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오래된 나의 울타리

엄마

by 상생

오랜만에 친정에 들렀다.


결혼 후 대전으로 이사하고 시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사실상 친정 나들이는 거의 할 수 없었다. 명절이면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와 대접을 해야 했고, 평일에는 아이들이 어려 집을 비우기 힘들었다. 그때는 엄마도 아직 젊었기에 굳이 가지 못해도 마음 한편에 큰 걱정이나 조급함은 없었다.


이제 엄마는 여든 후반의 나이가 되셨다. 두 번의 큰 폐 수술로 호흡도 걸음도 불편해지셨지만, 그럼에도 나의 아침 식사 한 끼를 위해 두 시간이 넘도록 부엌에 서서 식사를 준비하셨다.
안쓰럽고 감사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해드리려 했더니 그냥 쉬라며 들어가 잠이라도 더 자라고 하신다. 나의 안위를 이렇게까지 헤아려 주고 위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침 맛있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인사를 건네자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신다.
“30년 가까이 밥을 해 먹였는데, 이깟 한 끼가 뭐 그리 대수겠냐.”
그렇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는 식구의 한 끼를 늘 소중히 여기셨고, 한 번도 소홀히 하신 적이 없었다. 지금은 오빠 내외와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러하시다.


조카들은 커서 각자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오빠와 언니는 늘 하던 대로 직장에 출퇴근을 하니 혼자 계시는 시간이 길어졌을 터였다. 심심하시진 않을지 여쭤보았더니 아침에는 산책을 하고, 오전과 오후에는 살림을 챙기고, 저녁에는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며 즐겁게 지낸다고 하신다.
마침 옆에서 방송을 함께 보게 되었는데, 엄마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힘들게 살아온 가수가 탈락할 때면 텔레비전을 향해 “어떡해…”를 연발하며 안타까워하신다. 이름도, 사연도 낯선 가수의 무대에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고, 사돈의 팔촌이 땅을 사도 다행이라며 진심으로 기뻐하시는 그 모습은 내 마음에 오래 남는 지표가 되었다.
태어나서부터 지난 30년은 꿈처럼 흘러갔다. 걱정 없이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과 찬란했던 젊음의 시간들은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울타리가 되어주신 부모님 덕분이 아니었을까.


부자는 아니었지만 인간미가 넘쳤고 늘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우리 엄마. 그리고 일찍 돌아가신 안타까운 나의 아빠. 나 역시 이미 성장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지, 아이들이 닮고 싶어 할 만큼 좋은 어른으로 살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고집이 세고 가끔은 불통이라 속을 태우기도 하고, 이제는 허리도 곧지 않고 까맣게 염색한 머리가 어색해 보이지만, 어려운 시절에도 비굴함 없이 콩 한쪽을 이웃과 나눌 줄 알았던 우리 엄마를 나는 기억하고 존경한다.


지금의 나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훨씬 더 풍요롭고 여유가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이 그립다고 느껴지는 건, 그 따뜻한 울타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나의 엄마는 여전히 내게 사랑의 샘이 솟는, 가장 안전한 휴식처다. 그리고 그런 휴식처가 아직 내게 있음이 나의 큰 복이라 여기며 소중히 생각한다. 건강하시길,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주시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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