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게 두려운 모두에게, "모두 잊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첫 글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고민하다가, 나를 이 공간으로 이끈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 판단했다.


드라마 <모두 잊었으니까> (2022)

시청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

회차: 10부작


※ 아래 내용부터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재밌게 봤습니다. 작품이 가진 묘한 여운을 온전히 느끼신 후에 제 글을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시청 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20251121_133027.jpg 그녀는 왜 코스튬을 하고 '바 등대'의 문을 열었을까? | 직접 찍은 화면


핼로윈, 밤 '바 등대'에서 캣걸 코스튬을 한 여자친구(F)가 사라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M)의 직업은 추리소설 작가. 자연스레 치밀한 추리물이나 긴박한 스릴러를 예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상물인 듯하면서도 미스터리하고, 모호하면서도 엉뚱한 전개가 이어진다.


5년을 함께 산 연인이 사라졌음에도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은 기묘할 정도로 무덤덤하다. 찾아온 F의 언니는 다짜고짜 돈을 요구하고, M은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돈을 건넨다. 'F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싶지 않아서일까?' 드라마는 그 이유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주변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사라짐'은 계속된다. M이 친구라고 생각한 남자조차 예고 없이 자취를 감춘다. 이것이 M의 무심한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일본 특유의 고맥락 문화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 모호한 세계 속에서 M은 편집자가 권유한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한다.



기억의 불완전함: AI가 만든 영상 속의 나


드라마 속 M은 새벽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기도 하고, SNS상의 살해 협박에 떨기도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결국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간다. 지나고 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그저 '잊어질 일들'처럼 말이다.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나온 세월의 소중한 순간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최근, 십수 년 전 고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AI를 이용해 만든 영상을 받았다. 분명 나에게도 중요한 날이었을 텐데,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상 속에 내가 있다면 나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 될까? 내 기억은 흐릿하고 불확실하다. 만약 그때 내가 사진 한 장과 함께 짧은 기록이라도 남겼으면 어땠을까?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조각들


드라마는 결국 "기억"에 대해 말한다. 드라마가 모호한 이유는 우리의 기억 자체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근저에는 모든 것이 '잊어진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우리는 소중한 순간마다 휴대폰을 꺼내 든다. 누군가는 눈앞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촬영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사진조차 기억을 불러오지 못할 때, 사진 옆에 남긴 짧은 글귀 하나는 우리를 그 생생한 시간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이정표가 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며 경험한 일들, 그리고 선택의 순간마다 내린 결정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과거의 조각들을 잊어버린다면, 나는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일부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잊혀질 조각의 기록을 시작하며


재밌게 본 영화와 드라마, 몰입하며 즐긴 게임의 기억들.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기록을 남겨왔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이 공간에서 나의 기억들을 더 성실히 기록해 보려 한다.


기억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준 이 드라마에 감사를 전하며, 지금의 감정을 잃지 않고 이 공간에 기록들을 쌓아 올해가 지나는 순간에는 이 공간도, 나라는 존재도 지금보다 더 풍성하길 바란다.




커버 사진 출처: TV 도쿄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