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은 나에게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고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
그때 나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웃는 얼굴 뒤로 감춘 울음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밤마다 덮어놓고 울던 날들
아침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일어나
아이들에게 밥을 차리고 출근 준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던 내가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선생님이라는 역할로
나는 참 많은 것들을 감췄다.
아프다는 말도 힘들다는 말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날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건 분명 도망이 아니라 버팀이었다.
큰아이가 어느 날 말했다.
“엄마, 저 먼저 씻을게요. 엄마는 좀 쉬세요.”
막내가 품에 안겨 속삭였다.
“엄마가 제일 좋아.”
그 몇 마디에 나는 또다시 하루를 살아낼 이유를 찾았다.
남편이 주말에 잠깐 다녀가는 짧은 시간 속에도
말없이 조용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주는 그 뒷모습 속에서도
나는 아주 작은 위로를 받았다.
나를 사라지게 했던 건 삶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늘 괜찮은 척하며 버티던 그 시간들이
나를 점점 지워가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나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저 너무 오래 참아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나에게.
“사라지고 싶었던 너의 마음, 나는 안다.
그래도 버텨줘서 고마워.
너의 존재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는 사라지는 대신
그 마음들을 껴안고 살아가기로 해.”
아무도 몰랐던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했던 그 시간들을 살아낸 나에게.
나는 지금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