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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krsnrn Mar 10. 2021

검지가 가벼운 사람

이제 나는 글쓰는 법을 까먹은것같다. 순간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있다. 전에도 이런 글을, 단어를 썼던 적이 있는거 같은데. 눈앞에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놓고 다른 것으로 다시 바꾸고 그것을 반복해서 다시 돌아와 처음의 것을 다시 본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버릇들에서는 유익함을 찾기 어렵다. 저기 마음의 작은 구멍 깊은 곳에는 무엇인가를 하고싶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메아리가 귀까지 닿질 않는다. 내 귀가 먼걸지도 모른다. 들리는데 눈 앞의 것들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는 걸지도 모른다.


오늘 동그란 달을 보았다. 유난히 피곤한 하루를 보냈는데 아무 생각없이 글을 쓰고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타이핑하는 이 촉감들이 좋은데 나는 그에 걸맞는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것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표현할 줄 알았다. 이런 어리석음을 종종 목격하며 '나는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고찰을 끝낸 줄 알았으나 아직 현재진행중이었다. 오늘 또 나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작업 마감을 앞두고 이런저런 핑계를 꺼내며 게으름 피우는 내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할 여유는 허락하면서.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단어를 골라내지 못하겠다.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고찰할 시간을 감내할 끈기가 부족한 것일까. 아마 이 두개로 근거가 충분히 설명되는 것 같긴하지만. 내 말끝처럼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 못한다. 도망치듯 뒷걸음질쳐 지금 위치에 앉아있다. 어렸을 땐 어려웠던 것이 지금은 쉽기도 하고, 어렸을땐 쉬웠던 것이 지금은 하기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뻔히 어긋난 조각의 자리를 두고 머릿속으로 그 조각을 깎고 이어 그 자리를 끝내 채우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남긴다면 그 중하나는 '아직 젊다. 도전하라' 일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천천히 가라' 일 것이고. 남은 것들 중 어떤 하나는 '이제 내리막을 걸을 준비를 해라' 일 것이다.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귀언저리를 맴돌다가 떨어질 것이다. 지금 나는 새벽에서 아침을 기다리고 한낮에서 밤을 기다리고 이른 저녁에서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나아갔던 시간보다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더 오래걸렸다. 새로운 출발이 설렌다던 친구의 말이 지난 며칠을 비췄다. 겁 먹고 마음을 다잡는다며 제자리로 도망치기 급급했던 시간들이 초라했다. 원래 흐르는 시간보다 더 추욱 늘어진 것 같은 하루치의 시간이 버거웠던 날과는 다르게 근 5일간은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흘렀다. 정신없이 일했던 것도, 정신없이 놀았던 것도 아니었다. 다음을 떠올리며 무엇인가를 빈자리에 채우고 그 자리를 다시 비우는 일을 반복했다. 말이 많고 설명이 장황한데 비해 눈 앞의 상황을 짧고 우아한 단어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어떤 목소리도 아닌 이 입이었다.


 앞에 보에는 것을 따라 그것의 까닭을 찾으며 뒤로 걸음하는  보다  앞에 보이는 것이 당장 떠올리는 것을 따라  발을 바닥에 두지 않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 유익하다. 적어도 나에겐.  이유  하나는 뒤로 걸음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야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일기를 쓴 날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마음의 흐름이었다. 새 신발에 뒷발목을 내어준 채로 을지로에서 연희동을 지나 연남동으로 향했다. 사실 지금도 연희동과 연남동의 위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거닐던 곳은 연희동에서 떨어진 연희동으로 향하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들을 잡으려 하면 그 잡념과 그것과 연관된 자질구레한 단어들이 손짓마다 딸려온다. 그런 삶을 반복했던 때에 마주친 개성은 남이 찾아주는 거란 말이 다닥다닥 붙어 그 부피가 감도 잡히지 않을만큼 불어난 단어조각들을 모조리 떼어 없애버렸다. 몸의 제일 안쪽에. 피부 제일 가까이에 있던 단어들만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 단어들은 여러 목소리가 쌓여 지금까지도 발음되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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