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연습의 시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그렇게 고마운 줄은
예전엔 몰랐다.
별일 없는 하루,
아프지 않고
울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는지
살아보면서 알게 됐다.
그런 날들은 드물었지만
가끔씩 찾아왔다.
그럴 땐
아이들 웃음소리에 조금 웃을 수 있었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한숨 돌릴 수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는 시간이
나를 살리는 순간이 되었다.
시간이 무심하다고 생각한 적 많았다.
그저 지나가기만 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간은 늘 곁에 있었다.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을
천천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건넨 말들,
무심한 듯했던 손길,
피곤한 날 따뜻하게 비워진 식탁.
그런 것들이
시간 속에 조용히 쌓여 있었다.
나는 그걸 미처 보지 못했을 뿐이다.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건
그 시간 덕분이었다.
모든 걸 견딘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버틸 수 있게 만든 순간들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시간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뿐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그 시간 위에 다시 서 있다.
어쩌면 아직도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지만
예전의 나처럼 무너지지도 않는다.
흔들릴 수는 있어도
다시 돌아올 자리를 안다.
그 자리가
이제는 내 마음 안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책상에 놓인 명찰을 무심코 만졌고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그리고 내가 사라지고 싶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그 안에서 나는
오랫동안 내가 외면했던 마음들을 마주했다.
참았던 말, 삼켰던 감정
잊고 살았던 '나'라는 존재까지.
오랫동안 나는
나를 가장 나중에 생각해 왔다.
당연하게 아이들 먼저,
남편 먼저,
학교 일 먼저.
내가 힘든 건
늘 그다음이었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 그렇게 살았다.
나보다 누군가를 먼저 챙기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졌고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했는지조차
희미해졌다.
마음속에 말이 많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참았고,
버텼고,
별일 아닌 것처럼 넘겼다.
그러다 문득
이게 정말 나의 삶이 맞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엔,
나를 지우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조금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도움이 필요하면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무조건 참지 말고
나를 아끼는 선택을 하자고.
이제는 나를 조금 더
진심으로 돌봐야 할 때라고.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야 더 오래 사랑할 수 있고
덜 상처받을 수 있다.
이제는
내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너 참 잘 견뎠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조금 늦더라도 괜찮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선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했다.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은
분명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려 한다.
이번엔,
정말로
나를 지우지 않고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