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교과서,동화 2부. 그림형제가 만든 ‘순종매뉴얼'

by 슈퍼T

‘착한 아이 프로젝트’: 그림 형제와 도덕 동화의 음모

옛날 옛적 이야기는 왕이나 귀족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시장의 소란 속에서,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에서, 그리고 겨울밤 장작불 옆에서 수백 년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구체적인 이름 없는 민중의 언어였고, 일상과 고통, 기쁨과 슬픔이 녹아 있는 살아 있는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초, 독일에서 두 형제가 이 평범한 민중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모으고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 우리가 흔히 ‘그림 형제’라 부르는 그들입니다. 이들은 원래 법학을 공부했지만, 법보다 훨씬 더 깊고 매혹적인 것, 즉 독일어의 뿌리와 민중의 언어, 그리고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옛이야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때의 독일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작은 제후국과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이 땅을 침략하며 “프랑스 문화야말로 유럽의 중심”이라는 식으로 패권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위기의식이 커져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림 형제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화려한 귀족들의 연회장 말고 진짜 독일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농민과 장인, 하녀와 상인의 아내들이 전해주는 구전 민담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이와 가정용 동화집’이라는 이름의 방대한 동화집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동화집은 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읽히는 책 중 하나가 되었지만, 초기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수집된 이야기들은 때로 잔혹했고, 폭력적이었으며, 성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초기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이복 자매들이 자신의 발가락을 잘라 유리 구두에 맞추려는 장면이 등장했고, 헨젤과 그레텔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마녀를 오븐에 집어넣는 등 매우 직설적인 장면이 많았습니다.

이런 원본 이야기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불쾌하고 부적절한 내용으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초기 독자들과 출판사들은 “이 이야기들은 너무 잔인하고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림 형제는 점차 이야기를 수정하고 가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어머니는 계모로 바뀌었습니다. 어머니는 신성한 존재로 남겨두고, 가족 내 갈등은 어머니가 아닌 계모에게 전가되었습니다. 또한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내용은 과감히 삭제되었고, 대신 기독교적 교훈과 도덕적 메시지가 덧붙여졌습니다. 그 결과 동화 전체가 점점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방향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린이와 가정용 동화집’은 아이들을 위한 순한 이야기 모음집처럼 포장되었고,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래 민중의 이야기들이 지니고 있던 생생한 삶의 질감과 반항적인 기운은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착한 아이 프로젝트’라 부를 수 있는, 그림 형제가 진행한 도덕 동화의 탄생 배경이며 동시에 거대한 음모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동화를 통해 아이들을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길들이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착한 아이’로 만드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동화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속에 숨겨진 권력과 통제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살펴보고자 합니다.


“형제는 왜 이야기를 수집했는가”

19세기 초 유럽 대륙은 나폴레옹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강력해진 프랑스 제국은 유럽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정치적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었습니다. 특히 독일 지역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독일 연방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독일 땅은 300개가 넘는 소국과 공국, 제후국으로 쪼개져 있었고, 각기 다른 정치 체제와 문화가 공존했습니다. 이처럼 분열된 상태에서는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이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려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자신의 패권을 확장하며 독일 각지를 점령하거나 영향력 아래 두었습니다. 많은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고, 프랑스 문화가 곧 유럽 문화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퍼져 나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언어 민족주의’라 불리는 운동이었는데, 자신의 민족을 이루는 뿌리와 문화를 찾는 노력이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이들이 바로 야콥과 빌헬름 그림 형제였습니다. 두 형제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엘리트였지만, 단지 법률가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독일어의 역사와 구조, 그리고 그 언어 안에 깃든 민중의 삶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국가적 통일도 없었고, 공식적인 문학 전통도 빈약했기에 민중의 구전 이야기들이야말로 독일인의 진정한 정체성과 문화적 자산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림 형제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중들의 이야기를 채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귀족들의 성대한 연회나 도서관 속 문서보다, 시골 농민, 장인, 하녀, 상인집 아내 등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전하는 구전 민담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특히 도로테아 피만이라는 상인 집 딸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들의 수집 작업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재미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각 이야기에는 당시 민중이 겪는 사회적 억압, 경제적 고통, 가족 갈등, 그리고 권력에 대한 불만과 반항이 녹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림 형제는 이야기의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의 의미와 당시 민중의 정서를 기록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처음에 출간된 그림 형제의 동화집은 현재 우리가 아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초기에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성적이거나 금기된 내용도 여과 없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읽히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계모와 자매들이 신데렐라의 발가락을 자르는 장면이 묘사되었고, 헨젤과 그레텔은 부모에게 버려지고 마녀를 잔인하게 처벌하는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에 맞춰 그림 형제는 차츰 이야기를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역할을 계모로 바꾸고, 폭력과 성적 내용을 삭제하거나 완화했으며, 기독교적 도덕 교훈을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들은 점차 ‘가정용’, ‘어린이용’ 동화로 포장되어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도덕을 가르치고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는 교육적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림 형제의 작업은 단순한 이야기 수집을 넘어 독일어 어원 사전 편찬과 같은 학문적 성과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근대 민속학과 언어학의 개척자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의 열풍 속에서 자연과 민중, 감성을 존중하는 시대정신과 맞물려 그림 형제의 동화집은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디즈니가 이 동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디즈니판은 원본과 달리 훨씬 더 순화되고 상업적으로 재구성된 버전이라는 점에서 비판도 받습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 수집과 편집 작업은 단순한 민속학적 연구를 넘어서, 분열되고 위기에 처한 민족의 정체성을 문화적으로 복원하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것입니다.


낭만주의와 민족주의: 동화 수집의 시대적 배경

1806년, ‘독일’이라는 이름의 나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독일 땅은 무수히 많은 작은 국가로 나뉘어 있었고, 그 땅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 사이에 ‘하나의 민족’이라는 자각은 희미했습니다. 수백 개가 넘는 왕국, 공국, 도시국가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했으며, 서로 다른 법과 관습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유럽 대륙 곳곳을 휩쓸었습니다. 프로이센 군대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800년 넘게 이어져 오던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독일 땅에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제도를 강제로 이식하며 유럽 정치지형을 뒤바꾸었습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독일 사람들은 스스로 묻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를 하나로 묶는 공통된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혼란과 파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무력과 전쟁이 아닌, 문화와 언어를 통해 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이들이 바로 낭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혁명이 아닌 문화적 부흥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특히 그림 형제, 야콥과 빌헬름은 이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민족주의는 정치가 아니라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민족주의’라는 말은 종종 전쟁, 국수주의, 배타적 국가주의와 연결됩니다. 하지만 19세기 초 독일의 민족주의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인들에게 무력에 의한 정치적 통일은 요원한 꿈이었고,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언어’와 ‘문화’라는 무형의 자산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면, 우리의 말은 무엇인가?” “우리 조상들이 세대를 거쳐 전해준 고유한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독일어는 어떻게 독특하고 아름다운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어가 프랑스어, 라틴어, 영어에 눌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적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림 형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귀족들의 화려한 궁정 문화가 아닌, 농민과 노동자,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를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 민족주의’였습니다. 정치적 국가가 아니라,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공동체’를 세우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민담, 즉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은 이 문화 민족주의의 핵심적인 자원이 되었습니다. 민담은 단순한 어린이 놀이나 오락거리가 아니라, 민중의 삶과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살아 있는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낭만주의자들은 왜 민담에 열광했는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유럽 지성계는 계몽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쳐 왔습니다. 계몽주의는 이성, 과학, 합리주의, 질서와 문명을 숭배하며, 미신이나 전통적 관습에 대한 비판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에 반해 낭만주의는 이성 중심의 문명 비판에서 출발했습니다. 낭만주의자들은 인간 내면의 감성, 상상력, 자연과 전통, 그리고 민중의 직관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들에게 문명은 오히려 인간성을 억압하는 벽으로 보였습니다. “인류의 가장 순수한 정신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노래, 민중의 구전 속에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문명의 껍질을 벗겨내고 민중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진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민담은 더 이상 ‘시골 노파가 들려주는 재미난 옛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민족의 혼이 담긴 집단 무의식의 표현이자,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희망, 두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 있는 텍스트였습니다.


그림 형제의 민담 수집은 ‘문화적 저항’이었다

나폴레옹의 지배 아래 프랑스식 법과 문화가 독일 곳곳에 퍼져 나가던 시기, 그림 형제는 서재나 도서관이 아닌, 마을의 골목과 가정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귀족과 지식인들의 언어가 아닌,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기록하려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곳에는 지배 계층에 길들여지지 않은 진정한 민중의 상상력과 언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만의 해석과 삶의 의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림 형제의 작업은 단순한 이야기 수집을 넘어, 독일 민족의 언어 자치권을 되찾고, 민중의 정서를 기록하는 문화적 저항이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의 패권에 맞서 ‘우리 말, 우리 이야기’를 지키고, 다시 부흥시키려 했습니다.


동화는 작은 민중혁명이었다

수집된 민담 속에는 말없는 백성들의 분노와 반항이 숨어 있었습니다. 권력자와 귀족들을 조롱하는 꾀 많은 하층민, 야생의 숲으로 도망쳐 새로운 삶을 꿈꾸는 아이들, 그리고 질서와 규범에 저항하는 다양한 상상들이었습니다. 그림 형제는 이 민담들을 통해 “민중은 상상력을 통해, 언어를 통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칼을 들 수 없던 시대,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한 투쟁이 바로 이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어린이와 가정용 동화집(Kinder- und Hausmärchen)’은 단순한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라, 무력과 정치적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문화적 공간에서 민중이 스스로를 지키고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동화들은 바로 그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민중의 목소리를 되살리다: 그림 형제의 철학

독일의 숲속 깊은 곳, 작은 마을 부엌과 장터, 난로 주위에 모인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기이하고 무섭고 때로는 웃음이 터지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귀족의 화려한 살롱에도, 서적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림 형제, 야콥과 빌헬름은 그 민중의 입말을 다시 글말로 되살렸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은 것이 아니라, 민중의 상상력을 되찾기 위한 조용하지만 집요한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었다: 그림 형제의 세계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림 형제는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같은 동화를 쓴 동화작가로만 기억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동화를 ‘창작’한 작가가 아니라, 민담을 ‘수집하고 기록하며 다듬은’ 편집자이자 민속학자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민중의 언어와 정신세계를 복원하려 했던 민족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야콥 그림은 독일어 어원과 법률 언어의 역사를 탐구했고, 빌헬름 그림은 민담의 시적 구조와 음악성을 분석하며 이야기를 정제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했습니다. “민중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을 기록하자”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생각한 진짜 문학이었습니다.


말, 언어는 민족의 정신이다

그림 형제는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과 사고방식, 삶의 방식을 담고 있는 문화의 그릇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어, 라틴어가 아닌 독일 민중의 말로 된 민담을 찾았고, 가능한 한 그들의 언어와 표현을 그대로 살리려 애썼습니다. 야콥 그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농부의 말투에는 철학이 있고, 아이들의 이야기에는 세상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철학 덕분에 그림 형제의 동화에는 고된 노동, 배고픔, 죽음, 질투, 폭력, 희망, 욕망 등 민중의 삶이 있는 그대로 담길 수 있었습니다.


다듬기는 왜 필요했는가

물론 그림 형제도 처음부터 완전한 ‘날것’만 담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시대 분위기와 출판 시장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잔혹한 장면들은 어느 정도 완화했고, 기독교적 메시지를 후기로 갈수록 더 첨가했으며, 여성 캐릭터는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민담을 완전히 없애는 각색이 아니라, 기록과 보존을 위한 정치적 ‘타협’에 가까웠습니다. 그 중심에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민중의 상상력이 사라지면, 민족의 영혼도 함께 사라진다.”


그림 형제가 상상력을 지켰던 이유

그림 형제는 민담이 단지 아이들 교육용 도구가 아니라, 억압받은 자들의 해방 서사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민담에는 계급을 넘나드는 꾀와 기지, 폭력에 대한 저항과 복수, 죽음 너머로 이어지는 희망과 기적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책상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억눌린 감정과 상상력으로 꿈꾼 해방의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화된 동화가 아닌 ‘날 것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림 형제에게 동화란, “민중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가장 오래된 형식”이며, “역사서보다 더 진실한 삶의 증언”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민담 사례: 민중의 삶과 철학이 담긴 이야기들

그림 형제가 수집한 동화들은 단순한 어린이용 이야기를 넘어서 당시 민중의 현실과 희망, 분노를 담은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 이야기의 초기 버전에는 계모와 이복 자매들이 신데렐라의 발가락을 잘라 유리구두에 맞추려는 잔혹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당시 여성의 가정 내 권력 관계와 사회적 억압을 상징합니다. 또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숲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며, 마녀를 오븐에 넣어 처치하는 극단적인 장면이 묘사됩니다. 당시 민중의 고단한 현실과 복수 심리가 투영된 이야기입니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하층민의 기지와 꾀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야기로, 억압받는 자들의 바람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망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그림 형제의 민담에는 욕망, 폭력, 분노, 복수, 희망 등 민중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출판 과정과 당시 사회 반응

처음 출간된 '어린이와 가정용 동화집'은 교육용이라기보다는 민중의 진솔한 삶을 담은 기록에 가까웠습니다. 초기 판본은 잔인하고 어둡고, 때로는 외설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이런 잔혹한 동화를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것에 반대하며, 너무 무섭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그림 형제는 후속 판본에서 폭력적이고 성적인 장면을 줄이고, 모호하거나 불편한 표현을 완화했습니다. 또 기독교적 도덕과 가정 중심 메시지를 강화해 당시 사회와 교육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동화를 다듬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림 형제 동화의 핵심은 여전히 민중의 상상력과 정서를 담고 있었기에, 점차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19세기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 독일 내에서 이 동화들은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고, 근대 민속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야기의 힘, 그리고 민중에게 다시 돌려준 목소리

그림 형제의 철학은 프랑스식 궁정 동화나 훈육 중심의 도덕 동화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잃은 민족은 자신의 영혼을 잃은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에서, 때로 잊혔던 ‘민중의 목소리’가 되살아나는 순간, 우리는 그림 형제의 철학을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민중이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분노하고, 희망하며, 상상했던 자유의 언어였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는 다시 민중에게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민중의 목소리와 국가의 검열 사이에서

그림 형제는 민중의 언어를 수집하고 그들의 상상력을 기록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동화는 겉보기에는 소박하고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억눌린 자들의 분노와 꾀, 그리고 저항의 상상력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림 형제 자신도 당시 독일 사회의 도덕적·정치적 요구와 검열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날카로운 부분들은 조금씩 다듬어졌고, 일부 민담은 아예 삭제되거나 ‘교육적’ 목적에 맞게 다시 편집되었습니다.


이야기에서 사라진 것들

1812년 그림 형제가 처음 출간한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집(Kinder- und Hausmärchen)』 초판은 지금 우리가 아는 동화책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어두운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계모와 친모를 구분하지 않고 친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이야기들이 있었으며, 성적 상징과 잔혹한 복수가 더 노골적으로 묘사되었고, 사회 질서의 전복을 암시하는 민담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사와 교회, 부모 독자층의 압력에 밀려 수정되기 시작했습니다. 1819년 이후 판본에서는 기독교적 도덕성이 크게 강조되었고, 여성 캐릭터는 점점 더 수동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폭력성과 저항의 색채는 점차 은근히 사라져 갔습니다.


왜 그렇게 ‘정제’해야 했을까?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민족주의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가정’은 민족의 뿌리이자 사회 질서의 최소 단위로 여겨졌고, 그림 형제 역시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민담을 수집했지만, 그 민족은 결국 “도덕적이며, 근면하고, 질서정연한 국민”을 지향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림 형제의 출판물이 대중에게 널리 퍼지려면 검열을 통과해야 했고, 교육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야기의 급진성을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희석시켰습니다. 이는 자기 검열이자 시대와의 현실적 타협이었습니다. 빌헬름 그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책을 썼다기보다, 어른들의 입에서 아이들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는 진짜 어린이 책이었을까?

흥미롭게도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는 처음부터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초판은 민속학적이고 언어학적인 목적이 강했고, 이야기 구조나 전개 방식도 성인 독자 중심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교육계와 출판계는 이 책을 어린이 교육 교재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림 형제 역시 이후 판본에서 ‘도덕적 교훈’을 강화하며 그 수요에 맞춰 갔습니다. 그 결과, ‘민중의 이야기’는 점차 ‘도덕 교육의 도구’로 변해 갔습니다.


그림 형제는 두 얼굴을 가졌다

그림 형제는 두 가지 얼굴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민중의 언어와 상상력을 복원하려는 기록자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도덕을 편집한 편집자의 얼굴이었습니다. 이 두 얼굴은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당시 현실에서는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그림 형제는 자신의 철학을 완전히 꺾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원고에는 여전히 원형 민담의 자취가 살아 있었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도 숨겨진 민중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동화를 통해 만들어질 ‘국민’을 상상해야 했던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아이의 상상력과 언어까지도 국가의 이상에 맞게 길들이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림 형제는 절대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그림 형제의 작업은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보존하고자 했던 기록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틀 안에서 조정되고 다듬어진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순은 당시 출판과 사회 환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긴 이야기들은 민중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상상력과 희망, 저항의 불꽃을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민담의 반란을 다시 읽는다는 것 — 억눌린 상상력의 복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는 대체로 ‘가공된 이야기’입니다. 아름답고 안전하며,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고, 결국에는 ‘착한 이가 승리한다’는 결말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율한 판타지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상상력이 자유롭게 펼쳐진 세계라기보다는, 누군가가 만들어준 틀 안에서 허용된 상상력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틀을 벗어난 곳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민담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민담은 왜 ‘반란’이었는가?

민담은 단순한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민담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현실을 뒤틀어 은유로 표현했던,

감추어진 저항과 반란의 무대였습니다. 가난한 자가 기지를 발휘해 권력자를 속이고,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으며 복수를 완수하고, 죽은 자가 돌아와 악인을 심판하는 세계였습니다. 이 세계는 당시 체제에 길들여진 질서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민담은 법과 도덕, 종교가 허락하지 않았던 감정과 욕망이 자유롭게 흐르던 공간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민담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정치성을 띠었습니다. 즉, 민담은 억눌린 자들의 상상력과 분노가 분출된 ‘문화적 반란’이었습니다.


동화는 어떻게 그 반란을 잠재웠는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민담은 ‘동화’라는 이름 아래 재탄생합니다. 페로의 동화에서 시작해 그림 형제의 편집, 그리고 디즈니의 영상 산업에 이르기까지, 민담은 점점 ‘어린이를 위한 도덕 교과서’로 탈바꿈해갔습니다. 욕망은 위험하며 억제해야 한다는 교훈, 운명에는 순응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가르침, 질서를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메시지가 담긴 교육적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사실상 국가, 종교,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형’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야기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고,

아이들은 스스로 상상력을 검열하는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다시, 민담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우리는 민담을 단순한 ‘옛이야기’로서 읽지 않고, ‘동화라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벗겨내는 작업’으로서 읽어야 합니다. 민담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잊혀진 분노와 저항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자, 억압받은 상상력이 묶여 있던 역사를 복기하는 일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지배 담론에 질문을 던지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다시 묻기 시작해야 합니다. 왜 늑대는 항상 악당으로 묘사되는가? 왜 여성은 언제나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는가? 왜 신분이나 계급을 바꾸려면 반드시 권력자의 허락이 필요한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옛 이야기 속 설정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통제와 권력의 프레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동화는 사라져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동화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그 이야기가 ‘누구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가’를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합니다. 동화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닙니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최초의 사회 교과서이며,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를 은밀히 속삭이는 교육 장치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질서에 순응하는 착한 아이’만을 키우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질문하고, 의심하며, 저항할 줄 아는 인간’을 키우고 싶은 것인지 말입니다.

이제는 동화를 새롭게 써야 할 때입니다. 민중의 상상력과 분노, 욕망과 해방의 서사를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그림 형제가 한때 꿈꾸었던 바로 그때처럼 말입니다.


민담의 반란을 다시 읽는다는 것

그림 형제는 처음에 민중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시장의 뒷골목과 농민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이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기득권을 속이고, 억압에 맞서며, 죽음마저 뛰어넘는 기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억눌린 자들의 상상 속 해방의 지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동화는 조금씩 변했습니다. 자매는 더 이상 발가락을 자르지 않았고, 계모는 더욱 악독한 존재가 되었으며, 공주는 더욱 조용하고 참을성 있는 인물로 바뀌었습니다. ‘착한 아이’만이 구원을 받고, 모든 갈등은 결혼으로 해결되었으며, 질서를 뒤흔드는 상상력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동화는 점차 부드럽고 달콤한 ‘훈육의 기술’로 변해갔습니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널 구해줄 것이다”, “질서를 지켜야 안전하다” 이 반복된 메시지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기 검열이라는 사슬을 만들었고, 상상력마저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착함은 누구를 위한 미덕이었는가?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이 ‘착함’은 과연 누구를 위한 미덕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착함이 가려버린 민중의 진짜 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다시 민담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억눌린 자들의 분노와 희망, 질문과 저항, 그리고 변화를 향한 갈망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것. 바로 그것이 진짜 상상력의 시작이며, 다른 미래를 꿈꾸는 첫 걸음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민담의 반란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과거 억눌렸던 상상력과 저항의 기억을 복권시키는 일이자,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통제와 순응의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민담의 날것을 복원하며, 그 안에 담긴 민중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에 꾸준히 힘써야 할 것입니다.


부록: 페로 대 그림 형제, 두 세계 그리고 하나의 동화

동화는 오늘날 전 세계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동화가 만들어지고 전해진 배경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7세기 후반,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의 샤를 페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페로는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궁정의 문화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시대 프랑스 궁정은 권위와 질서를 무엇보다 중시했습니다. 고상하고 우아한 이야기가 궁정의 분위기에 맞는 ‘좋은 이야기’로 여겨졌습니다. 페로가 처음 민담을 접했을 때, 그는 그것들이 너무 거칠고 야성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민중들의 입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폭력적이고 성적인 요소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민담들을 고상한 궁정 문화에 맞게 ‘문명화’했습니다. 잔혹한 장면은 없애거나 순화했고, 이야기 끝마다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아냈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사회 질서를 지켜야 안전하다.”

이처럼 페로의 동화는 귀족 사회의 가치관과 질서 유지에 부합하도록 다듬어졌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교훈서, 즉 훈육 매뉴얼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렇게 문명화된 동화는 프랑스 궁정 아이들에게 널리 읽혔고, 훗날 전 세계에 전파되어 ‘동화’라는 장르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반면, 19세기 초 독일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많은 부분이 혼란스러웠고, 여러 소국으로 분열된 상태였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림 형제, 야콥과 빌헬름은 이 시기에 활동하며 독일 민족의 정신을 문화와 언어에서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귀족들의 살롱이나 궁정이 아닌, 농부의 집과 시장 골목,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 민중들의 진짜 이야기를 수집했습니다. 그림 형제는 민중의 이야기를 가능한 한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도 숨기지 않았으며, 굶주림과 죽음, 억압과 저항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독일 민중의 진짜 삶과 정신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수집한 이야기는 단순한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라, 민족의 기억과 저항의 기록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낭만주의 시대 민족주의와 맞물려 독일 문화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림 형제의 작업 또한 전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후속 판본에서 그들도 이야기의 잔혹성을 줄이고, 도덕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다듬었습니다. 그것은 출판사와 교회의 검열, 사회적 도덕 기준에 부응하려는 현실적인 타협이었습니다.

이 두 세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페로가 동화를 ‘질서와 훈육’이라는 틀 안에 맞춰 문명화했다면, 그림 형제는 ‘민중의 삶과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하려 했던 것입니다. 페로의 동화는 왕과 귀족이 원하는 사회 질서와 가치를 반영하며, 아이들에게 ‘착하고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도구였습니다. 반면 그림 형제의 동화는 때로 폭력적이고 거칠었지만, 억압받는 민중의 분노와 저항, 욕망이 숨 쉬는 ‘해방의 언어’였습니다. 결국 페로는 권력을 위한 동화를 만들었고, 그림 형제는 민중을 위한 동화를 남긴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동화들은 페로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편집과 각색을 거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화를 읽을 때, 그 속에 누가 담겨 있는지, 그리고 누가 그것을 편집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동화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사회와 권력 구조를 반영하고, 아이들의 마음과 상상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매개체입니다. 따라서 페로와 그림 형제, 두 세계의 동화를 비교하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동화 속에서 진정한 목소리와 숨겨진 상상력을 발견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keyword
이전 27화순종의 교과서, 동화 1부. 착한 아이만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