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알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영원토록

by 고 임리

이별 후의 20시간 로드 트립


방콕시내에서 카오락까지는 차로 10시간이 걸린다. 10시간의 태국 로드 트립 중 나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노래를 잘하고 좋아했다. 그는 자기만의 취향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졸리다며 자기 나라 노래를 불렀는데, 태국의 이국적 풍경과 맞물려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모터사이클도 좋아했다. 할리데이비슨을 좋아해 실제로 소유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알고 있었지만, 헤어지고 나니 더 와닿았다. 그는 오토바이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행복해했다.


그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그런 게 있는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에게 내가 좋아하는 취미,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거리가 있나?


그냥 내게는 해야 할 일, 하면 괜찮을 만한 일, 꽤 괜찮은 일들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취향이나 취미는 있지.


근데 진짜 좋아하고 행복한 건? 해외여행? 안 가면 그만이고. 깔끔한 호텔, 안전한 비행기 없이도 갈까? 골프? 다른 사람들도 다 치고 부모님이 같이 가자고 하니까 하는 거고. 식도락? 다이어트하면 안 하는 거고, 사실 그렇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블로그? 그것도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전히 과거처럼 협찬을 혹시 받을까 해서 하는 것일 수도. 아니면 그냥 내가 사고 먹은 거 자랑하려고? 쇼핑? 그것도 돈 낭비인 것 같다. 사치가 아닐까. 영화? 그것도 다들 보는 거 아닌가?


그는 설사 죽더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니, 모터사이클을 탈거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처럼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겠다. 돈과 시간을 써서라도 투자를 해서라도 하고 싶은 것 말이다. 내게 그게 도대체 뭘까? 나는 그걸 왜 30살이 넘도록 모르는 걸까. 가난해도 돈이 없어도 '소확행'이라는 게 있잖아. 그게 내게 뭔데? 그냥 하고만 있어도 행복한 것. 남들이 뭐라고 해도. 설사 쉽게 죽음까지 가는 길이라도. 나는 그걸 몰랐다. 그는 그걸 아는데 나는 몰랐던 것이다. 도대체 나는 뭘 해야 행복해지는 걸까. 이젠 갖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아는게 있을까. 그 처럼 모터사이클을 좋아하고 노래를 사랑하거 멋내는 걸 좋아한다는 것과 같은 것.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캐릭터인지,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하지도 공개하지 않았구나. 나는 나에 대해 몰랐으니까.


나는 그가 어떤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어봤을때 답할수가없었다. 그래서 ‘없다’고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에 대해서 단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한적도 고민해본적도 없었던거같다. 영화를 천편 이상을 보고 들은 음악을 또 듣고 또 듣고 하는데 말이다.


갖고싶은거, 좋아하는 걸 찐짜 모르니까 내 삶은 무의미하고 재미가 없었던거같다.

그저 폭식, 과식, 도파민만을 찾아서 쾌락에 내 몸을 맡겼다. 그게 문제인지도 몰랐다. 그저 나의 마음의 소리가 클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저 욕망이 크고 야망이 커서 그런거라고. 하지만 난 식욕, 욕망, 도파민 뭐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저 그들에게 지배당했을뿐이었다.





카오락에서의 5일


그는 비건에 아침을 제외하면 식사를 거의 안 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나고야에서 알고는 있었다. 로드 트립을 하는 와중에도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 역시 태국의 달콤한 밀크티나 망고 주스를 마셔서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와 함께한 5일 동안도 우리는 조식은 먹었지만 점심 저녁을 푸짐하게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 한국인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렇다 보니 나 역시 내가 좋은 레스토랑이나 식도락에 크게 관심이 없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여행 와서 마구잡이로 과식하고 그랬던 건 조울증으로 온갖 정보가 마구잡이로 들어오고 산재되어서 호기심이 엄청나게 발동해서 그동안 그랬던 건가. 그런 생각. 지금은 먹는 것 앞에사 차분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나를 괴롭힌 폭식, 과식은 끝이 난걸까.


그는 음식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나 역시 그의 눈치를 많이 봤다. 그러면서도 그냥 남기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그는 파인애플 볶음밥에 들어있던 파인애플 심지를 잘못 삼켜 아주 난리법석을 떨었다. 나는 그냥 못 본 척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가 음식을 뱉어내는 것을 보고 입맛이 떨어져서 남겼다고 했다.


이것은 내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조울증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당연히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강박이 싫었고, 그의 눈치를 보면서도 음식을 남겨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그가 계속 고통받고 토하도록 내버려 뒀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너 때문에 입맛이 떨어져서 남겼다'는 훌륭한 답안지를 낼 수 있었으니까. 내 인간관계는 항상 이런 식의 대응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타인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고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증거다. 거절을 못해서 오히려 이런 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로 오해받기도 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신념에 따라 밥을 다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로컬 마켓으로 데이트도 갔다. 정말 웃긴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카오락 마지막 밤에도 결국 싸웠고, 완전히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럼에도 그는 10시간 동안 매너 있고 인내심 있게 운전을 했다. 휴게소에서도 화장실 입장료를 내주거나, 프랜차이즈 카페로 데려가 음료수를 사주고, 화장실 앞까지 차를 대주는 등 많은 배려를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정말 그의 배려였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공항에 다다라서 하는 말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10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말이다. '계속 잘해줄 거면 잘해주지 말이야.' 그것 역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이었다는 걸.


그와 공항에서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와 정말 헤어졌다는 것을. 그와의 감정이 정말 깊었다는 것을. 슬픔이 갑자기 면세점에서 훅 올라왔다. 마침내, 나는 출국이라는 퀘스트를 완성했기에. 이미 와보았던 출국 면세점이란 컴포트존에 이르렀기에. 출국 면세점에서 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조울증의 '감정의 지연배달'이라고 한다. 늦게 감정이 올라왔다. 눈물이 흐르고 서글퍼졌다. 나에겐 공항에 가야 한다는 목표가 우선이었기에 참아왔던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 감정도 모르는 바보로 15년을 살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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