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왜 니 맘에 들어야 되는데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2026)
시청 플랫폼: 넷플릭스
회차: 12부작
방송 기간: 2026년 4월 18일 ~ 2026년 5월 24일 (예정)
"본 게시물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드라마에 대해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주말 넷플릭스 메인에 모자무싸(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보였다.
무가치함이라? 제목에 약간의 흥미가 생겨 시청을 했다.
1화를 시청하다가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박해영 작가.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집필한 작가이다.
<나의 아저씨>는 명작이라 생각하고 정말 재밌게 봐서 대본집도 구매할 정도였다. 반면, <나의 해방일지>는 1화만 보고 말았다.
그런 작가의 신작인 이번 모자무싸는 20년 간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작품 하나 없는 자칭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를 그리는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할 말이 참 많다.
일단 이 자칭 영화감독, 황동만(구교환)은 정말 시니컬하면서도 모순적인 인물이다. 성공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 배가 아파서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다. 자신을 못 알아봐 주는 세상이 밉고 세상을 향해 날이 서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지금 신세가 아주 억울해 미치겠는 사람이다.
그가 쓴 영화 시나리오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는 날씨가 사라져 버린 시대에 날씨를 만드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날씨를 만드려는 이유는 세상이 망했고 안 망했고의 차이는 날씨가 있고 없고의 차이이기에 날씨를 만든다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드라마에는 감정 워치라는 게 나온다. 착용자의 감정을 표현해 주는 시계인데 녹색은 긍정, 적색은 부정을 표현하며 어떤 감정인지 글자로 표현해 준다. 사용자보다도 더 감정을 잘 알아낸다.
그런데 여주인공인 변은아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피를 흘리는데 감정워치의 색은 적색. 하지만 감정은 알 수 없음으로 나온다. 아직 정의 내리지 못한 감정이라는 뜻이다.
날씨나 감정 워치가 왜 나왔을까?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요소가 있다. 화창한 날엔 희망적이고 비 오는 날은 우울하다. 물론 누군가는 비가 올 때 기분이 들뜰 수 있다. 눈이 오는 날엔 어린이는 기분이 좋지만 어른들은 걱정이 앞선다. 중요한 건 날씨로 감정이 변한다는 점이다.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상황에서도 평이한 것. 그걸 황동만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심장박동을 그래프로 나타날 때 위아래로 요동치지 않고 일직선이 되는 순간 죽음을 의미하듯이 감정의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자신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이라면 긍정적인 요소로 감정이 요동칠 텐데 자신은 20년째 자칭 영화감독인 무직. 그렇기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방향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더라도 감정을 요동쳐야 한다. 잘나서 특별해질 수 없다면 망가져서라도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
그렇게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한 여자가 있다. 영화 제작사의 PD로 일하는 변은아(고윤정). 그녀는 무표정하다.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고 까는데 프로다. 자신만의 언어로 신랄하게 까내리는데 듣는 작가, 영화감독조차 놀랄 정도로 설득력이 있어서 화가 나기보다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그녀는 직장에서 고립된다. 대표의 눈 밖에 나서일 수도 있지만 정확한 사정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마재영이라는 영화감독이 있고 그와 연인이었다가 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할머니는 아직 연애를 하는 줄 알고 남자친구인 재영이의 안부를 묻고 그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보내지만 받을 사람이 없기에 버려질 뿐이다.
3화 예고를 보면 전 남자친구인 재영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가 왜 이렇게 무표정한 존재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황동만과 같은 동네에 산다. 퇴근길에 마주치는데 그의 시나리오를 보고 대차게 까기도 하지만 도움도 준다. 어떻게 하면 파워를 가질 수 있을지. 사랑, 소중한 존재를 지키고자 한다면 파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힌트를 말이다.
황동만에게는 소중한 존재가 없다. 그래서 힘도 없다. 힘없는 개가 요란하게 짖듯이 세상을 향해, 타인을 향해 짖을 뿐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소음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찾아온다. 그녀, 변은아다. 그녀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감정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며 힘을 얻는다.
황동만은 변은아를 지키기 위해 파워를, 힘을 낼 것처럼 보인다.
2화까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드라마 내용이 황동만이 타인의 작품을 헐뜯고 거기에 화가 난 주변인들이 황동만을 헐뜯는다. 누가 먼저 시작한 것인지는 모른다. ‘8인회’라는 대학 동기, 선후배의 모임이 있다. 처음엔 박영수 감독이 감독 데뷔를 했을 때 남은 7인들 모두 시기와 질투를 했다. 다행히 남은 사람들도 데뷔를 하며 성공을 하고 더 이상 타인을 시기하지도 질투하지도 않게 됐을 때 남은 한 명, 황동만만이 데뷔를 못하고 시간이 흘러 20년이 지났다.
같은 공간에 함께 하지만 다른 신분.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못한 자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경험해야지만 보이는 것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인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결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보는 일이 생긴다. 황동만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형인 황진만이 묻는다.
“데뷔야? 성공이야? 뭐야?”
거기에 대한 답으로 황동만은 불안하지 않은 거라고 대답한다.
또 거기에 대한 답으로 황진만은 여자 만나라고 답한다.
형제 둘이 아주 똥을 싸고 있다.
왜 사람들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도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왜 더 높은 곳을 향해 욕망을 가지는가? 불안하지 않고 싶어서다. 언제 자신의 지금 위치에서 낮아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기에 힘들어도 페달을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 넘어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황진만은 여자를 만나라고 한다. 여자가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거였나? 많은 남자들이 성공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자기가 원하는 이상형의 여자를 만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 두 형제는 어찌나 잘난 존재들인지 여자 만나기가 숨 쉬는 것보다 쉬운가 보다.
아주 배부른 새끼들의 똥 싸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욕이 절로 나온다.
그래, 감독 데뷔가 대수냐, 고윤정만 얻으면 성공한 인생이지. 딴 게 왜 필요하냐. 고윤정과 결혼하고 행복을 느끼며 엔딩을 맞이하면 되겠다.
그런데 실상은 어떨까? 고윤정과 결혼하면 불안하지 않을까? 설마, 더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질 것이다. 이상적인 배우자를 얻으면 자기가 과연 그 사람에게 적합한 존재인지에 대한 증명을 하고 싶어 불안해 미칠 것이다.
근데 웃긴 게 뭐냐면, 황동만은 불안하지 않고 싶다고 하지만 안정적인 걸 싫어하는 인간이다. 불안하지 않는다는 것이 뭘 의미할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원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그냥 큰 거 안 바라고 지금 같은 일상이 유지되는 걸 원한다. 지금 같은 안정적인 일상이 지속되고 사건, 사고 없이 큰 변화를 바라지 않는 안정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황동만은 어떻게 행동하나? 자신은 날씨를 만든다면 화창한 날씨, 긍정을 뜻하는 녹색, 녹음이 가득한 숲을 떠올리는데 그가 하는 행동은 타인에 대한 비난이다. 그 말을 할 때 감정 워치의 색은 뭘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자신의 감정 워치의 색은 뭘까? 녹색을 원하지만 하는 행동은 적색을 바라듯이 행동한다.
모순적인 사람이다.
부자에 대한 내용을 쓴 지망생에게 왜 가난한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부자에 대한 글을 쓰냐고 말한다. 가난은 글 쓰는 사람에게 축복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지망생의 “선생님은 왜 성공하지 못했냐”는 말에 억울하다는 감정을 표한다. 왜 억울하지? 이유를 모르는 게 이상하다.
<팔 없는 둘째 누나> 시사회 뒤풀이 장소에서 영화에 대해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내뿜는다. 같이 앉은 후배가 자신은 재밌게 봤다고 그리고 영화가 재미없다고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이냐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배고파 뒤지겠어서 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이 맛이 없으면 화가 나? 안 나?라고 이야기한다.
황동만이가 지금 배가 고픈 상황인가? 아니다. 그는 매일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또 재미없는 영화도 보고 화를 낸다. 영양 과잉 상태다. 그러면 어떤 음식인들 맛있을까?
뷔페에 가서 음식을 먹는다. 첫 접시는 엄청 맛있다. 하지만 두 접시, 세 접시, 자신의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맛있던 음식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만 먹고 집에 가서 눕고 싶다.
공짜인데도 그만 먹고 싶어진다. 근데 그때 돈을 받으며 음식을 먹으라고 권유하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화가 나지. 왜 배부른 사람한테 음식을 먹이냐고 화를 내겠지.
황동만이 그런 상태다. 근데 기어이 또 찾아가서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화를 낸다. 누구의 잘못인가?
<팔 없는 둘째 누나>의 감독인 박경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본인이 악하지 않은데 왜 악한 이야기를 하려고 들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인 역시 마찬가지다.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는 날씨를 만들고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본인이 하는 행동은 어떤가? 본인은 녹음이 푸른 숲을 원하지만 하는 말과 거기에 대한 피드백으로 그의 감정 워치는 적색을 띤다. 본인 성격대로 주변 사람들 괴롭히고 화나게 만드는 글이나 쓰지, 20년 동안 자신한테 어울리지 않는 시나리오를 붙들고 있다.
최필름의 최대표를 찾아가서 최대표에게 쓴소리를 듣는다. 20년 했으면 충분하니까 이제 다른 일을 알아봐라는 이야기다. 그때 황동만의 감정 워치에는 허기가 뜬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폭식을 한다. 근데 이 허기가 육체적 허기인가? 아니. 정신적 허기이다. 희망을 가지고 찾아간 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에게 상처이다. 괴롭다. 칭찬을 듣고 싶은데, 위로를 받고 싶은데, 치켜세워지고 싶은데…. 지금까지 해온 걸 끝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허기를 느낀 것이다.
여기서 연출적으로 아쉬운 점은 먹다가 화장실로 뛰어가서 먹은 것을 다 토해내는 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면 육체적 허기가 아닌 정신적 허기임을 표현하기 알맞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즐겁지가 않다. 내용에 대해 비판하고 싶어진다. 이유는 황동만의 주변인들이 황동만을 좋게 보지 않듯이 드라마가 헐뜯는 내용이 '주'이다 보니 나 역시도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2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변은아는 초능력을 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을 다치게 할 정도로 마음의 힘이 세고 그래서 타인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설정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박해영 작가가 <기묘한 이야기>에 심취했나? 왜 이런 설정을 넣은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뺏으면 하는 부분들이 보인다. 학원 강사로 지망생들에게 수업을 하는 장면과 결혼식 알바로 가서 음식 정리하면서 남은 음식 먹는 장면은 보기 싫다.
지망생 수업하는 장면을 넣으면서 말하고 싶은 거, 억울, 지망생의 순수한 질문에 받는 상처를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학원 강사도 하고 알바도 하는 모습은 열심히 살잖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에서도 남은 음식 먹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또 하는 거는 정말 별로다. 굳이 그 장면을 넣어야 했나? 그리고 20년을 한 시나리오만 붙들고 있었는데 그걸 또 면접 전에 글을 읽으면서 정리하는 장면이 필요한가? 20년인데. 20년을 하나의 시나리오만 붙들고 있었는데 그냥 누가 콕 찌르기만 해도 자기가 왜 그 글을 썼고 무엇을 말하고 싶고 어떤 의도로 썼는지 왜 이게 지금 영화로 나와야 하는지 줄줄줄 나올 것 같은데 그걸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허둥지둥 20년 동안 하나의 시나리오만 붙들고 있으니 이제 자신도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없겠지. 처음에는 정말 재밌는 글이고 무조건 성공할 거라 생각했는데 1년, 2년이 흐르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치고 12고를 하게 되니 본인도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쓴 글이 재미는 있는지, 뭐가 문제인지 확신이 안 들겠지. 근데 그러면 제작 단계에 들어가도 문제잖아. 이제 그만하는 게 맞잖아. 지금 그만두면 혼자만의 피해로 끝이지만 제작 단계를 넘어 개봉까지 하게 되면 많은 관계자들이 피해를 보잖아.
그리고 자신이 수준 미달의 영화를 보고 화를 내듯이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거잖아. 그리고 우연의 우연이 거듭돼서 성공하면 더 불안하게 되잖아.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성공을 하게 되면 더 불안해질 거잖아. 그러면 다음 작품은 또 불안을 안고 쓰게 되잖아. 그러다 우연으로 얻은 성공이 이어지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잖아. 그게 반복되면 너가 욕한 박경세가 되는 거잖아.
그런 삶을 원하는 거야? 왜 성공했는지도 모를 성공을 원하는 거야? 아니. 불안하지 않고 싶은 걸 원한다며. 그러면 그만 포기해. 놓아줘. 그리고 형 따라 용접을 배워. 그리고 거기서 생생한 삶을 살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 그럼 또 모르지.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노인과 바다> 같은 명작을 쓰게 될지.
적어도 자신은 확신하는 글을 써야지. 우연을 노리고 자신조차 성공할지 자신할 수 없는 글을 붙잡고 세월을 흘려보내면 안 되잖아.
그러면 본인이 너무 슬프잖아.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하려고 그 장면을 넣었나? 근데 황동만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글을 썼을까.
쉬었음 청년들이여, 사랑을 하라. 소중한 존재를 만들고 힘을 내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이겨내고 생산적인 일을 하라.
또는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싶은 것일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왜?
불안하지 않으려고.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면 불안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근데 그게 맞아?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면 불안하지 않아? 그리고 가치라는 게 뭔데?
가치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나는 <오징어 게임>을 굉장히 재밌게 봤다.
하지만 시즌이 아니라 그냥 <오징어 게임>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즌 1의 엔딩을 보며 이 작품은 여기서 끝내는 게 가장 알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사정으로 결국 시즌 2와 시즌 3을 발매했다.
역시나 시즌 1로 끝내는 게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 측면에서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시즌 3까지 한 게 맞다.
돈을 얼마나 버냐를 작품의 가치로 판단한다면 <오징어 게임>은 시즌 3까지 나온 게 가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예술적 측면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시즌 1로 끝내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절대적이지 않다.
그런 절대적이지 않은 개념을 신경 쓰고 싸우는 일 자체가 문제다.
왜 그런 개념에 휘둘리지?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에 그것보다 우선순위로 둘 실질적인 할 일들이 훨씬 많을 텐데?
자신의 시나리오에 집착하는 황동만에게 황진만은 놀지 말고 일을 하라고 한다. 5년에 한 번, 10년에 한 번 하는 건 일이 아니라 취미라고 말한다. 죽기 살기로 매일 하는 게 일이라고 한다.
거기에 황동만은 매일 죽기 살기로 하면 진짜 죽는다고 답한다.
그의 과거를 모른다.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그런 삶을 살지 않은 듯 보인다.
답답한 일이다. 매일 죽기 살기로 하면 진짜 죽는지 해보지 않고 어떻게 판단해?
진짜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해도 성공할지 모르는 곳에 있으면서 죽는 게 두려워 허송세월을 보내나? 그러면 타인은 그 삶을 이렇게 평가한다.
“너는 어쩌다 저쩌다 20년이 흐른 거잖아. 밥 먹고, 똥 싸고, 밥 먹고, 똥 싸고 하면서”
화나지 않나?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평가받는 게. 그래도 살고 싶나? 죽을 각오를 하고 힘내고 싶어지지 않나? 파워가 안 생겨? 소중한 존재가 있으면 파워가 생길 것 같아? 그럼 여자 만나.
소중한 사람을 만들어. 진짜 자신이 죽더라도 지키고 싶은 그런 소중한 존재를 만들어.
황동만은 다행히 그런 존재가 나타났다.
좋은 일이다.
근데 이 드라마를 보며 공감하려던 쉬었음 청년들은 가능한가? 결론에 공감할까?
우리 영포티 형님들은 열광할까. 40대에 20년을 쉬었고 지금도 변변한 직업이 없어도 고윤정 같은 미모의 20대 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니 신이 날까.
그럴 리가. 혹시나 그런 상상하는 사람은 정신 차려라.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 너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내가 황동만보다는 낫다고. 20대의 미모의 여성이 자신을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고? 정신 차려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일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드라마의 내용에 공감 포인트가 없다. 그냥 블랙 코미디 드라마일 뿐이고 한심한 모습을 보며 낄낄거릴 킬링 타임용인데 내용이 유쾌하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이 드라마를 볼 이유가 더 있을까?
뭐?
“이 드라마가 왜 니 마음에 들어야 되는데요?”
내 마음에 들 이유가 없지. <나의 해방일지>도 나는 1화밖에 보지 않았지만 드라마는 성공했잖아.
그냥 이건 나의 공간에서 내가 보고 난 후 느낀 점을 이야기한 거야. 내 글이 마음에 안 들어?
“내 글이 왜 니 마음에 들어야 되는데요?”
참 고마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