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대신 예고편만 남았다
마블의 신작 <판타스틱4: 퍼스트 스텝스>는 개봉 전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수십 년간 다양한 버전으로 사랑받아온 퍼스트 패밀리가 MCU 세계관에 어떻게 새롭게 합류할지, 그리고 MCU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전환점을 보여줄지가 관객과 팬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접한 결과, 내가 마주한 것은 기대했던 히어로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모성애 드라마에 가까웠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개봉할 <어벤저스: 둠스데이>의 밑밥을 까는 예고편 역할에 치중한 영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우선 인정해야 할 부분이 분명하다. 영화는 1960년대 레트로 퓨처리즘을 차용해 미장센부터 색채, 공간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구성했다. 이는 기존 마블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시도로,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시각적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조명과 세트 디자인, 그리고 컬러 팔레트 선택에 있어 마블이 비주얼적 실험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장식이 영화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영화는 결국 이야기와 캐릭터, 그리고 그에 걸맞은 액션과 감정의 설득력이 맞물려야 완성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본질적인 부분이 크게 부족했다. 비주얼이 아무리 화려해도, 관객이 몰입하고 공감할 만한 서사가 빈약하고, 액션 장면이 미흡하며, 캐릭터 감정의 전달이 설득력 없으면 영화 전체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영화는 눈을 즐겁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블 히어로 영화가 갖춰야 할 서사적 깊이와 액션, 그리고 감정적 울림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히어로 영화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서사 구조가 있다.
첫째, 히어로의 기원(origin story)이 분명해야 한다. 어떻게 특별한 힘을 얻게 되었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둘째, 캐릭터 개별의 갈등과 성장 과정이 드러나야 한다. 각자의 내면적 고민과 변화를 통해 관객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공동체를 위해 감행하는 영웅적 선택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더 큰 목적을 위해 희생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핵심이다.
넷째,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과 팀워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긴장감 넘치는 전투 장면과 서로 협력하는 팀의 조화가 영화의 흥미를 살린다.
하지만 이번 판타스틱4는 이 네 가지 모두를 놓쳤다.
기원의 부재는 치명적이었다. 어떻게 힘을 얻었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관객은 캐릭터에 감정 이입할 기회를 잃었다.
개별 서사는 거의 실종됐다. 리드는 리더십이나 아버지로서의 존재감 없이 우유부단한 천재에 그쳤고, 수는 과학자이자 전사라기보다 오직 ‘엄마’ 역할로만 규정되었다. 오히려 띵과 쟈니가 아기 프랭클린과 더 깊은 정서적 교감을 보여주며 부모보다 더 부모다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초반에 던져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딜레마도 수의 한마디에 분노하던 대중이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하는 억지 전개로 그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다.
액션 역시 극히 부재했다. 마블 영화의 핵심인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클라이맥스에서 갤럭투스를 쓰러뜨리는 장면도 단순히 ‘밀어내는’ 연출로 마무리되어 최대 빌런의 위상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결국 이 영화의 판타스틱4는 우리가 아는 히어로 팀의 모습이 아니라, 모성애를 중심으로 한 가족 드라마 속 인물들로 축소되고 말았다.
영화는 한 가지 정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바로 모성애다.
수 캐릭터는 영화 전반에 걸쳐 모성애로만 규정된다. 과학자로서의 지성과 전사로서의 강인함은 거의 사라지고, 모든 장면이 ‘엄마이기 때문에 강하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수가 목숨을 걸고 갤럭투스를 다른 공간으로 몰아내며,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엄마의 힘’으로 확고히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전략적 전투라기보다 단순한 힘겨루기에 가까웠다.
그 후 수가 쓰러지고, 아기 프랭클린이 그녀의 품에 안기자 다시 살아나는 장면은 모성애와 아이의 연결을 또다시 강조한다. 이 장면은 감동이라기보다는 반복된 감정 몰입으로 인한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영화는 감정적인 카드를 집요하게 반복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히어로물이 주는 쾌감과 긴장을 대체하기에 전혀 부족했다.
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대중의 묘사다.
초반부에 판타스틱4가 아기 프랭클린을 갤럭투스에게 넘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대중과 언론은 이들을 영웅에서 원수로 급격히 몰아붙인다.
그러나 수가 아기를 안고 “가족으로서 함께 싸우자”는 메시지를 내놓자, 언론과 군중은 순식간에 전폭적인 지지로 태세를 바꾼다.
더 나아가, 판타스틱4가 제안한 ‘지구 전체를 다른 차원으로 옮긴다’는 극단적인 계획도 아무런 토론이나 반대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지구 이동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에 따른 실패 가능성, 과학적 위험, 그리고 사회적 혼란과 같은 현실적 문제들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다.
영화 속 대중은 현실적인 집단이라기보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트루먼 쇼’의 엑스트라처럼 그려져,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보면, 이 영화가 끝까지 전달하려 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판타스틱4: 퍼스트 스텝스는 독립적인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앞으로 개봉할 어벤저스: 둠스데이의 밑밥을 깔아두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다. 판타스틱4 개별 캐릭터들의 서사는 대폭 축소되었고, 대신 이들이 어떻게 어벤저스 세계에 합류할지에 대한 암시만 남겨두었다. 우주적 빌런인 갤럭투스는 제대로 된 전투 장면도 없이 허무하게 처리되며, 명백히 ‘둠스데이’를 위한 맛보기 수준으로 활용됐다. 곳곳에 등장하는 팬 서비스와 떡밥성 장면들은 본작의 서사와는 독립적이며, 오직 다음 영화에서 회수될 복선임을 드러낸다. 또한 감정 장면으로 시간을 채우면서 본작의 완결성은 최소화되었고, 진짜 이야기를 다음 편으로 넘기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결국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남는 것은 ‘판타스틱4가 어벤저스에서 어떻게 활용될까’라는 의문뿐이며, 영화 자체가 주는 감동이나 여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판타스틱4: 퍼스트 스텝스는 마블의 비주얼적 야심에도 불구하고, 히어로 영화가 갖춰야 할 본질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히어로의 기원과 성장, 영웅적 선택, 그리고 액션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완전히 사라졌고, 대신 모성애라는 단일 정서가 반복적으로 주입되었다. 모든 서사와 캐릭터는 결국 거대한 서사를 위한 밑밥, 즉 어벤저스: 둠스데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위한 희생물로 전락했다. 관객이 영화에서 얻는 것은 진한 감동이 아닌 허탈감과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뿐이다. 결국 우리가 본 것은 마블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MCU의 예고편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