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이동.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인생의 변화가 절실했던 내가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찾아낸 인생의 차원, 그리고 그 경계선을 만나는 여정을 공개해보려고 한다.
두려움의 최면
며칠 전,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 큼의 시간을 쓸 수 있어? 회사, 사업, 하던 일 모두 접어두고 말이야" 인원이 많아 대답도 다양했다. 1주일에서 길어야 12개월 정도. 그중, 2년으로 선택한 친구에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농담 아님을 감지했는지 이제야 솔직해진 친구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리고 꼭 바뀐단 보장도 없잖아?" 이해한다. 친구가 말한 '보장 없음' 뒷면엔, 두려움이 자리해서 인간의 확신을 불신으로 가공하고 있다. 그건 가끔씩 우리의 무의식에 대놓고 속삭이기까지 한다. '했다가 잘못되면? 하지 마, 그냥 인생 가만히 둬'
차원의 탈출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꼽으라면 이때다. 대학 입학 후 첫 중간고사 시간. 창문 밖을 보다가 시선을 안쪽으로 돌렸는데 모든 학생들이 수감자로 보인 것이 아닌가. 숨 쉬는 게 답답했다. 의자를 밀치며 벌떡 일어난 탓에 정적이 흐르던 강의실엔 굉음이 터졌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도로 앉지 않고 그대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여러 차례 나를 부르는 교수님을 뒤로한 채 건물 밖으로 나왔다. 캠퍼스 조경이 그날따라 더 예쁘게 보였다. 행복했다. 그런데 나라고 왜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어김없이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너 오늘 자퇴했다가 인생 잘못되면? 그러지 마. 다시 강의실로 돌아가, 가만히 있어'
- '내 인생 내 거니까, 너나 가만히 있어'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에게 반응하는 순간 인생의 운전대를 놓치게 된다. 두려움을 떨쳐내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거절하고 내보내면 그만이다. 이때 알았다. 인생 경로가 바뀌는 계기는 환경이 아니라 나의 결정권에 의거한다는 사실을. 캠퍼스를 지나 정문을 향해갈 때 더운 공기를 타고 오는 그날의 꽃향기를 기억한다. 감옥 밖으로 탈출시켜 준 과거 나에게 다시 고마움을 느낀다. 아 참, 정문을 나오고 나서야 이런 혼잣말도 했다. "쟤네들, 왜 다 똑같이 하는 거야" 어릴 때부터 고착된 사고에 갇히는 걸 매 맞기보다 싫어했던 나는, 생각을 호흡처럼 멈출 수 없었다. 이 시스템은 평생이다.
갈증
각자의 20대 인생을 황금기라 칭하지만 의미는 제각각이다. 미래를 위한 기회비용의 측면과, 싱싱한 간으로 밤 문화를 즐기며 소비하는 쪽. 여기 둘 다 해당되지 않는 인간 있다. 사업이 정점으로 달했던 20대 중반 무렵. 강의실에서 뛰쳐나온 때처럼 또 한 번의 답답함을 느꼈다. 왜 하필 지금이냐며 혼자 하는 투정과 별개로, 멈추지 않는 생각은 날이 갈수록 깊이 하강했다. 이 장르로 깊은 대화가 가능한 또래도 없던 터, 다들 먹고 살 걱정만 했지 인생에 관한 깊은 고찰은 없었다. 평소 교류가 없었던 지인들과 만나면 처음엔 대화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드러나는 모순된 면모를 볼 때면 실망 대신 나의 고독함은 배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말벗은 항상 중기업 회장님들과 각 대표님들, 친구들의 부모님, 택시 기사님이 된다. 어느 회장님께서 나의 고충을 알아보셨는지, 폰에 저장된 명언 글귀와 자기 계발서를 보여주시면서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서두르지 말고 방향을 바꿔보게" 방향. 물론 중요하다. 내 생각은 많이 달랐다. 반론을 쥐어짜 개기려던 게 아니다. 방향이 어느 쪽으로 달라져도 동일한 차원에서 수평적 이동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도달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철학과 심리학 역시 이런 나를 구출해 주지 못했다.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결국 수완 좋은 사업과 모든 활동 올 스톱. 한창인 황금기 비용에 모든 걸 멈추고 뜬금없이 인생 연구에 7년을 사용한 사람이 있을까? 기어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 지금 글 쓰고 있는 인간이다.
차원의 경계선
갑작스러운 행로 변경에 걱정 어린 주변 시선을 뒤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당시 내 선택은 자기 계발도, 자기 계발도, 학문적인 지식 습득도 아니었다. 과목과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기술을 익히고, 지식을 쌓고, 돈을 더 벌고, 사업을 확장하는 1차원적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로지 내가 놓인 오늘의 차원에서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강한 집념이 전부였다.
그 경로와 연결된 통로만 찾아내면 사람들의 희망 미수에 그치는 그놈의 성공, 행복, 자유를 누리게 해 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매 시즌마다 쏟아지는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방법론이나 미지근한 자기 계발 이런 거 말고. 몇 개월이면 해결될 줄 알았던 게, 서두에 친구가 대답한 2년을 지나 7년이 된 것이다.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악어 근성 덕분에 오늘 이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 수어년 동안 한 가지만 몰두하니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건 당연한 결말이었다.
근데 철학가도 아닌 내가 무슨 수로 경계선을 발견하고 이동 방법까지 알아냈을까? 내 인생 소유주인 나를 실험체로 쓰겠다는데 여기 특정 분야 학문적 지식이 필요한가? 물론 많은 날을 울고, 진흙탕에서 굴렀다. 처음부터 이 모든 위태로운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이 있다. 어머니다. 당신 아들의 무모했던 결단에도 자신의 걱정을 끝까지 묵언해주신 인내가 있었기에 차원의 달리함이 가능했다. 이제 말 꺼내지만, 이걸 발견하고자 했던 궁극적 목적은 나를 포함해서 엄마와 여동생의 삶에 오류 없는 성공 레시피를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현재는 이 이동법으로 친구들과 의뢰인들에게 적용하면서 각종 문제 해결을 돕고 있다.
두려움은 이제 내 안에 자리할 틈이 없다. 탈출의 신호도 더 이상 없으니 갈증도 없다. 날마다 나에게 물을 뿐이다. 오늘은 오늘의 차원에 있어도 되는지. 이건 점검의 차원을 넘어선 생각이다. 아무런 지식 없이 시작된 7년의 여정에서 4년 차쯤, 그토록 찾던 차원의 경계선을 만났다. 지금부터 재밌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차원의 이동
0차원 : 점
1차원 : 선
2차원 : 면
3차원 : 입체. 정육면체의 주사위.
직선의 세상, 1차원에 사는 개미는 2차원으로 이동할 수 없다. 쉽게 말해 개미처럼 운전했다간 직진, 후진만으로는 부산 할머니 댁에 도착할 수 없다. 개미에게 지식을 부여해도, 노동 수준만 더해져 옆에 개미보다 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즉 공간의 이동으로는 차원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우리 3차원 관측자 입장에서 개미 동선을 보고 간혹 2차원으로 쳐주지만, 개미는 그냥 평생 1차원이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는데 참 멀게 느껴진다. 무서운 건 우리의 삶에도 그런 괴리가 발생한다.
- 연애와 결혼
- 갑부와 부자
- 지식과 지혜
- 아는 것과 하는 것
- 즐거움과 행복
- 모태솔로 철수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
- 거지가 복권에 당첨되어 차를 샀다.
- 무식이가 지식을 익혀 똑똑해졌다.
- 똥손이가 기술을 배워 기술자가 되었다.
- 집돌이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 연애를 잘하면 결혼을 잘할까?
- 돈이 많다고 다 부자가 되는 건가?
- 지식이 많다고 지혜로운 자가 될까?
- 아는 게 모두 실행으로 옮겨지나?
- 즐거움이 커지면 그냥 쾌락 아닐까?
모쏠 탈출한 철수. 연애고수가 되었다 한들 상위 차원의 사랑, 그 본질을 알지 못하면 웨딩홀은 피해야 할 블랙홀이다. 골인했더라도 그 결혼생활은 서로가 힘들어진다.
- 프러포즈받는 모쏠 길동이.
- 흙수저가 금전적 도움 없이 금수저로.
- 초졸 학력의 기업 회장님.
- 블로그 유튜브 없이 우리를 키워준 부모님.
- 불우이웃에게 기초생활수급 전액 기부.
나이 불문 학력 지식 상관없다. 하위 차원에 있다면 글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자식이 부모 마음을 알 수 없는 것과 상통한다. 김 모 씨를 두 운명으로 나눠보겠다. 빠릿빠릿하게 일 잘해서 연봉 좀 오른 김대리. 퇴직금으로 개업 후 기업을 이룬 김 회장님. 두 결과의 차이가 공간의 거리로 보이는가? 예시가 좀 밍밍해서 현실 사례를 가져와보겠다. 이번엔 이 모 씨. 숙박시설 청소 알바다. 알바를 더 열심히 했더니 전국 숙박업계를 점령하는 기업의 회장이 되었다.
공간의 이동만으로 문장을 뽑으니 어색해서 웃음이 나온다. 알바와 회장. 사회적 위치를 떠나, 둘의 격차는 거리가 아닌 괴리로 보인다. 그의 과거 이동경로를 역추적하면 어느 경계선이 발견될 텐데, 그곳에 아르바이트생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혹자가 이 글을 본다면 무엇을 말하는지 단번에 알 것이다. 환경과 감정으로 연결된 생각의 통로를 차단하고 '오늘의 차원에서 늘 벗어나지 못할까' 이것을 늘 고민해야 한다. 이건 단순히 집중이나 명상의 개념이 아니다.
무한한 기회의 차원, 바로 우리의 삶 자체다. 이런 특혜를 받고도 멈춰있다면 개미보다 낮은 차원에서 지내는 것이다. 걔넨 지금도 일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말했다. 만약 깊은 구덩이에 빠져있다면 이상한 핑계 연구 말고 그냥 나오길 바란다.
집에 개미를 키운다면 이렇게 해보자. "개미야. 나 좀 올려다봐봐, 나 따라와 봐" 이 요청이 어처구니없어 보이나? 오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겠다면 자신을 직선의 세상에 가두겠단 결정이다. 이게 더 어처구니없지 않을까? 여담으로 주식에 털리는 개미 투자자의 명칭을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케이크 자르듯 갈라보자. 공간의 이동과 차원의 이동. 서로 다름은 처음부터 비교 대상이 아닌 것이다.
결정의 결점
차원의 이동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왜? 자기 계발, 매출 상승, 승진처럼 수준의 이동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차원의 이동을 어떻게 실현하냔 말인가? 이제 이 글의 존재 가치가 드러난다. 바로 밝히겠다. 차원 이동이 훨씬 쉽다. 다시 강조하겠다. 훨씬 쉽다.
당신의 집중력을 잠시 빌려보겠다. 모두가 결심을 한다. 결정과 마음이 합쳐진 결심. 치킨 메뉴도 결정하면 바꾸지 않으면서 무려 마음을 배팅한 결심은 쉽게 풀어버린다. 담배 끊기로, 화 안 내기로, 살 빼기로. 이런 건 새해 단골 메뉴다. 그리고 설날쯤 되면 라이터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지르고, 폭식을 한다. 이유가 뭘까?
결과를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결심과 결점이 낳은 착각이다. 착각도 감정이다. 결심 때를 떠올려 보자. 감정에서 비롯되었을 확률이 높다. 예쁜 노트를 쇼핑하고 투 두 리스트(to do list)를 작성하거나, 실천 가능성을 분석한다. 내 주변에 그런 지인이 보이면 노트 꾸미기와 분석 놀이는 집어치우고 차원 이동의 개념을 알려준다.
이미 구매한 노트는 당근에 팔면 그만이다. 위험한 건 자신과 인생을 두고 '이번엔 제대로 바뀌어보겠다'의 결심이다. 무의식 뒤에 슬그머니 들어선 결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언제 그만둔지도 모르고 새해가 되면 작년과 같은 걸 한다. 기분으로 삶의 경로를 설정하면, 그러니까 잘못된 결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올바른 저항력을 갈취당한다. 곧 '뭐 내 인생 언젠간 바뀌겠지'라며 막연한 미래에 불리한 의존을 한다. 이 패턴에 걸려들면 혼자 힘으로 내 삶을 상위 차원으로 옮겨놓지 못한다.
지금부터 그 저항력을 복원시켜보겠다. 당신의 상상 속에 구슬 하나를 가져와주길 바란다. 구슬이 당신이라고 정하자. 얼마나 빨리 굴러가는지, 크긴 어떠한지, 흠집 없는지, 어떤 색깔인지 등. 여기까지 보통 차원의 생각과 관점이다. 그다음 차원으로는 어디에서 굴러왔는지,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해 본다. 똑똑하다.
이제 내가 도달한 마지막 차원의 관점에서 보겠다. 구슬의 방향을 언제든 바꿀 수 있으며,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글씨를 굵게 해서 당연한 것을 뭔가 대단한 것처럼 꾸민 게 아니라, 실로 대단한 거다. 인생이라는 복잡한 구조에 구슬은 0차원에서 시작된 사실을 잊지 말자. 내 인생의 경로와 차원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건 없다. 이 자체가 행복이다. 자신의 결정을 이루고 싶다면, 결심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결점이 묻어있는지 확인해 보자. 이전보다 결과를 얻기 수월해질 것이다.
붓을 바꾸는 화가들
여기 화가 한 명이 있다. 자꾸 그림이 엉망이라며 성질을 내고 있다. 그는 붓을 바꿔달라고 한다. 다른 붓을 줬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 화가는 개미처럼 자기가 갇힌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기한 붓만 탓하며 살아야 한다. 도구는 차원의 이동과는 별개다. 물론, 돈과 지식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마는 그 밑바탕에는 차원의 이해도가 대전제로 깔려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팔자타령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환경 탓이라 말한다. 대게는 본인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자본금이 많아지면, 주식이 오르면, 결혼에 골인하면, 로또에 당첨되면 자신이 변화될 것으로 착각한다. 인생이 아니라 기분이 바뀐 것이다. 설령 그리된다 한들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한다. 결과가 나빠지면 또다시 옆 사람을 탓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정당화시킨다.
그렇다면, 멋진 작품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화가를 바꾸면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으로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지 진리는 늘 쉽고 간단하게 우리 곁에 있다. 차원의 경계선을 발견하는 것은, 그러니까 인생의 경로가 바뀌는 첫 움직임은 환경 탓과 잔꾀를 버리고 나를 돌아보는 진리의 수용에서 시작된다. 이 파트에서 화가는 왜 데려왔을까? 우리가 화가이기 때문이다. 한 폭의 그림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제 붓이 아닌 화가를 바꾼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생각이 깊어졌다면 그것이 당신과 나의 관계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제 당신은 삶의 차원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원 이동에 대한 선택권도 생겼다. 당신이 현재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간의 문제, 차원의 문제를 나누어 판단하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을 것이다. 일상에서 숨 막히는 문제를 마주치면 이 글을 다시 열어보길 바란다.
오늘의 차원에 당신을 가두려 하는 자의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길 바란다. 오랜 시간 제자리라면 고착된 사고에 갇힌 건 아닌지 당장 점검해야 한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이가 주변에 있다면, 이 콘텐츠를 공유해 줘도 좋다. 열정의 온도가 높아진 그에게 이 글은 차원의 경계를 만나는 계기로 될 것이다.
나는 현재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 주며 각종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사실 차원의 이동을 마친 건 나뿐만이 아니다. 나를 믿고 따르는 수강생들도 이미 차원의 이동을 마쳤다. 그들에게 가르쳐준 것을 실생활에 적용했더니 즉시 달라진 결과는 가게 매출 상승, 연봉협상 승인, 영업 계약, 창업 결정, 승진, 결혼, 연애, 인간관계의 호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나는 클래스 교육 콘텐츠처럼 특정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친 게 아니다. 단지 오늘의 이 이야기를 전달했을 뿐이다.
재미있는 건 수강생 중에는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포함되어 있다. 고백하나 하자면, 어머니를 변화시키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나의 활동은 이미 3년 전부터 가능했지만, 총 7년이 걸린 이유는 따로 있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에게 교육받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게 오늘날 발동했다.
가족의 변화를 포기하고 활동하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무엇보다 내 가족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나는 그 누구도 바꿀 수도 없거니와 가르쳐서도 안된다는 마음가짐이 나의 활동을 강하게 막았던 것이다. 아무런 경제활동 없이 나를 다스리는 데에만 4년, 어머니에게 3년, 수강생들 1년, 이렇게 총 7년이 넘은 사연이 있다. 많은 날을 울었다.
내가 오늘 이 글을 남긴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 나는 어머니의 의식과 삶의 경로까지 바꿔놓고 이곳에 왔다. 본래 인간은 창조주에 의해 불가능이 없는 무한한 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진리로 깨달은 경험으로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나는 차원에 갇혀 얼어버린 한국인들의 각종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업활동에 힘쓰고, 한국 사회에 차원의 이동을 알릴 것이다. 그리고 삶이 변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들의 결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의 위력을 세상에 증명해 나갈 것이다. 이후로도 차원의 이동에 관련된 주제를 따로 연재할 예정이다. 차원의 변화는 두 걸음이면 된다. 경계의 발견, 그리고 이동. 여기 차원에서는 이전에 놓여있던 장애물은 솜이 된다.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결과를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된다.
차원이 바뀌면 공간의 이동에서 애쓰던 자신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래서 수강생들은 말한다. "경로를 보장받으며 산다는 게 얼마나 황홀한 인생인지 모두가 알아야 해요. 설레는 인생,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하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매일 행복하다. 오늘도 가족을 포함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주는 날들을 살고 있다. 나는 이렇게 진리를 무기로 인생의 차원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요한복음 8 :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