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봉건 왕국에서 깨어나라
한국 기업문화와 중세 봉건제도,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얼핏 듣기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지만, 우리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백 년 전 중세의 영주가 자신의 땅과 농노를 지배하며 권력을 세습했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의 많은 대기업에서는 ‘가문’이라는 이름 아래 경영권이 대를 이어 물려지고,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때로는 소중한 ‘구성원’이라기보다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받고, 갑질과 위계질서는 마치 봉건시대의 신분 질서처럼 우리 일상에 뿌리내렸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런 ‘왕국’ 같은 한국 기업문화를 무대 삼아, 그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와 역사적 뿌리를 파헤쳐 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사례를 통해, 경영권 세습과 폐쇄적 권위에서 벗어나 투명성과 책임,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꿈꿔 봅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왕국’의 신민으로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건강한 시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꼭 짚어봐야 할 이야기. 함께 시작해 보시죠.
혹시 한국 기업문화가 중세 봉건제도와 닮았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조금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그 비유가 전혀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물론 회사 안에 왕관을 쓴 왕이나 왕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문 중심의 세습 경영, 윗사람의 권위가 절대적인 수직 문화, 그리고 노동자를 단순한 부품처럼 다루는 풍토를 떠올리면, 왠지 중세의 영주와 농노가 눈앞에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기업 안에서만큼은 여전히 봉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성장을 위해 달려왔던 시간 속에서 기업은 국가 경제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 내부 풍경은 시대의 흐름과 달리 여전히 왕국의 논리 위에 서 있는 듯합니다.
한국의 대기업 대부분은 철저히 왕가 체제를 따릅니다. 재벌닷컴이 발표한 2023년 자료에 따르면 30대 그룹 가운데 약 70퍼센트가 2세 혹은 3세, 즉 황태자가 경영권을 쥐고 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아도 이미 확고한 전통처럼 굳어진 구조입니다. 이는 중세 봉건시대 영주가 땅과 권력을 세습하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봉건 사회에서는 피가 곧 권력의 정당성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쌓아 올린 영토와 성곽은 아들에게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정당성 논란이나 민중의 동의 따위는 크게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대기업의 경영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창업자가 만든 기업이 하나의 국가라면, 경영권은 왕좌와 같고, 그것은 자녀에게 당연히 물려야 할 가문의 재산처럼 여겨집니다.
왕위 계승 과정은 언제나 긴장과 암투를 동반했습니다. 봉건 시대의 역사책에 기록된 왕위 다툼의 장면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이었습니다. 오늘날 기업 세계에서도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영권 분쟁은 마치 현대판 왕위 쟁탈전처럼 비춰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장면이 드라마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 승계 과정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상속을 넘어 복잡한 지분 구조, 순환 출자, 그리고 사회적 논란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현대가의 형제 간 분쟁 역시 봉건 귀족들 사이의 영토 분할 싸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한진그룹에서는 남매가 서로 경영권을 두고 다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남매의 난은 단순한 가족 간의 갈등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와 주주의 삶을 뒤흔드는 국가적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국의 대기업에서 경영권은 국민 경제의 자산이나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되기보다는 여전히 가문 대대로 물려야 할 왕좌로 이해됩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와도 어긋나고, 민주주의의 가치와도 거리가 멉니다. 기업은 사회적 자본이자 공동체의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은 가족 혈통의 사유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황태자 승계 구조는 한국 기업문화의 봉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기업은 마치 성채이고, 이사회는 조정이며, 경영권은 왕위라는 비유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직장 풍경 속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 겉으로는 무심한 한마디 같지만, 이 표현은 단순히 불친절하거나 무례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업이라는 왕국 내부에 존재하는 신분 차별을 드러내는 은밀한 신호입니다. 이 말이 통용되는 순간, 한 사람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할 고유한 가치가 아니라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전락합니다.
202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34퍼센트가 비정규직입니다.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60에서 70퍼센트 수준에 머물고, 복지 혜택에서도 차별을 겪습니다. 안정적인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이 기업 내에서 귀족처럼 대우받는다면, 비정규직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 속에서 농노처럼 살아갑니다.
이 같은 구조는 단순히 개인의 일자리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업 내부의 권력 관계와 사회 전반의 계급 질서를 반영합니다. 일부는 안정된 지위에서 혜택을 누리고, 다수는 불안정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 이는 곧 중세 봉건 제도의 그림자가 현대 기업 속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상사의 폭언과 갑질, 뿌리 깊은 위계질서, 수직적 권위는 그 흔적을 더욱 선명히 드러냅니다.
한국 경제 전체를 넓게 바라보면 이 봉건적 구조는 더 뚜렷해집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하청업체가 얽힌 관계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분 사회입니다. 대기업은 귀족, 중소기업은 평민, 하청업체는 농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갑을병 구조는 이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중소기업은 다시 하청업체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한 번의 계약 해지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처에 눌려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흔합니다. 이는 마치 중세 귀족이 자신의 영지에서 평민과 농노의 삶을 통제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영주가 세금을 더 거두면 농노는 굶주렸고, 영주가 전쟁을 일으키면 농노는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대기업의 결정 하나가 중소기업과 하청업체, 나아가 수많은 노동자의 생계를 좌우합니다.
이 봉건적 구조는 추상적인 비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사회 곳곳에서 실재하는 현실입니다. 택배기사들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대기업 택배사의 이름으로 일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개인사업자 신분입니다. 즉,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사실상 하청 구조에 묶여 있습니다. 물량이 몰리면 하루 열여섯 시간 넘게 일하기도 하고, 분류작업과 배송을 동시에 떠맡으면서도 기본 임금조차 안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로사라는 비극적인 단어가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 새로운 형태의 농노라 할 수 있습니다. 배달 플랫폼에 등록한 배달 기사들은 자유롭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알고리즘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배달 콜이 뜨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수입이 없고, 평점이 낮으면 일할 기회마저 박탈당합니다. 인간 상사의 명령 대신 인공지능의 점수에 지배당하는 구조는 중세 영주가 세금을 정하듯, 플랫폼이 노동자의 생계를 쥐락펴락하는 또 다른 봉건 체제입니다.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기업의 공장에서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 안정적인 임금을 받는 반면,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는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고, 안전 장비와 복지에서도 차별을 겪습니다. 위험한 작업은 대체로 이들에게 집중되고, 사고가 나면 책임은 하청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됩니다. 마치 성곽을 지키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어도 기록조차 남지 않던 농노들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듯 한국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교체 가능한 부품, 혹은 왕국의 농노처럼 취급받고 있습니다. 제도와 법은 근대적이지만, 노동 현장의 공기는 중세의 그림자를 진하게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같은 풍경을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선을 유럽으로 돌려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스웨덴의 기업문화는 평등과 협력을 기초로 합니다. 노동자는 단순한 비용 항목이 아니라, 기업의 동반자이자 사회의 시민으로 존중받습니다. 경영진과 노동자 대표가 협의회를 구성해 기업 운영의 주요 사안을 논의하는 것이 일상적 풍경입니다. 주 40시간 근무는 물론이고, 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도 잘 보장되어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매우 강력해, 기업이 마음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임금을 깎기 어렵습니다. 노동자는 교체 가능한 부품이 아니라, 존중받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의 기업들은 공동결정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목소리를 냅니다. 경영과 노동이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또한 직업훈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평생 직업 경로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단순히 계약상의 조건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권리로 자리매김되어 있습니다.
스웨덴과 독일의 사례를 보며 우리는 다시 한국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국의 노동자는 여전히 왕국의 농노처럼 불안정하고 교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받는 반면, 유럽의 노동자는 시민으로서 존엄과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제도의 차이를 넘어,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을 왕국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로 볼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왕국에서는 노동자가 신분의 굴레에 묶이지만, 공동체에서는 노동자가 시민으로 서게 됩니다.
스웨덴이나 독일이 비교적 평등한 노동문화를 발전시켜 온 데에는 긴 역사가 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강하게 뿌리내렸고, 정치적으로도 사회민주주의나 기독교 민주주의 같은 정당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제도 속에 확립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 결과 노동자는 기업의 하위 존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당히 권리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길은 달랐습니다. 봉건적 기업문화는 단순히 경영인의 권위주의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뿌리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자라난 구조적 산물입니다.
한국은 해방 이후 곧바로 분단과 전쟁을 겪었습니다. 사회가 재건되기도 전에 국가 생존 자체가 위기에 놓였고, 그 속에서 경제는 무엇보다 빠른 성장과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노동자의 권리와 평등한 분배보다는 국가와 기업의 성장에 자원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단순한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국가적 생존 전략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부는 압축적 산업화를 추진했습니다. 수출 지향 산업화를 위해 국가가 직접 대기업을 키웠고, 특정 가문과 기업에 자원을 몰아주었습니다. 그 결과 재벌 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았고, 기업은 마치 국가의 작은 왕국처럼 성장했습니다. 노동자는 그 성장의 주역이었지만 동시에 희생양이었습니다. 노동권은 제한되고, 파업은 탄압되었으며, 기업의 성장은 곧 국가의 성장이라는 논리로 모든 불평등이 정당화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곧 노동권의 확립과 맞물렸습니다. 반면 한국은 오랜 기간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하면서 노동운동은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바로 그 현실을 보여줍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노동자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부품처럼 다뤄졌음을 증명합니다. 정치 권력과 기업 권력이 결탁해 노동자를 억압했기 때문에, 노동은 권리의 문제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구조조정과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기업은 위기를 이유로 노동 유연화를 추진했고, 국가는 이를 방관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노동시장은 더 분절되고 불안정해졌으며, 노동자는 시민이라기보다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자원으로 전락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와 유교적 위계 문화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는 기업 내 권위주의를 강화했고, 노동자는 상사의 지시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로 길러졌습니다. 개인의 권리보다는 조직의 충성이 강조되었고, 노동권은 집단의 조화를 깨는 것으로 낙인찍히곤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봉건적 기업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기업 내부의 문제를 넘어, 국가 정책, 정치 권력, 사회문화가 얽힌 결과입니다. 노동자가 부품으로 취급되는 현실은 역사적 구조의 산물이자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맞이한 과제는 분명합니다. 기업을 가문의 왕국이 아닌 사회의 공동체로 바라보고, 노동을 단순한 비용이 아닌 시민의 권리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노동자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봉건의 그림자를 넘어 근대적 시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길입니다.
한국 대기업 대부분은 아직도 가문 중심의 세습 경영이 뿌리 깊습니다. 마치 중세 왕국에서 왕위가 혈통을 통해 계승되듯, 기업 경영권도 ‘우리 집 이야기’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폐쇄적인 구조에서는 신선한 혁신과 변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전문 경영인을 적극 영입해 경영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일입니다. 가족 구성원이 직접 모든 권력을 쥐고 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경영인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주주가 경영에 참여하고,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가 실현됩니다. 마지막으로 공정한 승계 절차를 마련해 경영권 이전 과정이 내부 다툼이나 불투명한 거래 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 경영권 승계가 특정 가문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집 이야기만 하는 왕국 대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민주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기업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강력한 수직 구조와 위계주의입니다. ‘왕이 말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그 그림자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직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을 운영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익명으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피드백 시스템은 갑질과 부당한 관행을 막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더 나아가, 리더십 교육에서 ‘공감과 존중’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단순히 명령과 복종이 아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조직문화야말로 진정한 협력과 혁신을 가능케 합니다.
노동자를 ‘부품’으로 대하는 시절은 끝나야 합니다. 특히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도 존중받아야 할 ‘시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확대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일이 시급합니다. 복지 수준 또한 비슷하게 맞춰져야 차별이 줄어듭니다. 아울러 노동 3권, 즉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파업권)을 법적으로 확실히 보장하고, 노동자들에게 그 권리를 제대로 알리고 행사할 수 있도록 교육도 강화해야 합니다. “모두가 같은 왕국의 시민이라면, 평등한 권리가 기본입니다.”
‘갑을병’이라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를 그대로 두면 한국 기업은 영원히 봉건적 왕국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모델을 확대해야 합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중소기업은 안정적 생산과 혁신으로 경제를 뒷받침하는 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불공정 거래가 드러날 경우에는 강력한 제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 강화와 엄정한 법 집행이 중요합니다. 또한 중소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키우고 금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 차원의 지원도 확대해야 합니다.
기업은 더 이상 ‘왕국의 왕’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한 구성원입니다. ESG, 즉 환경과 사회 그리고 지배구조 측면에서 책임 있는 경영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기업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며, 투명한 의사결정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정보 공개 또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며,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은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노동자 인권 보호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왕국의 군주’가 아닌 ‘신뢰받는 이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개혁은 서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적인 변화 과정입니다. ‘왕국’에서 ‘시민사회’로의 전환은 법과 제도의 개선뿐 아니라 조직문화와 가치관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가능해집니다. 한국 기업문화가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날까지, 이 개혁 과제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약 150년간 자국 경제를 든든히 지탱해온 대표적인 재벌 가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걸어온 길과 경영의 방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국의 재벌가와는 사뭇 다릅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단순히 ‘가문 경영’에 머무르지 않고, ‘책임과 신뢰’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하며, 스웨덴 사회 전반에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Investor AB라는 투자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발렌베리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자본을 운용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이 투자회사를 통해 경영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운영권을 맡깁니다. 이는 경영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며, 단순히 가족의 힘만으로 회사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고한 철학을 반영합니다.
Investor AB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은 스웨덴 경제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기업들입니다. 그중에는 통신 장비와 네트워크 솔루션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에릭슨, 세계적인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스웨덴의 대표적인 금융 그룹 SEB, 전력과 자동화 기술의 선두주자인 ABB, 세계 최대 출입통제 시스템 업체인 Assa Abloy, 그리고 가전제품 제조 기업인 일렉트로룩스 등이 포함됩니다. 이들 기업은 각 분야에서 첨단 기술과 혁신을 선도하며 스웨덴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이러한 기업들을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장기적인 기업 가치 창출에 무게를 두고 운영합니다. ‘책임 경영’과 ‘투명한 지배구조’는 이들의 핵심 원칙이며, 노동자의 권리와 협력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기업 생태계의 기초로 여겨집니다.
반면, 한국의 재벌가는 오랜 세월 동안 창업주 일가가 경영권을 세습하며 직접 권력을 행사해왔습니다. 복잡한 지분 구조와 내부 갈등, 가족 간 경영권 다툼으로 인한 사회적 비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경우 창업주 이병철 회장 이후 그의 자손들 사이에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분쟁과 순환출자 구조 문제로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 경제의 자산이어야 할 기업이 오히려 가문의 ‘왕좌 싸움터’가 되어버린 현실을 보여줍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금융 명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들의 방식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일 후계자 중심의 재벌가와는 전혀 다릅니다. 발렌베리 가문에는 특정 개인이 왕처럼 군림하는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여러 사람이 책임을 나누고, 세대를 이어가면서 권력과 의무를 분산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죠.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런 독특한 방식을 택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스웨덴 사회의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제국의 몰락 이후 권력 집중에 대한 반발이 강하게 자리 잡은 나라였습니다. 왕권이 지나치게 힘을 가졌던 시기에는 사회적 갈등과 실패가 잦았고, 그 반동으로 민주주의와 합의 정치가 발전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발렌베리 가문도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방식은 위험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편이 사회적으로도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금융과 투자라는 사업의 특성입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은행과 투자 회사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국가 경제와도 깊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금융은 무엇보다 신뢰와 안정성이 중요한 영역입니다. 만약 후계 구조가 특정 개인의 능력이나 운명에만 달려 있다면, 그 개인의 실패가 곧 가문 전체와 국가 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겠죠. 그래서 여러 명이 리더십을 나누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이 가문이 단순한 돈벌이 집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사회와 일종의 계약을 맺은 존재였습니다. 기업에서 얻은 수익 상당 부분을 재단을 통해 과학, 교육, 연구 지원에 사용했는데요, 덕분에 가문의 부가 공익으로 환원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국민적 반발을 완화하고 오히려 존경을 얻게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후계자가 특정 개인으로만 좁혀진다면 이런 명분이 흔들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집단 운영은 재단 중심의 공익 활동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네 번째 이유는 국제적 요인입니다. 발렌베리 그룹은 노키아, 에릭슨, ABB,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세계적 기업에도 투자해 왔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단일 후계자 중심의 가족 기업은 불안정하게 보이기 쉽습니다. 반면 여러 명이 역할을 나눠 맡는 집단 체제는 투명성과 지속성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가 됩니다. 이는 해외 투자자에게 신뢰를 확보하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갈등의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미 6세대에 이른 발렌베리 가문의 구성원은 30명이 넘습니다. 만약 단일 후계자를 정한다면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두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집단 후계 구조는 능력 있는 몇 명이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해 가문 전체의 결속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가문의 이름과 명성을 지키는 데 있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발렌베리 가문의 집단 후계 구조는 단순한 가족 내부의 선택이 아니라, 스웨덴의 역사적 경험, 금융의 특성, 사회와의 계약, 국제 시장의 요구, 그리고 가문 내부의 결속이라는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이들은 왕조적 재벌이 아니라 사회와 공존하는 관리인의 모습을 택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발렌베리 가문을 스웨덴에서 가장 신뢰받는 가문으로 남게 한 힘이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단순한 재벌가를 넘어 스웨덴 경제의 중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Investor AB를 통해 지배하는 기업들의 매출과 자산 규모는 스웨덴 전체 국내총생산 GDP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기업들이 창출하는 매출액은 스웨덴 GDP의 약 10퍼센트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스웨덴 경제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예를 들어, 통신 장비의 글로벌 강자인 에릭슨은 스웨덴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제약 분야의 아스트라제네카 또한 국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발렌베리 가문이 투자하는 다양한 산업과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스웨덴 경제의 장기 성장과 혁신을 견인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안정적이고 책임 있는 경영 방식은 스웨덴 경제의 건전성과 국제 경쟁력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발렌베리 가문은 단순히 한 가문의 성공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제 공동체’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단순한 혈통 상속에 머무르지 않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도 엄격한 조건을 둡니다. 후계자가 되려면 먼저 명문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며, 가문의 특혜 없이 정당한 경쟁을 통해 회사에 입사해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야 합니다. ‘누워서 떡 먹기’ 식의 경영권 승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의무 군복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조건입니다. 군 복무를 통해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 리더십을 길러 가문의 미래를 이끌 준비가 된 인물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후계자가 ‘준비된 리더’임을 보장하고, 기업 경영에 전문성과 도덕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스웨덴 기업의 독특한 특징은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제도입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이 권리는 노동자가 단순히 생산의 주체를 넘어서 경영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Investor AB의 이사회도 노동자 대표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기업 전략과 경영 감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로 인해 경영진은 노동자의 현실과 요구를 깊이 이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수직적 권위주의를 배제하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조직문화를 조성합니다. 노동자가 경영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혁신 능력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집니다.
Investor AB는 두 명의 대표를 두고 운영됩니다. 이들은 서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맡으며, 경영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습니다. 이원화된 대표 체제는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조화시키며,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고 투명성과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는 독단적인 경영을 방지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발렌베리 가문과 Investor AB는 벌어들인 이익을 단순히 배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연구개발과 혁신에 재투자합니다. 매년 상당한 금액을 대학, 리서치 기관, 첨단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여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는 데 집중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군은 매출의 약 10퍼센트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산업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친환경 에너지, 디지털 기술, 의료 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며, 이를 통해 스웨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투자는 산업 생태계의 혁신 역량을 키우고 일자리 창출과 사회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인 셈입니다.
스웨덴 국민들은 발렌베리 가문과 Investor AB에 대해 매우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2022년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웨덴 국민 중 약 75퍼센트가 발렌베리 가문과 그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이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같은 시기 스웨덴 정부 기관 신뢰도인 약 65퍼센트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이처럼 국민 신뢰가 높은 배경에는 발렌베리 가문의 투명 경영, 책임 있는 지배구조, 그리고 사회와 경제 전반에 걸친 선순환적 기여가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단순한 재벌을 넘어 스웨덴 사회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과 혁신을 이끄는 핵심 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 철학과 방식은 ‘가문의 왕국’이라는 전통적 재벌의 한계를 넘어, 책임과 투명성, 협력과 혁신을 결합한 모범적인 경제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 재벌가들이 이 모델을 참고한다면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기업 생태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의 후계 구조는 단순한 경영 전략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한 사회의 역사, 문화, 정치적 전통이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과 한국의 삼성은 이 점에서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권력을 여러 명에게 나누고 집단적으로 운영하면서 안정성과 신뢰를 구축하였고, 삼성은 단일 후계자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와 강력한 추진력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각 나라의 사회적 토양과 문화,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19세기 말부터 스웨덴 금융 산업의 핵심을 이끌어 왔습니다. 스웨덴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권력 집중이 초래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겪으면서, 권력을 분산하고 합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내렸습니다. 스웨덴 정치 체제 또한 다당제와 협치 문화를 발전시키며, 투명성과 민주주의적 절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였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단일 후계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방식을 피하였습니다. 대신 가족 구성원과 전문 경영인들이 의사결정을 분담하는 집단 경영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금융과 산업 분야에서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장기적인 안정성과 신뢰를 확보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발렌베리 가문이 주도하는 투자 회사인 인베스타는 여러 명의 이사회 구성원과 경영진이 역할을 분담하며 운영됩니다. 이는 한 개인의 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투명한 지배 구조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발렌베리 가문은 기업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재단에 환원하여 과학, 교육, 문화 지원 등 공익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공고히 하였습니다. 이러한 집단 후계 모델은 스웨덴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가문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삼성은 매우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국은 20세기 중반 전쟁과 산업화라는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빠른 경제 성장이 절실한 사회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강력한 단일 리더십과 신속한 의사결정은 기업뿐 아니라 국가 발전에도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에서부터 그의 아들 이건희, 그리고 손자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명확한 단일 후계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이 구조는 빠른 결정과 추진력을 보장하며, 반도체 투자와 스마트폰 시장 장악 같은 대담한 전략을 실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일 후계 구조는 동시에 큰 위험을 내포하였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여러 법적 문제와 건강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삼성 그룹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대표이사의 개인적 리스크가 곧 기업 전체의 위기로 직결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삼성 내부에서도 총수를 둘러싼 가족 간 갈등과 경영권 다툼이 여러 차례 발생하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단일 후계 중심 경영은 경제 성장 초기에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지만, 이제는 기업과 사회에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집단 후계 구조는 글로벌 금융 위기나 경제 불확실성 시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한 기업들은 개별 경영진들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위기를 극복하였고, 주주 및 사회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반면 삼성은 지난 10년간 재계 서열 1위임에도 불구하고, 총수의 구속, 수사, 건강 문제 등으로 인해 기업 운영에 여러 차례 차질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대내외적으로 그룹의 신뢰와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고, 이는 곧 경제 전반에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더불어, 일본의 다이이치 생명보험 등 일부 대기업은 가족 경영과 집단 경영을 혼합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안정성과 경영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 기업이 단일 후계 체제에서 벗어나 점진적으로 분산된 권력 구조를 모색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삼성이 보여준 단일 후계 모델은 그간 빠른 결단과 강력한 추진력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끌었고,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장 방식이 계속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단일 후계 구조가 가져오는 불안정성과 사회적 갈등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결국 한국 사회가 마주한 질문은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한 사람의 결단과 카리스마에 의존해 불안정한 성장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분산시키고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집단 신뢰 모델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권력을 나누고 여러 리더가 협력하는 방식을 통해 수십 년간 안정성과 신뢰를 쌓았으며, 단순한 기업 운영 방식을 넘어 사회와 맺은 약속의 산물이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점차 필요로 하는 투명성과 공정성,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부합하는 모델입니다.
현대 한국은 경제적·사회적 성숙 단계에 접어들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대기업의 공정 경영과 이사회 중심 경영 확대를 촉구하며, 삼성 또한 전문 경영인 영입과 이사회 권한 강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권위적인 경영 방식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권력을 분산시키고 여러 리더가 역할을 나누는 집단 경영 방식은 기업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발렌베리 가문과 삼성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태어난 두 모델이지만, 오늘날 한국은 어느 쪽을 택할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이제 한국 기업은 과거의 ‘왕국’ 체제에서 벗어나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평적 소통과 협력, 다양성 존중이 핵심 가치가 된 시대에 맞추어, 투명한 지배구조와 책임 경영, 노동자와 사회 구성원을 존중하는 문화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특정 가문의 제국이 아니라, 모두가 존엄과 권리를 누리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로서의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삼성 이후 한국 기업이 그려야 할 미래는 ‘신뢰의 시대’에 부합하는 경영 모델과 사회적 역할의 재정립입니다. 이것은 단지 기업 경영의 변화를 넘어 한국 사회가 더 성숙한 민주주의와 투명한 경제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전환입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지에 따라 한국 기업과 사회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