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새로운 전두환인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진압되면서 한국 사회는 극도의 정치적 불안과 긴장 속에 놓였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시민들의 저항과 사회적 불만을 직접 억압하는 것만으로는 안정적인 통치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그 결과 선택한 전략이 바로 ‘감각 통치’였습니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은 야간 통행금지를 전격 해제했습니다. 이는 겉으로 보면 시민의 자유 확대였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불만을 흩어놓는 계산된 조치였습니다. 거리와 밤문화가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은 클럽, 디스코텍, 다방, 극장, 성인영화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정치적 논쟁보다 개인의 감각적 즐거움과 오락이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전두환 정권은 3S 정책, 즉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가 1982년 정식 리그로 출범하면서 전국민적 관심을 끌었고, 올림픽 중계와 월드컵 중계 역시 시민들의 시선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헐리우드 영화가 국내 개봉을 확대하고, 성인 오락 산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사람들은 정치적 현실보다 자극적 감각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전략은 매우 정교합니다. 허버트 마르쿠제는 현대 사회에서 억압이 아닌 쾌락과 오락을 통한 무력화가 지배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두환의 3S 정책은 바로 이러한 ‘쾌락적 무력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였습니다. 시민들은 표면적으로 자유를 향유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관심과 사회적 행동 에너지가 의도적으로 분산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총칼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치밀하고 부드러운 통치 시스템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것은 넷플릭스, 유튜브, 웹툰, 게임, 숏폼 콘텐츠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입니다. 전두환 시대의 3S가 ‘정치 대신 감각’을 공급했다면,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는 ‘자유로운 선택과 감각 중독’을 통해 사람들의 정신과 시간을 포획합니다.
현대 감각 통치는 이전보다 훨씬 은밀합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노트북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으며, 알고리즘은 개인의 취향을 분석하여 끊임없는 추천과 시청을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다음 에피소드 자동 재생’ 기능을 통해 시청자가 스스로 멈추기 전까지 연속적인 시청을 유도합니다. 유튜브 역시 이용자의 검색과 시청 기록을 분석하여 맞춤형 추천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은 전두환 시대의 물리적 통제보다 훨씬 강력한 정신적 통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유사점이 발견됩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 요구와 사회적 저항을 직접적으로 억압하기보다 시민의 관심을 스포츠, 영화, 밤문화로 분산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 콘텐츠와 숏폼 미디어는 시민들이 사회적·정치적 사건에 주목하는 시간을 줄이고, 실질적 참여나 행동보다는 ‘관람’과 ‘소비’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이슈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더라도, 이슈를 소비하는 방식은 단순 댓글과 짧은 영상 감상으로 제한되며 깊이 있는 토론이나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넷플릭스와 전두환의 3S 정책은 시대적 도구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전략을 공유합니다. 두 경우 모두 정치적 불만을 억압하거나 해소하기보다는, 감각적 자극을 통해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사회적 행동과 정치적 참여를 지연시키는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밤과 공간이 통제의 수단이었다면, 현대에는 정신과 시간, 디지털 공간이 통제의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감각 통치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의 자유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주의와 정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사회적 행동과 정치적 참여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전두환의 3S 정책과 현대 디지털 플랫폼 사이에는 시대와 기술만 다를 뿐, 전략적 목표와 효과에서는 놀라운 유사성이 존재합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정치보다 콘텐츠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점유합니다. 뉴스는 멀게 느껴지지만, 시즌 2 공개일이나 웹툰의 다음 화는 눈앞에 다가온 사건처럼 느껴집니다. 국회의원의 이름은 몰라도, 넷플릭스의 인기 캐릭터, 유튜브 크리에이터, 게임 속 캐릭터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본능과 뇌 구조를 해킹한 결과입니다. 현대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의 주의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점유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정치적 참여보다 즉각적 보상을 제공하는 콘텐츠를 선호하도록 인간의 뇌를 유도합니다.
정치는 느리고 복잡합니다. 법안 하나가 통과되기까지 수개월, 때로는 수년이 걸립니다. 사회적 쟁점이나 정책 변화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과정은 인내와 집중을 요구합니다. 반면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는 즉각적입니다. 한 에피소드 안에서 사건이 터지고, 다음 편은 자동 재생됩니다. 웹툰과 숏폼 콘텐츠도 동일하게 짧은 시간 안에 극적 변화를 제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고조될 때, 화려한 시각과 음향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합니다. 도파민이 분비되고, 반복적인 자극은 즉각 보상 선호를 강화합니다. 정치적 사고와 판단,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인내는 점점 기피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뉴스와 토론에서 멀어지고, 대신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몰입하게 됩니다.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전 구글 설계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를 브레인 해킹(brain hacking)이라고 부르며, 유튜브, 넷플릭스,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이 인간 뇌의 약점을 겨냥해 “주의를 낚아채는 설계”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사용자의 시청 기록과 클릭 패턴을 분석하여 추천과 알림을 최적화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멈추기 어렵도록 설계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이 구조는 현대 사회의 ‘무력화 전략’과 직결됩니다. 전두환 시대의 3S 정책이 시민의 관심을 스포츠, 영화, 섹스에 분산시켜 정치적 불만을 통제했다면, 오늘날 디지털 콘텐츠는 훨씬 정교한 방식으로 동일한 효과를 달성합니다. 시민의 주의와 정신이 플랫폼에 점유되면서, 사회적 쟁점과 정치적 참여는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즉, 현대의 콘텐츠 중독은 단순한 오락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적 피로를 무력화시키는 장치이자, 인간의 본능과 뇌 구조를 활용한 ‘보이지 않는 통치’로 읽힐 수 있습니다. 즉각적 보상과 반복적 자극은 정치적 사고와 사회적 참여를 점점 소모시키고, 동시에 플랫폼의 권력과 영향력을 강화하는 구조적 메커니즘입니다.
인간은 수십만 년 전부터 이야기를 생존 수단으로 활용해왔습니다. 동굴 벽화, 신화, 민담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었습니다. 위험과 위협을 공유하고, 사회적 규범과 행동 지침을 각인시키는 생존 도구였습니다. 사냥과 식량 확보, 집단 내 갈등 해결과 도덕적 기준 제시는 모두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간의 기억과 행동을 조직하는 핵심 장치였습니다.
오늘날 넷플릭스, 유튜브, 웹툰과 같은 플랫폼은 이러한 이야기 욕망을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충족시킵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냥꾼과 괴물의 서사’, 즉 인간과 환경, 선과 악, 생존과 위협의 극적 이야기에 몰입합니다. 그것이 <더 글로리>든 <킹덤>이든, 기본적인 인간 심리와 내러티브 구조는 동일합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이야기와 캐릭터, 갈등 구조는 우리의 뇌를 사로잡으며, 현실의 복잡하고 느린 정치 문제보다 허구의 서사를 더 현실감 있게 경험하게 만듭니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인간이 정보를 이야기 구조로 받아들일 때 훨씬 더 잘 기억하고 몰입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한 사실보다 맥락과 인과관계를 포함하며, 감정적 경험과 연결되어 기억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현대 콘텐츠 산업이 인간 본능을 정교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콘텐츠 중독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나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본능과 뇌 구조에 깊이 뿌리박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플랫폼은 인간의 이러한 내재적 욕구를 정밀하게 자극하고, 시청자의 주의와 시간을 장악합니다. 정치적 뉴스와 사회적 논의는 복잡하고 즉각적 보상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와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결국, 디지털 콘텐츠 중독과 정치적 무력화 현상은 인간의 진화심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인간의 기억과 몰입, 행동을 조직하는 본능적 도구였고, 현대 플랫폼은 이를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하여 우리의 주의와 정신을 사로잡습니다. <더 글로리>와 <킹덤>과 같은 콘텐츠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정치적 관심과 사회적 참여를 잠식하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그거 안 봤어?”라는 단 한마디는 현대 사회에서 강력한 사회적 압력으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인기 콘텐츠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본능이 작동하는 결과입니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은 집단의 의견이 개인의 판단을 얼마나 쉽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험 참가자가 명백히 틀린 선택을 하더라도, 집단의 압력 앞에서는 개인이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현대의 디지털 콘텐츠 소비는 바로 이러한 동조 본능을 극대화한 사례입니다. SNS와 스트리밍 플랫폼은 인기 순위, 조회수, 좋아요 수, 댓글 수와 같은 사회적 지표를 끊임없이 노출하며, 사람들의 선택을 집단적 관심과 일치시키도록 유도합니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개인적 취향보다는 타인의 관심과 집단적 기대에 의해 결정됩니다. 콘텐츠 소비 자체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적 소속감을 확인하는 의식으로 기능합니다. “나도 그걸 봤다”라는 경험은 공동체 속 자신을 위치시키고,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보장합니다. 반대로 이를 놓치면, 단순한 정보 결핍을 넘어 사회적 소외와 심리적 불안이 뒤따릅니다.
현대의 플랫폼은 이러한 사회적 본능을 정밀하게 활용합니다. 추천 알고리즘과 인기 순위 표시, 실시간 댓글과 공유 기능은 개인의 선택을 집단적 관심과 끊임없이 연결합니다. 한편으로, 이는 개인의 정치적 관심과 사회적 행동을 잠식하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즉각적이고 시각적으로 강력한 사회적 신호가 정치적 뉴스나 복잡한 사회적 쟁점을 대신하며, 집단적 몰입을 콘텐츠에 집중시키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정리하면, 인간은 진화적으로 사회적 동조와 소속감을 강하게 추구합니다. 현대 디지털 플랫폼은 이러한 본능을 극대화하여 사람들의 주의와 시간을 장악하며, 정치적 참여와 사회적 행동을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어냅니다. 콘텐츠 소비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과 소속감이라는 인간 본능의 산물이며, 디지털 시대의 집단 심리를 구조적으로 활용하는 장치입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은 최소한 그 정치적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시민의 관심을 스포츠, 스크린, 성적 오락으로 분산시키고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넷플릭스와 디지털 플랫폼이 수행하는 감각 통치는 훨씬 더 은밀하고 세련되었습니다. 그것은 자발적 선택으로 위장된 권력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정해놓은 경로를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권력은 더 이상 총칼에 있지 않습니다. 권력은 ‘다음 에피소드’ 버튼, 자동 재생, 추천 알고리즘 속에 숨어 있습니다. 사용자는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하며, 무의식적으로 플랫폼의 설계에 따라 행동합니다. 시청자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인간의 도파민 회로와 사회적 동조 본능은 플랫폼에 최적화되어 작동합니다.
이 현상은 이미 1985년 미국의 미디어 이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이 예견했습니다. 그는 빅 브라더(조지 오웰)가 통제하는 사회보다, 즐거움 속에서 스스로 자유를 잃어버리는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의 위험이 현대 사회에 훨씬 더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넷플릭스, 유튜브, 숏폼 콘텐츠의 등장은 그의 진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시민은 외부의 강압 없이 스스로 몰입하며, 정치적 사고와 사회적 행동 대신 디지털 세계의 즐거움과 보상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정리하면, 넷플릭스 시대의 감각 통치는 전두환의 3S 정책보다 더 정교합니다. 권력의 의도가 은폐되어 있으며, 시민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착각하는 가운데 자유를 포기합니다. 역사적 사례와 현대 디지털 플랫폼의 구조를 비교하면, 기술과 심리학이 결합된 현대 사회의 통치 방식이 얼마나 정교하고 은밀한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 권력은 총칼이나 법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심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알고리즘 속에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믿으며 소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 중독은 단순히 개인의 시간 소비나 취향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사회적 무관심과 민주주의 참여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적 관심과 행동은 콘텐츠 소비 패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여러 연구에서, 젊은 세대일수록 디지털 플랫폼 사용량과 정치 참여의 상관관계가 부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Pew Research Center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3시간 이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18~29세 성인의 정치 뉴스 소비와 사회적 토론 참여율은 현저히 낮았습니다. 한국의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전체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으며, 같은 집단은 SNS와 OTT 사용 시간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는 정치적 관심이 콘텐츠 소비에 의해 잠식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구체적 지표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즉각적 보상에 민감하고, 불확실하고 복잡한 정보는 처리 비용이 높아 회피 경향을 보입니다. 정치 뉴스와 사회적 이슈는 불확실성과 판단 요구가 높기 때문에 뇌는 이를 피하려 하고, 반대로 짧고 반복적이며 시각적·청각적 자극을 제공하는 콘텐츠에 몰입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정치적 피로를 느끼고, 사회적 참여와 행동은 점점 줄어듭니다.
실제 사례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납니다. 2020년 미국 대선 기간, 젊은 층은 정치 뉴스보다는 유튜브, 틱톡,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에서 정치적 이슈 관련 밈과 짧은 영상만 소비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정보는 단편적이고 감각 중심으로 소비되었으며, 깊이 있는 토론과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정치적 무관심을 강화하고, 조직적 행동이나 공공 정책 참여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정치적 무관심을 구조적으로 강화합니다. 알고리즘은 개인의 관심사를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시청자의 주의를 최대한 오래 붙잡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정치적 쟁점이나 사회적 문제보다 즉각적 즐거움과 보상에 집중하게 됩니다. 즉, 플랫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감각 통치’ 장치로 작동하며, 사회적 행동과 민주적 참여를 자연스럽게 억제합니다.
역사적 비교도 유효합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대 3S 정책을 통해 스포츠, 영화, 성적 오락을 활용하여 시민의 관심을 분산시켰습니다. 현대 사회는 기술적 진보 덕분에 훨씬 정교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동일한 효과를 달성합니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 대신 정신적 공간과 디지털 시간을 점유함으로써, 사람들은 정치적 현실보다 콘텐츠의 세계에 몰입하게 됩니다.
결국, 디지털 콘텐츠 중독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장기적 문제입니다. 시민이 정치적 논의와 사회적 참여보다 플랫폼의 즉각적 자극과 보상에 몰입할수록, 공공 정책에 대한 관심과 비판적 사고는 줄어듭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취향을 넘어, 사회 전체의 정치적 효능감과 참여를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감각 통치와 콘텐츠 중독 구조를 인식하고, 시민과 사회가 정치적 사고와 참여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교육, 정책, 플랫폼 설계의 혁신이 결합될 때, 우리는 디지털 콘텐츠와 인간의 뇌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무력화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3S 정책이라는 감각적 미끼를 통해 시민의 정치적 불만을 잠재웠습니다. 스포츠와 영화, 성적 오락은 시민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정치적 현실의 무거움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도구였습니다. 오늘날, 그 전략은 디지털 기술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넷플릭스, 유튜브, 숏폼 콘텐츠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 속으로 흘러들어와, 무한한 선택지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우리를 붙잡아 둡니다.
물리적 야간 통금은 사라졌지만, 디지털 세상에는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는 무형의 통금이 작동합니다. 정치적 현실은 점점 더 현실감 없는 픽션으로 밀려나고, 우리는 무의식중에 쇼의 관객이 됩니다. 하루에도 수십 편의 영상이, 끝없이 재생되는 추천 콘텐츠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고, 도파민과 사회적 동조 본능은 플랫폼의 설계와 완벽하게 맞물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넷플릭스를 곧바로 신(新) 전두환이라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독재자가 아니며, 특정 정치적 목적을 강제로 주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권력은 시대의 조건에 맞는 새로운 문화 통치 도구를 찾아내며, 우리는 점점 더 그 속에서 정치적 권리와 참여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상대는 눈앞의 화면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선택—한 편의 시리즈를 끝까지 볼 것인가, 잠시 화면을 끄고 현실과 사회 문제를 마주할 것인가—그 작은 결정이, 결국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감각 통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과 정치적 현실을 잠식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매 순간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례와 디지털 플랫폼을 분석한 뒤,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서구의 통치 방식 비교
중국과 서구 사회는 권력이 시민을 통제하는 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중국은 인터넷 검열과 정보 차단이라는 강제적 통치를 선택했습니다. 특정 콘텐츠는 차단되고, 접근 자체가 물리적·법적 장치로 제한됩니다. 반면 서구의 넷플릭스식 시스템은 강압 대신 유혹을 사용합니다. 알고리즘과 추천 시스템, 자동 재생은 시민의 선택을 자발적으로 유도하고, 심리적 몰입을 통해 정치적 무관심을 양산합니다.
이 두 접근 방식은 권력의 두 얼굴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물리적·법적 강제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감각적 유혹입니다. 현대 사회의 디지털 플랫폼은 후자의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시민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와 TV: 정치의 이미지화
현대 디지털 미디어의 감각 통치는 미국 정치에서 이미 싹을 틔웠습니다.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와 닉슨의 TV 토론은 정치가 정책과 논리보다 이미지와 쇼의 무대로 변하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TV 화면 속 후보의 표정, 목소리, 카메라 앵글은 정치적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넷플릭스와 SNS는 그 흐름을 극단으로 끌고 간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정치적 뉴스와 논쟁은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되고, 시청자의 감정적 몰입을 유도하며, 정책 논의보다 드라마적 요소와 시청 경험이 중심이 됩니다. 정치적 판단은 점점 ‘콘텐츠 소비’와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리적 피로의 정치학
정치는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법안 하나가 통과되기까지 수개월, 수년이 걸리고, 정책의 영향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피로는 콘텐츠 소비라는 즉각적 보상과 즐거움 앞에서 손쉽게 밀려납니다. 권력자 입장에서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조건입니다. 시민은 무관심과 체념에 빠지고, 정치적 저항이나 요구는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권력 유지에 기여하는 심리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전두환 시대 이전에도 권력은 시민의 관심과 감각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왔습니다. 그 사례들은 시대와 기술은 달라도, 목적은 동일했습니다.
1930~40년대 나치 독일에서는 영화와 라디오가 권력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라디오 방송과 영화관 스크린 속 장엄한 국가주의적 장면은 시민들에게 일상적인 정치적 경험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강압을 체감하지 않아도,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내면화하며 권력의 규범과 이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전쟁과 군사적 영웅담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과 집단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장치였습니다.
한편, 소련은 스포츠와 문화 행사로 국민의 감각을 통제했습니다. 올림픽과 국내 체육 경기는 단순한 경기 관람을 넘어 국가적 자긍심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예술과 문학에서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조되며, 시민들은 작품 속 교훈과 가치관을 통해 사회 참여와 정치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규율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설계한 틀 안에서 시민을 움직이는 전략적 장치였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 제국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있었습니다. 검투사 경기와 원형극장 이벤트는 시민의 불만과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배고픈 시민들에게 빵을 나누고 화려한 서커스를 제공하는 ‘빵과 서커스’ 정책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사회적 불만을 오락으로 완화하고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였습니다. 시민들은 즐거움 속에서 분노와 불안을 잊고, 권력 구조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사 속 권력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시민의 감각과 관심을 다루는 법을 고민해왔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이 전략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훨씬 더 정교하고 은밀하게 발전했습니다. 총칼이나 법률로 직접 통제하지 않고도, 알고리즘과 추천 시스템, 자동 재생 버튼을 통해 시민의 주의와 시간을 점유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상 권력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플랫폼과 넷플릭스는 역사적 감각 통치의 현대적 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