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너스: 죄인들, 악마와 함께 춤을

자유를 잃은 평화는 구원일까


영화 <씨너스: 죄인들> (2025)

시청 플랫폼: 쿠팡플레이

러닝타임: 137분


※ 아래 내용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재밌게 봤습니다. 영상미와 음악이 굉장한 작품이기에 시청 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욕이 계속 나왔다. Fuxxing racist! What the Fxxk!!! 너무 기분 나쁘고 무서웠다. 잔인한 장면들도 나오지만, 공포 영화치고는 그렇게 그로테스크하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요소들이 많지 않은데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롤러코스터를 탈 때,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 더 무섭다. 빠른 속도로 내려갈 때는 오히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요동치며 속도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고, 두려움과 즐거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반면에 철컥, 철컥 기계음과 함께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는 심장이 아플 정도로 괴롭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는 그 시간이 나를 공포로 몰고 간다. <씨너스: 죄인들>의 공포는 바로 그 느리게 올라가는 시간에 머물다 어둠과 함께 질주한다.




목화밭, 쌍둥이 형제, 그리고 클럽 주크


영화는 처음 시작하며 이렇게 말한다.


"진실된 음악과 연주로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고 과거의 영혼을 불러내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미래의 영혼도. 이들의 음악은 치유를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악을 불러들였다."


이 나레이션이 끝나자, 조그만 교회에 한 흑인 남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부서진 기타를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한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맑은 아침, 목화밭에서 일을 하던 새미는 교회에서 기타를 챙기며 목사인 아버지에게 설교를 듣고 차에서 쌍둥이 형제와 합류한다. 쌍둥이 형제는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스모크와 스택이다. 7년 전 마을을 떠났던 쌍둥이는 시카고의 갱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미시시피 클락스데일로 돌아왔다. 그들이 꿈꾸는 건 흑인 공동체를 위한 음악 주점, 클럽 주크다.


영화의 3분의 1이 클럽 주크의 개업 준비 과정이다. 어쩌면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 이 파트가, 오프닝에서 이미 한 번 공포를 심어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섭게 다가온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까?”라는 긴장감 때문에 사소한 대화와 준비 과정까지 유심히 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초자연적인 존재, 악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본격적인 호러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평화로운 풍경, 불편한 공기, 그리고 음악


보는 동안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게 흔들렸다. 맑은 하늘과 목화밭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달리는 장면에서는 묘한 평화로움과 함께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반대로 ‘백인 전용’ 표지판, 흑인이 백인에게 말을 제대로 걸지도 못하는 장면에서는 욕이 절로 나올 만큼 불편했다.


차에서 새미의 블루스 연주가 처음 흘러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스택 표정이 내 표정일 정도로 충격적이었는데, 이 음악이 앞으로 어떤 일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길함이 동시에 스며들었다. 클럽 주크에서 새미가 기타를 치며 노래할 때, 과거와 미래의 음악과 사람이 한데 모여 기묘한 순간이 연출된다. 화면과 사운드, 나레이션이 뒤섞이며 클럽 주크가 불타올라 밤하늘을 비추다가 뱀파이어 일당이 걸어오는 순간은 “대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카메라가 뱀파이어 일당의 뒷모습을 잡으며 천천히 클럽 주크로 향하는 순간, 심장은 계속 두근두근거린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에 대한 두려움,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 것인지를 상상하며 긴장감에 몸을 잔뜩 웅크리다 초반에 단추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를 보여줄 때는 What… the… Fuxx !@@!



인간의 '갈등'과 뱀파이어의 ‘구원’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피 튀기는 장면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클럽 주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뱀파이어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영화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다. 사랑, 이별, 돈.


스모크는 “돈이 곧 힘”이라고 말한다. 흑인은 가난하고 백인은 부유하다. 부유한 백인은 흑인을 노예처럼 부리고, 흑인들의 삶은 구조적으로 가혹해진다. 이런 현실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교회와 클럽 주크다. 교회는 규칙과 도덕을 강요한다. 반면 클럽 주크에서 새미의 블루스가 흐르는 동안, 그 공간의 사람들은 잠시나마 치유를 받고 갈등이 사라지는 듯한 평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악인 뱀파이어 일당이 클럽 주크에 찾아오며, 공동체는 더 큰 위기에 빠진다. 흥미로운 건, 뱀파이어 사이에는 우리가 아는 의미의 갈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생각을 공유하고, 나보다 ‘우리’를 우선하며, 내부적으로는 모두가 평등하다. 사람들에게 뱀파이어는 분명 악이다. 하지만 뱀파이어의 입장에서 보면, 탐욕과 폭력으로 서로를 짓밟는 인간이야말로 진짜 죄인이다. 그들에게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행위는 ‘구원’이다.




인간은 죄인인가: 욕망과 경쟁에 대하여


인간은 죄인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큰 죄를 짓는다.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리는 한정적이고,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많다. 결국 누군가의 꿈을 짓밟아야 내 꿈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타인의 꿈을 꺾지 않고, 갈등의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사람은 경쟁을 하고, 고통을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다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한다. 이 영화 속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스모크와 스택, 그리고 새미도 각자의 욕망과 죄를 안고 클럽 주크의 하룻밤을 보낸다.


60년 후, 다시 만난 둘의 ‘자유’에 대한 대화


에필로그에서 시간은 60년을 건너뛴다. 1992년 10월 16일, 이제 노년이 된 새미는 자신의 클럽에서 여전히 음악을 부르며 사장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60년 전과 다름없는 모습의 스택과 메리가 나타난다.

새미에게 그날은 악몽과도 같은 날이다. 동시에 생애 최고의 하루이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스택 역시 그날을 돌아보며 “우린 자유로웠다”라고 말한다.


쌍둥이 형제는 자유를 원했다. 자유를 찾아 고향을 떠났지만, 시카고에서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차별이었다. 결국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클럽 주크를 연다. 이곳 역시 인종차별과 빈곤, 폭력이 사라진 공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동안 그들은 분명 ‘자유’를 맛본다.



행복의 조건의 아이러니


자유란 뭘까? 자유에 대해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퇴사짤'로 유명한 인터넷 밈이다.

이누야샤의 캐릭터 유가영(히구라시 카고메)의 대사로부터 유래된 인터넷 밈.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이 대사가 웃기면서도 여운이 남는 이유는 행복이 모든 굴레와 속박을 부정하는, 자유를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느끼는’ 감각은 억압과 속박을 경험해야만 생긴다.


다이어트를 오래 한 사람이 오랜만에 먹는 라면은 인생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삼시세끼 라면만 먹는 사람에게 라면은 냄새만 맡아도 물리는 음식이 된다. 결국 라면(행복)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결핍'이 필수적이다.


영화 속 음악이 공동체에 치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악도 불러낸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화로운 곳에는 욕망이 피어나고, 욕망이 생기는 곳에는 죄와 갈등이 따라온다. 그것이 순환이다.



갈등이 없는 세상,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왜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할까? 서로 다른 공동체에 속해 있고, 외형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힘들고,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서로의 위치와 관점이 다르기에,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뱀파이어가 되어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고, 모두의 생각을 공유한다면 갈등은 사라질까?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서로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자유롭지 않은 평화가 우리에게 진짜 행복을 가져다줄까?"


늙은 새미를 만난 스택은 마지막 태양을 떠올리며 자신은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이 행한 학살을 ‘구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유를 상실한 평화가 진정한 구원일까? 순환이 멈춘 세계의 끝은 결국 파멸이자 '공허'만이 남을 것이다.



사진 출처: 직접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