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리뷰

되풀이되는 공룡, 되돌아가는 이야기

by 슈퍼T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리뷰

— 오마주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실패, 그리고 진짜 괴물은 누군가


‘쥬라기’는 돌아왔지만, 새로움은 어디에 있는가?

수많은 공룡들이 다시 깨어났다. 익숙한 울음소리, 거대한 발자국, 짓밟히는 초원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카메라워크는 화려했고, CG는 진보했고, 사운드는 박력 있었지만, 영화관을 나오는 나의 얼굴에는 생존의 안도감이 아닌 서사의 피로감이 남았다. 도대체 왜였을까?

영화는 ‘가족 단위 탐험대’와 ‘임무 중심 전문가 팀’이라는 두 집단을 설정해, 서로 다른 방식의 서바이벌을 교차 편집하는 구조를 택한다. 이 설정은 사실 새롭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쥬라기 공원 1편의 기본 공식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학자, 군인, 아이들, 배신자,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생명체.

처음에는 ‘오마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공식을 세 번째, 네 번째 반복하게 되면, 더 이상 ‘추억’이 아닌 ‘재탕’으로 받아들인다.


줄거리 요약: 똑같지만 더 화려하게

제약회사 파커-제닉스는 심장병 치료제를 완성하기 위해 살아있는 대형 공룡 3종(모사사우루스, 티타노사우루스, 케찰코아틀루스)의 혈액 샘플을 구하려고 용병 조라와 그의 팀을 고용한다. 임무 도중 바다에서 요트가 전복된 루빈 가족을 구조하지만, 섬에 도착하자 스피노사우루스와 모사사우루스의 공격, 팀원들의 희생이 이어진다. 샘플 채취를 마친 뒤 인젠사 연구소로 향한 일행은 마틴의 배신과 무장 위협으로 샘플을 빼앗기고, 발전소 가동으로 깨어난 괴수 ‘뮤타돈’들의 습격을 받는다. 혼란 속에서 구조헬기는 디스토르투스 렉스에게 격추되고, 탈출로를 찾던 중 마틴은 혼자 달아나다가 괴수에게 잡아먹힌다.
결국 던컨의 희생으로 선착장에 도착한 일행은 배를 타고 섬을 탈출하고, 구조 신호 덕분에 던컨도 구출한다. 조라는 고생 끝에 얻은 샘플을 돈이 아닌 인류 모두를 위해 오픈소스로 공개하자고 제안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불쾌한 골짜기, 괴수의 얼굴에서 드러나다

이번 영화의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생명체는 디스토르투스 렉스라는 새로운 유전자 조작 괴수다. 단순한 티라노사우루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기보다는, 고질라의 거대함, 에일리언 시리즈의 흉측한 얼굴 구조와 이미지,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적 상상력이 결합된 혼종 괴수 그리고 인공적 괴물에 가깝다.

이 디스토르투스 렉스는 몇 가지 시각적 특징을 통해 관객에게 전통적인 공룡이 아닌, 어떤 ‘의도된 불쾌함’을 전달한다. 먼저 사지는 일반적인 공룡의 비례에서 벗어나 기묘하게 구부러져 있고, 눈의 위치와 각도는 사람과 유사하게 설계되어 있어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피부는 비늘처럼 갈라져 있지만 일부는 내부 장기 구조가 노출돼 있어 생물학적 혐오감을 유발한다. 전반적인 외형은 인간, 포유류, 파충류의 요소들이 섞인 이종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시각적 설계는 단지 무섭고 강력한 공룡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디스토르투스 렉스는 ‘불쾌한 골짜기’ 효과를 의도적으로 겨냥한 존재다. 불쾌한 골짜기란, 인간이 어떤 대상을 볼 때 그것이 너무 인간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 않을 경우 느끼는 강한 이질감과 혐오감을 말한다. 원래는 인간형 로봇이나 인형, 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서 주로 이야기되던 개념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공룡 괴수라는 장르로 확장되어 구현된 셈이다.

관객은 이 괴수를 더 이상 공룡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생명체”에 대한 공포로 인식된다. 생물학적 위협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과학이라는 도구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때 벌어지는 윤리적 붕괴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런 상징성은 이 괴수가 단순한 육식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과 기술의 무책임이 만들어낸 존재라는 점에서 더욱 강조된다.

이 괴수는 결국 공포라기보다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유발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자의식 없는 존재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것은 진짜 괴물이라기보다, 인간의 자본과 기술이 만들어낸 ‘실패한 창조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디스토루투스 렉스가 단순한 괴수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깊은 서늘함을 주는 이유다.


제작진의 의도와 대중의 반응

제작진은 공개 인터뷰에서 디스토르투스 렉스를 ‘진화된 공룡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빚어낸 괴물’로 설명했다. 이 괴수의 외형은 의도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장 두려운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디자인은 고질라, 에일리언, 트랜스포머, 그리고 병든 포유류의 장기를 모두 참고했다고 한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설정에 대해 양분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공룡 영화의 상상력을 초월한 진화"라고 평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쥬라기 시리즈 특유의 공룡 생물학적 리얼리티를 희생하고 괴수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관객 반응 역시 갈렸다. 디스토루투스 렉스의 등장 순간 관객들은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스펙터클에 매료되었지만, 이후 정서적으로는 ‘공룡이 공룡 같지 않다’는 혼란을 토로했다.

이 혼란은 단지 외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정체성 붕괴와도 연결된다.


스타는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니다

이번 쥬라기 시리즈의 새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분명 ‘주연’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상하게도 스토리의 중심에 놓이지 않았다. 영화의 정서적 무게 중심은 오히려 일반인 가족에게 옮겨갔다. 그 가족들은 영화 내내 공룡에게 쫓기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트라우마 속에서도 다시 만난다. 영화의 모든 감정 곡선은 그들의 서사를 따라 움직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스타 캐릭터’ vs ‘서사 중심 캐릭터’의 분리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캐릭터는 분명 흥미로운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과거 군 경력과 뛰어난 임무수행 능력을 갖춘 ‘전문가형 용병’이다. 그녀는 마지막 액션 시퀀스에서는 말 그대로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기능적 활약’에 그친다.

반면, 섬에 갇힌 가족은 감정적으로 훨씬 더 깊은 층위를 보여준다. 그들은 공포에 떨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서사를 따라간다. 관객은 그들이 울부짖는 장면, 서로의 손을 붙잡는 순간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스칼렛 요한슨이 몸을 던지는 장면보다도 말이다.

이 차이는 곧 캐릭터의 위치가 ‘서사에 얹힌 스타’와 ‘서사에 잠긴 일반인’으로 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관객은 본능적으로, 깊이 잠긴 쪽에 더 몰입하게 된다.


감정 구조의 중심: 스타가 아니라 가족이다

이 영화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공룡 습격 → 공포 → 갈등 → 분열 → 재회 → 회복'

이 일련의 곡선은 전적으로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관객은 공룡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저 아이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더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감정적 투입을 요구받는 캐릭터는 가족들이다.

그에 비해, 스칼렛 요한슨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감정보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녀는 냉철하고, 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감정이 아니라 기능으로 작동하면서, 그녀는 이야기의 감정적 흐름에서 벗어나게 된다.


제작 전략의 흔한 실수: ‘스타 배치’의 착각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스타가 있으면, 관객은 몰입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관객은 스타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들어가지만, 그 스타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없다면 기억에 남기 어렵다. 요한슨은 분명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고, 액션 시퀀스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녀의 감정 서사를 충분히 구축해주지 않았다. 결국 이 영화에서 그녀는 ‘화려한 해결사’로만 기능하고, 감정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쥬라기 시리즈의 전통과의 충돌

사실 이 영화의 문제는 단지 스칼렛 요한슨에게만 있지 않다. 시리즈 전체의 전통이 한몫한다. 쥬라기 시리즈는 항상 “전문가 + 일반인 + 아이”라는 다층적 시선 구조를 유지해왔다. 이번 영화 역시 이 구조를 따르고 있다. 다만, 여기에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스타적 존재감을 중심에 배치하려다, 오히려 시리즈 고유의 감정 구조와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관객은 스칼렛 요한슨을 주연으로 인식하지만, 스토리의 중심에서 그녀는 점점 밀려난다.


"우린 전문가다"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왜 다 죽었는가?

영화 속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전문가 그룹이 하나둘씩 죽어 나갈 때의 이상할 정도로 무감한 분위기다. 이들은 무장하고 훈련받은 생존 전문가들이었지만, 공룡에게 차례차례 희생당해도, 남은 인물들은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마치 NPC가 사라진 듯, 영화는 그들의 죽음을 빠르게 퉁치고 지나간다. 리더 한 명이 짧게나마 슬퍼하고, 그 외의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되새기지 않는다.

반면, 가족 그룹은 정서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익숙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고, 감정을 공유하며, 연대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인물 구성이 아니라, 서사의 정치학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전문가의 실패'와 '가족의 승리'를 의도적으로 대비시킨다.


그런데 이 구조는 과연 설득력 있는가?

공룡과 같은 치명적 존재에 맞서 훈련받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가족이 모두 살아남고, 그 과정에서 감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상처 없이 정화된 듯 살아남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가족 친화적’인 이야기로 가공되어 있다. 이는 디즈니식 감정 서사의 전형으로, 오히려 현실감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한다.


빌런의 뒤통수, 또 하나의 식상함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익숙한 시리즈 공식을 반복한다. 초반엔 주인공 팀과 일반인 가족이 각기 다른 루트로 공룡 섬에 도착하고, 위협 속에서 함께 살아남는다. 그러나 중반 이후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 다시 꺼내든 "믿었던 인물의 배신"이라는 장치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도 초반에 협력자로 보였던 인물이 후반부에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의 스파이였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문제는 이 반전 구조가 쥬라기 공원 초기 시리즈부터 쥬라기 월드에 이르기까지 너무 자주 사용되어, 관객이 미리 결과를 예측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안전하다."→ "사실은 아니다."→ "너희를 속였다." 이 패턴은 이제 더 이상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하고, 관객이 감정적으로 먼저 반응해버리는 ‘선취’ 현상을 낳는다. 즉, 놀라기 전에 이미 준비된 실망이 먼저 찾아온다.

더 큰 문제는 빌런 캐릭터 자체의 서사적 납득 불가성이다. 그의 배신 동기, 윤리적 판단, 행동 방식은 단순히 반전을 위한 서사 장치로 기능할 뿐, 인물 자체는 입체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배신해야 하니까"라는 수준에 머무른다.

오히려 공룡들이 더 논리적이다. 그들은 먹기 위해 먹고, 생존을 위해 싸우며, 위협을 피하거나 제거하는 단순하지만 납득 가능한 행동을 보인다.

반면 인간 캐릭터들은 생존도, 감정도, 선택의 이유도 모호하게 그려져 관객의 감정 이입을 방해한다. 이는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과도 연결된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게 행동할 때 관객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고, 결국 몰입이 깨진다.

결국 이 빌런 캐릭터는 또 하나의 식상한 트릭일 뿐이다. 감정도, 반전도, 서사도 없는 인물. 이런 설정이 계속 반복된다면, 차라리 공룡이 주인공이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결론: 오마주인가, 창의성의 포기인가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분명 기술적으로는 더 정교해졌다. 시각효과, 음향 디자인, 장면 전환, 괴수의 물리적 연출 등 모든 면에서 공을 들였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정서적 설계, 서사의 통제력, 캐릭터의 인간성이라는 본질적 요소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전 시리즈인 쥬라기공원 1에서는 전문가들과 가족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위기를 맞이하고, 이를 함께 극복하며 관계가 깊어졌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두 그룹이 초반부터 결말 직전까지 각자 생존하다가 마지막에야 합류한다. 문제는 이 합류 장면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어색하다는 점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캐릭터는 초중반에 다른 전문가들이 목숨을 잃을 때는 거의 방관자처럼 행동하지만, 가족들과 마주치자마자 갑작스러운 반가움과 헌신을 드러낸다. 서사적·정서적 연결이 전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행동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던컨 역시 어린 이사벨라 델가도를 자신의 아들과 겹쳐 보며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지만, 그 전까지 이 둘 사이에 교류가 거의 없었던 터라 희생 장면이 뜬금없게 느껴진다. 결국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은 캐릭터 간 감정적 축적 없이 극적인 행동이 먼저 튀어나오는 서사의 약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관을 나서며 떠올리는 한 마디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공룡은 진화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번 쥬라기 시리즈는 흥행 면에서 일정 성과를 거둘 것이다. 강력한 IP, 공룡이라는 시각적 흥미, 가족 관객을 겨냥한 감정 코드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좋은 영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위대한 창작물의 껍데기를 반복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마주의 이름으로, 추억의 감정으로, 창의성의 부족을 덮는 시대다. 이번 쥬라기 신작은 그 모든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공룡은 진화했지만, 이야기의 진화는 거기서 멈췄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이름만큼 과감한 변주를 시도하지 않는다. 디스토터스 렉스라는 새로운 공룡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스타 배우 모두가 기존 공식을 강화하는 장치로만 기능할 뿐,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이 영화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감정적 파산이다. 공룡은 더 이상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더 정직하고 설득력 있는 생명체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다음 편에서 진짜 주인공은 누구여야 할까? 인간인가, 공룡인가? 아니면… 그 둘 사이에서 서사를 쥐고 흔드는 ‘서사의 신’, 즉 제작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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