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성공 스토리, 입맛에 맞으세요?

"어쩐지... 단짠 비율이 좀 이상하더라니"

by 멘탈코디

이 이야기를 쓰는 나도 재밌는데,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어젯밤 떠오른 통찰의 순간을 잡아왔다.



매일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채집한다. 이 이야기는 쏟아지는 콘텐츠에 파묻혀 사는 우리에게, 좀 더 똑똑한 소비의식을 선물로 준다. 낭비되는 시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다.




혀에서 피어난 통찰


보통 수면욕이 식욕을 이긴다. 하지만, 어젯밤 유혹은 쏟아지는 잠보다 강했다. '냄비에 물을 올릴까 말까' 한참을 잠 못 이루게 한 건 바로 라면이다. 새빨간 소스에 국물이 없는 볶음면. 여기에 빠져든 지 벌써 10년째다. 한 번에 기본 5개는 먹어치운다. 이를 목격한 지인들은 볼 때마다 적응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이미 부엌에 도착했다. 오늘은 4개군(메인사진). 약간 경이로웠다. 새삼스레 양에 놀란 게 아니라,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대차게 먹는 내 모습이 그날따라 낯설었다. 졸렸던 나 먹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게 그렇게 좋아? 왜 좋아?' / '맛있으니까' 마음에 차지 않는 나의 대답에 생각은 더 깊어졌다. 맛있는 건 결과지 이유가 아니다. '어? 잠깐!' 단 걸 먹으면 매운 게 땡기고, 매운 걸 먹으면 단 게 땡기는 혀의 본능을 타고 통찰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발견


사람들을 홀리는 대표주자는 라면과 치킨이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공식이 있다. 단맛과 짠맛, 단연 최고의 조합이다. 속칭 '단짠'으로 불리는 이 조합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모든 음식의 정답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단짠에서 느낀 감정으로 전혀 다른 곳에서 시사점을 조준해 보았다. 바로 오늘날의 콘텐츠 시장이다.


모임에 제한이 걸리면서, 플랫폼 회사들은 통계자료를 통해 역대 최다 콘텐츠 소비량을 우리에게 알렸다. 개인의 시간이 반강제적으로 주어짐에 따라 지난 삶을 목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기계발 콘텐츠와 책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성공과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니즈를 파악한 콘텐츠 생산자들에 의해 시장의 공급량이 높아진 것이다. 오락성이 떨어져 지루할 줄 알았던 소재가 시장에 비중을 드러내면서 기업들도 가담하기 시작했다. 인물 소개 방식으로 국내 기업가, 외국의 유명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성공스토리가 전개된다. 수요가 좋아 보인다. 소비자들은 각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의 스토리에 빠져든다. 그리고 설렘을 느낀다. 자신도 그렇게 될 거라는 희망은 곧 동기부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인데 그 순간은 참 달달하다. 나는 이것을 단맛으로 규정했고, 곧바로 비율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아직은 이게 잘 안 느껴질 수도 있다. 감정과 맛은 둘 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맛은 있는데 어딘가 비율이 좀 이상하다. 이 맛이 아니야.




황금비율


배달음식에 환장하는 원인은 단짠 조합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단짠이 다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조합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는데 바로 비율이다. 이게 모든 맛집과 푸드기업들을 먹여 살린다. 비율에 따라 소비자들의 애정도가 달라진다. 만약 '짠맛'이 빠지고 '단맛'만 있다면? 생각할 것도 없다. 물린다. 처음 한두 번은 좋지만 나중에는 느끼해지기까지 한다. 분명 혀의 잘못은 아니다. 이를 두고 현재 콘텐츠 시장의 부자연스러운 비율에서 같은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한때 소리를 지르며 엽기적인 행위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tv에서는 방영이 불가능한 소재들을 1인 제작자들이 틈새로 노린 건데 그게 통한 것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같은 컨셉을 따라 하다 보니 이도 한풀 꺾인 듯하다. 재미없지 않다. 막상 보면 재밌고 웃기다. 그럼에도 이쪽으로 시간을 내주지 않는 이유는, 한쪽으로 쏠린 자극적인 맛에 물린 소비자들의 혀에 있다.



자기계발 콘텐츠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근데 느끼하다니까?!' 한쪽으로 치우친 단맛 때문에, 후기 좀 써달라고 아우성치는 게 이 글이다. 오해 없길 바란다. 자기계발 콘텐츠는 성공을 부추기는 신성한 장르다. 다만 성공만 비추는 내용의 비율을 거론할 뿐이다. 물론, 남의 성공을 구경하는 또 하나의 재미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머를 목적으로 자기계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소재에 왜 열광일까? 성공에 대한 열망 때문 아닐까? 진정으로 성공을 바란다면 눈에 보이는 결과, 그러니까 단지 '맛있으니까'와 같은 피상적인 생각에 갇히지 말고, 옆면 뒷면을 구석구석 살펴보러 나가야 한다. 이게 라면 먹다가 발생한 통찰의 일환이다.



이곳 '멘탈코디' 콘텐츠 역시,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함이니 어찌 보면 자기계발 유[類]에 속한다. 인간은 자랑하고 싶은 존재다. 그래서 나의 성공사례나 좋은 면은 비중을 적게 두는 편이다. 단짠의 비율을 맞추기 위함이다. 물리는 걸 억지로 먹어야 하는 고통도 잘 알고 있다. '요즘 성공담은 단맛이 너무 강해.. 짠맛도 추가하면 사람들이 환장할 황금비율이 나올텐데' 여기서 짠맛은 무엇일까?





이제 짠맛이다. 초고속 시대와 개인의 열망이 맞물려 '열린 결말의 성공담'에 열광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도 반짝이는 성공, 멋진 브랜드 스토리의 표면과 다르게 모든 성공에는 이면의 시행착오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땀을 피해 갈 수 없다. 땀? 땀은 짜잖아? 그래서 과정을 짠맛으로 본 것이다. 빠르게 성공하기만을 바라는 분위기 가운데 서서 새로운 반문을 갖게 하고자 나의 브런치 소개에는 '결과보다 과정'을 강조하는 문구가 기재되어있다. '여러분! 단맛보다, 단짠이 더 맛있어요. 최고의 맛을 아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이 글은 작가 승인이 되기 전에 작성되었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이곳에서 홀로 외쳐보고 있다. 세상에 모든 성공 이야기를 달달한 대리만족에서 그치지 말라는 간절한 내면 목소리다.



나는 성공한 사람들의 결과보다는 과정이나 출발점으로 시선을 두는 경향이 있다. 카톡이 존재하지 않았던 나의 20대 시절. 기획했던 사업이 터지면서 지인 대표들에게 축하를 받는 자리였다. 내가 기뻐할 만도 한데 '아 그렇구나'하고 시큰둥한 게 얼굴로 드러났는지 주변에서 말을 걸어왔다.


"넌 또 뭐가 그렇게 심각해? 뭐라고? 잘됐으면 된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비즈니스계 축하는 어느 정도 성공 반열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된다. 내가 이걸 성공이라고 정의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스스로 정한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돈이 왜 많이 벌린 거지?' 이 궁금증이 주변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든 이유다.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마음이 편치가 않지?' 시끌벅적한 자리를 벗어나 홀로 밤 공원을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달달하긴 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꼈다.



나는 발견한 문제를 풀기 전까지는 생각을 끊지 못한다. '열심히 했으니까'는 '맛있으니까'와 같은 성에 차지 않는 답이다. 잘 해낸 결과는 알지만, 어떻게 잘한 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단짠 비율 공식'으로 그날의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해 줄 수 있다. 우선 나는 과정을 분실한 결과는 내 것이 아니라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때문에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번져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눈앞에 '돈'이라는 단맛에 강하게 물린 나머지, 본능적으로 짠맛을 찾아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를 축하해준 사람들처럼, 좋은 결과를 놔두고 뭐하는 짓이냐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성에 차는 답변을 하자면, 나는 1회용 '인스턴트 성공'보다, '영구적인 성공'을 본능적으로 원했던 것이다. 성공의 조합보다 성공을 유지하는 핵심은 황금비율이라고 믿는다.



객관식에서 어쩌다가 정답을 맞히고, 얼떨결에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은, 그 단맛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시험 성적은 안 봐도 뻔하다. 오늘만 백점 받는 성공은 '내가 왕년에'를 외치고 다니는 말버릇을 낳게 된다.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냈다면 그 단맛에 취하지 말고, 어떻게 일궈냈는지 짠맛을 가져와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만약 이야기를 더 들어줄 시간이 있다면 마지막 '쓴맛'도 함께해주길.




단쓴


마지막으로 쓴맛이다. 당신이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면 재미있을 파트이니 편하게 봐주길 바란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에 춰컬릿 케잌이나 띠드케잌을 곁들여 먹으면 기절할 맛이다. 개인적으로 단짠보다 단쓴이 더 매력적이다. 바로 쓴맛을 가져와보겠다. 달달한 성공이 단맛, 땀 흘리는 과정은 짠맛, 그리고 실패가 바로 쓴맛이 되겠다.



남의 달달한 성공만 보고 냅다 들이켰다가는 탈이 나서 쓴맛을 보는 수가 있다. 이러한 시작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면 실망감이 크다. 이유도 모르고 넘어진 까닭에 패배감이 생기고, 심지어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진다. 또 자기 폄하의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단 걸 먹으면 당장 기분은 좋지만 서서히 건강이 나빠지는 이치를 생각해보자. 무모한 것과 용기는 다르다. 두드리는 돌다리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과연 내 사업이 잘되기만 하고, 빵빵한 통장이 계속 유지되었을까? 내 인생에도 엄청난 쓴맛이 찾아왔다. 나와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회장님이 계셨는데, 내가 십몇년간 사업으로 만든 9억을 꿀꺽하셨다. 그렇다. 2015년에 사기당했다. 사탕 하나 없이 맥주잔으로 한약을 들이켠 유치원생의 고통 정도 랄까? 아니면 쓰리다고 하는 게 맞을까? (쓴맛의 자세한 사연은 따로 발행하겠다)



실패만 보면 너무 쓰디쓰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오늘의 높이로 올려 준 없어서는 안될 계단이 된다. 마침 지금 자기계발 시장에 단맛의 너무 많지 않은가? 9억짜리 쓴맛을 베이스로, 이후 오늘까지의 단맛과 조합된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 나의 매일은 날아갈 듯 한 행복한 인생 맛이다. 나의 실패담을 과감 없이 꺼내어 성공담과 적절하게 혼합하면, 당신은 멘탈코디가 차려준 콘텐츠에 기절 맛을 느껴주지 않을까?



이 글을 만난 독자 중에 자기계발 관련 생산자가 있다면, 내용 구성을 쓴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띠드케잌의 조화를 이뤄보자.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매력적인 수요공급층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흑과 백, 물과 불, 하늘과 땅, 우리는 적절한 사이에서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다. 한쪽으로 쏠리면 다치거나 불편해질 수 있다. (자기의 범위 내 개성은 다른 이야기) 그래서 우리가 공존하는 이 세상은 중간이라는 게 분명히 필요하다. 샤워할 때 온도, 치킨의 단짠 정도, 인간관계의 센스와 예절 등.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황금비율 존재한다. 자신의 황금비율을 못 찾겠다면 멘탈코디에게 댓글로 도움을 요청해도 좋다.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을 유지하는 비율은 따로 있다. 타인의 단맛을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과정의 짠맛과, 그가 넘어졌던 모든 쓴맛을 체화시키는 게 먼저다. 이렇게 하겠다는 각오가 생겼다면 이미 성공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맛의 결과, 그 주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성공을 목표로 둘 때도 있을 것이다. 이때 '성공 후 유지까지' 의식하는 지혜로운 당신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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