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진단의 희열감

오히려 조울증을 진단받고 기뻤다

by 고 임리

나는 완벽한 양극성장애 환자였다


사실 의사가 양극성장애라고 진단은 내렸지만 나는 처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증과 우울증의 반복? 역시 노잼 병이네. 나는 이렇게 고통받았는데 겨우?


하지만 우연히 나는 처방전에 쓰인 병명 코드를 검색했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는데 왜 그날은 그랬을까. F31.9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검색했다. 원인불명의 양극성 장애. 그것이 나의 진짜 병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본격적으로 양극성장애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나는 내 정신병을 진지하게 생각도 안 했다. 당연히 내가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그게 하도 오래된 일이니 이게 정신병 때문인지 내 성격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mbti가 하도 유행하지 않았는가. 나는 mbti intp으로 내 정체성을 확립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워낙 많구나. 나만 특이한 게 아니네.


하지만 나는 mbti intp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게 애초에 나와 완전히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게 나를 잘 설명해 줄 뿐이었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위안.


양극성 장애를 검색하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군면제였다. 그렇다 이 병은 군면제까지도 가능한 병이었다. 군면제가 이다지도 어려운 나라에서 군면제가 되는 병명이라니 나는 그 순간 ‘희열‘을 느꼈다.


와 내 병이 완전 장난 아니구나. 역시 나의 특이함은 괜히 이런 게 아니었어. 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었구나. 내가 힘들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게 당연했던 거야. 내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했던 게,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짜고 성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게 다 이제 설명이 되네.


나는 나무위키 양극성장애를 보고 아주 확신했다.

기본적인 위생도 관리 안 하고 씻지도 잘 먹지도 않으면서 “ 행정고시 사법고시를 2개월 만에 합격해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 자기 자신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 가능한 계획”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24시간 누워서 침대에서 보내지만 정작 머릿속에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서 대중을 선동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것은 모두 다 내가 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너무 충격 먹었다. 근데 이건 다른 사람들도 하지 않나? 아닌가? 아닌가 봐. 난 그렇게 머리에 한방 얻어맞은 거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양극성 장애 치료가 어려운 이유


양극성 장애가 진단되기 어렵고 치료가 어려운 부분이 이것이다. 본인들은 이게 문제라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먹든 그냥 그러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사가 잠을 잘 자냐 꾸준히 뭘 해라 에너지를 아껴라 한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를 한다는 것이다. 의사 역시 환자들에게 강하게 말하는 화법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들의 조언은 그저 허공에서 흩어질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제 원인불명의 양극성장애라는 사실을 알고 검색까지 하고 이게 엄청난 병이란 것을 안이상, 그리고 내 증상과 예시 증상이 너무 똑같은 걸 안 이상 나는 나름의 노력을 시도했다.


외래를 갈 때마다 내가 너무 힘들고 짜증 날 때 그 순간을 기억하고 그게 조울증 증상이냐고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사라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다. 의사는 그런 것에 답을 잘해주었다.


하지만 난 또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서울의 대학 병원 교수가 나의 아픔을 알겠어? 본인은 항상 성실하게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잘 살아왔을 텐데. 네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겠어. 그런 건 책에, 논문에서 나오는 대답이잖아.


나는 그런 식으로 내 병의 문제를 찾으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까지 낫고 싶은 의욕이 없었던 거 같다. 의사의 조언을 들으려고까지는 노력했으나 정작 내가 원하는 대로 했다. 나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짜고 그걸로 행복해지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왜 다들 나처럼 꿈을 꾸지 않을까. 너무 한심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남들이 꿈을 향해서 한 발자국씩 노력할 때 나는 침대에 누워서 더 큰 야망을 꿈꿨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그 야망이 불가능해 보이면 끝없는 우울에 빠졌다. 그리고 도피하고 싶었다. 아니 그냥 쉬고 싶었다. 한 것이 없는데 생각만으로도 많은 것을 했다고 믿어서 그저 지쳐버렸고 푹 쉬고 싶었다.








도피와 도파민


도피는 항상 해외여행으로 채웠다. 거기서 나를 찾는 것이나 휴식이 아니다. 그냥 거기로 가는 게 중요했고 도파민을 찾는 게 중요했다.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길 꿈꿨다 혼자 클럽에 가고 한국에서 안 하던 짓만 골라서 다니는 것이다. 그니까 외국이라고 나는 걍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싶었던거다. 한국에서는 나는 너무 경직된 통나무 같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어 보였다. 나고야 역시 도파민을 채우려 그냥 떠난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역시나 도파민을 찾아서 혼자 돌아다니면서 완전한 이방인이라는 자유와 혼자 클럽을 갈 거라는 중대한 목표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고야성을 나와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와 저녁에 같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셔야 해서 클럽에 가지 못했다. 그가 내 도파민을 채워주었기 때문이었다. 의사에게는 그와 사귀고 헤어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그와의 만남과 이별에서 엄청난 도파민을 충족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게 나를 엄청 자유롭게 만들고 나에 대해서 완전히 다시 생각하고 나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도파민 같은 걸 처방해 달라고 했다. 의사는 도파민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으나 그는 내 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거 덕분일까.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내 감정이 그다지 그렇게 까지 가라앉거나 우울해지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엄청난 이별의 고통을 겪었음에도, 나는 그렇게까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치료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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