 '타일공' 생활에 너무 만족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체면이 중요하지만 호주에서는 새벽부터 일하고 짧은 근로시간 이후 주어지는 달콤한 자신만의 자유시간' 이 자신의 명함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다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배움이다.
다른 세대와 함께 살아본다는 건, 다른 생각을 듣게 되고 세상을 한층 더 넓게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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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나는 오히려 ‘소통’을 배웠다.나이 차이, 언어 차이, 문화 차이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사는 법을 알게 됐다.
쉐어하우스는 작은 사회이자 가장 큰 배움의 교실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과 지내보기
한국들어오기전 시간이 생겨, 시드니 옆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들려보게 되었다.
처음 도미토리에 짐을 올려두던 날, 나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4명의 모르는 사람과 한방을 쓴다는 건, 내 인생에 없던 경험이었다.
밤마다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나누며 잠을 잤다.
에어콘의 온도를 올리면, 누군가가 내려와서 끄고 신경전이 있어도 언어가 제각각 달라 얘기하지 못하고
자고 있는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내 행동에 조심을 하게 되었다.
이것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처음엔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나는 점점 단단해졌다.
불편한 환경에서 나의 생존본능
영어를 한마디 못하던 내가, 로비에 앉아 있는 새로운 국적의 사람들과 '한마디'
대화를 해보기 위해 , 책을 찾아보고, 요리를 해주고
나의 관심사를 보여주고 얘기하는 적극적인 모습들이 '한국'에서 무기력했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이렇게 불편한 환경에 던져져야 나의 생존 본능이 생기는구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사귄 '타이완'친구는
나와 하루동안 근교를 여행하고 마지막 헤어질때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파파고의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긴편지를 써주었다.
"호주와서 처음 말걸어준 친구라 너무 고마웠다고
내가 수줍음을 많이 타서 일주일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마디도 못했는데, 너가 얘기해서 행복했다고"
불편함이 나를 자라게 했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내가 낯설다고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한국어를 쓰고 그럼 나는
새로운것을 경험하는 기회를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기회를 잃어버렸을것이다.
책을 찾아보고 한마디라도 더해보려고 스스로 움직이고, 타국적의 친구와 얘기하는것도
모든 게 새로웠지만,그 속에서 나는 ‘적응’을 배웠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두려워하며 살았는지’를 깨달았다.
새로운 경험은 늘 불편함에서 시작되지만,
그 불편함이 내 안의 가능성을 깨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새로운 경험은 늘 불편함으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언제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걸.
영어 한마디 못하던 내가,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뎌지고 익숙한 곳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나를 새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