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을 진단받기까지

20년 만의 조울증과의 조우

by 고 임리

자살을 나만 생각했구나 슬프게도


“자살을 언제부터 생각했나요?”


자살? 자살이 언제부터 시작한 게 중요해? 다른 사람들도 다 자살하고 싶지 않나? 사실 나는 매우 죽고 싶어. 항상 내 뜻대로 안 되면 죽고 싶단 말이야. 그냥 다 놓고 사라지고 싶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거지. 이 지루하고 평범하고 그저 그런 하루를, 그리고 엄청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어떻게 버티는 거지. 그들은 이다지도 무의미한 삶을 왜 살아가는 거지?


“15년 전쯤일걸요.”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이 났다. 아, 아무에게도 죽고 싶다는 말을 안 했었구나. 나의 최초의 고백이었다. 13살에 혼자 자살을 시도했던 아이는 그저 내면아이를 치유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랐다. 남들도 다 죽고 싶은 거 아니야? 나만 그랬던 거야?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 질문의 의도는 결국 자살을 언제부터 하고 싶었냐는 게 중요했다는 것이었을 테고 내가 15년 전부터 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내 운명이 바뀔 거란 게 짐작이 되었다.


그랬기에 모든 나를 둘러쌓았던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났다.

새로운 챕터의 희망을 꿈꾸면서.




동네병원에서 나는 ‘번 아웃’ 이란 진단을 받았다. 사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지루하고 몸에 열병이 날 정도로 몸을 달구었던 검사들이 끝나고 너무나도 차갑고 답답한 공간에서 엄마와 아빠 여자 교수와 젊은 남자 의사 모두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겐 이런 경험이 최초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그 순간에도 내 자신을 몰랐고 내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숨기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고통은 나만 아는 소중한 평생의 반려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리고 나는 정상인으로 판명이 났다.


그 후 나는 우울을 오히려 즐겼다. 그 땅에 추락하는 나른한 느낌을 오히려 사랑했다. 오히려 우울할 땐 눈물이라도 나오니까, 잠이라도 자니까. 조증 때 나는 잠도 오지 않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슬플 때라도. 나의 세계에서 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는 냉혈한이고 성실해야 하는 인간이니까. 나는 나를 다중인격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나는 동네 병원에서 온 사람들을 관찰했다. 여자들이 많은 거 같았다. 그리고 다들 멀쩡해 보였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간호사에게 정신병원 간 적 있으세요? 그런 답을 하는 게 싫었다. 이 병원은 이상해. 왜 사람들 다 있는데서 그런 질문을 해? 나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나는 그런 걸 참지 않고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 거의 상담사 수준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환자들에게 목례를 하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 사람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해도 통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 나는 항상 상대를 보고 이야기한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상대가 말이 안 통할 거 같거나 분노할 거 같다고 그냥 스스로 짐작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오해를 낳고 내 사회생활 때 문제를 낳았다.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해서 내 의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순간에 벙어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땐 병세가 심했는지 이런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 저에 대한 이야기를 잘 못하겠어요” 그런 말을 의사에게 했다.


아무튼 내 조울증은 동네 병원 의사에 대한 깊은 불신을 만들어냈던 거 같다. 그냥 내 직감상 나랑 안 맞아. 아니 내 병은 ‘번아웃’ 같은 ‘평범한’ 병이 아니야.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같이 고통받은 사람이 겨우 ‘번아웃’이라고? 당연히 의사는 약을 지어줬지만 약은 나한테 맞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거 같고 그냥 그 약을 먹기가 싫었다. 실제로 그 약효가 효과가 있든 말든 그저 맞지 않았을 거다. 맞는다고 한들 나는 안 먹었겠지. 의사는 대학병원 소견서를 써주었다. 그도 알았겠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학병원에서 마주한 진실


대학 병원 담당의 역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여자 선생님이길 바랐다. 아무튼 그는 초진 때 비교적 긴 대화를 한다고 하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으로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다. 초진 때 그는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었는데 그는 나에게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올 곳이 아니에요”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아무튼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아니, 나는 이토록 심각한데? 네가 몰라서 그래! 나는 의사인 네가 틀리고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병은 겨우 동네병원에서 치료할게 아니라 이런 대학병원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대학병원에서 말해야할 구체적으로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화가나지만 말이 안나왔다. 그냥 그의 말이 맞는걸까? 나는 그냥 ‘그런 거 아닌데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거 같다. 그는 뭔가 힘이 빠져 보였으나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자살을 언제부터 했냐고 물어봤다. 나는 15년 전이라고 대답하고 마스크를 낀 눈에선 눈물이 고였다.



“양극성 장애일 경우가 높습니다. “


여태까지 그는 나를 매우 미심쩍게 보고 심지어 동네병원으로 돌려보내려고까지 했는데 자살 하나로 내 병명이 바뀐다고? 네가 뭐라도 되는 거야? 점쟁이라도 돼?


“풀 배터리 검사를 할 거예요”

“그렇게 도움은 안될 겁니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 정신상태에 대해 이것저것 설문하고 상담하고 검사하는 풀배터리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사는 그 검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는 이미 나에 대해서 조울증으로 판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나는 한편으로 의사에게 네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서 분명히 알 필요가 있었다. 기어코 풀배터리 검사를 받았고 그 검사는 역시나 의미가 없었다. 그저 의사가 나의 양극성 장애를 더 확신라게 만들었다. 그는 그리고 애초에 그 검사 따위엔 관심도 없었던 거 같다.


그는 결국 옳았고 나는 원인불명의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는 잠을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 잠은 잘 자는데요. “라고 이야기했던 거 같다. 하지만 잠을 잘 잔다는 것은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유튜브 도파민에 절여져서 항상 늦게 잤다. 그러니까 잠이 올 때까지 그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영상들이 너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엄청난 호기심이 생기고 영상과 내가 물아일체가 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자 하나하나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잡생각을 많이 했다.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고, 아니 그게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만의 세상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피곤에 절었다. 근데 그런 삶이 당연하고 남들도 그렇게 사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조증과 경증을 반복하는 감정의 널뛰기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게 그럼 정상이라는 겁니까?”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감정의 널뛰기를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까지 과하게 흥분되거나 우울하지 않는다고, 그저 잔잔한 호수 같다고 말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는 내 삶의 모든 것을 흔들고 내 세계의 균열을 알리는 일이었다. “다들 영감을 받고 삘이란 걸 받아서 뭔가를 하잖아요?” 그렇다고 다들 감정이 나처럼 널뛰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럼 갓생을 사는 사람들은 뭐야? 도대체? 여전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조증이 오면 나는 항상 갓생을 살아야 한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 부지런하게 살아야지 숨쉴틈 없이 부지런한 게 내 모습이야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그게 끝나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완전한 무기력에 빠져버렸다. 그냥 할 수가 없었다. 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냥 하기가 싫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들 작심 3일이라고 말하지 않나. 나만 그런 게 아닌데. 왜 자꾸 감정의 널뛰기를 하지 말고 감정이 항상 평온 해지라는 가지? 나는 여전히 그때까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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