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모모라는 책에서 시간 도둑 이야기가 나오는데 낭비되는 시간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효율적인 시간을 만들수록.. 점점 더 삶이 불행해지고 더 바빠지는 현실이 나온다.
오늘 난 많이 힘들어 우시는 분과 1시간 반 정도 통화를 하였다. 매번 그렇게 시간을 낼 수는 없지만 드물게 가끔씩 그런 시간을 내는 편이다.
아마...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들은 시간 낭비라고 몰아세우겠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한 사람이 없어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상담을 한 것은 아니고 그저 집중하여 그분의 아픔을 듣는다. 맘껏 엉엉 우실 수 있는 시간이 그분에게 필요했던 것 같다.
항상 타인을 배려하고 섬기시는 분이셔서 정작 자신을 챙기고 돌보시는 것은 못하시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인간적으로 함께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좋은 분이시기도 하다. 자발적인 시간의 (의미 있는) 낭비라 여긴다.
사실 세아이를 기르다 보면 밥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개고 숙제를 점검해주거나 학원 픽업을 하게 되는 일들이 매일 발생한다. (수요와 공급) 큰 아이는 대치동으로 학원을 가야 하는데 하교 시간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데려다줘야 하는 일이 있고.. 오며 가며 시간이 왕복 55분은 걸린다. 그렇게 주 3회니까... (55분 × 3번)
막내도 초등학생이라 버스 타고 다니라 해도 되지만 늦은 시간엔 여자아이라 걱정이 되기도 해서 주 2회 픽업을 해준다. 거리는 오며 가며 왕복 40분 정도(집에서 옷 입고 차를 가지고 가는 시간, 대기 시간 포함. 나는 데려다주고 집에 오고 또 데리러 가고 데려오고 4번임)
(평일에 살림 시간이 하루 총 3시간 정도 걸리고 주말엔 대충 끼니를 챙기거나 배달을 시키기도 해서 2시간 반 정도 잡았다.)
이렇게 일주일치 엄마로서 주부로서 온전히 가족을 위해 봉사한 시간이 32시간이 나왔다.(정기적인 노동량만 계산)
7일로 나누면 하루에 5시간 가까이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고 아이들을 챙긴다는 거다. 물론 추가 시간이 있을 때도 있고 아이들 픽업 전에 잠깐 짬이 나는 시간에.. 허송세월하게 되는(무엇을 하기엔 애매한 시간) 때는 뺀 시간이다.
하루 5시간, 한달이면 150시간, 일년이면 1800시간이다
10년이면 1만8천시간이다. 보통 20년은 그러지 않은가?
막힐 때도 있고 갑작스럽게 비가 와서 우산을 챙겨줘야 하는 때, 시험 전 보강 시간에 맞춰야 하는 시간 등은 제외했다. 애들 병원 데려가고 기다리고 담임선생님과 상담전화 등등은 제외)
15시간 정도 깨어있다면 1/3은 가족에게 온전히 할애하는 노동 시간이란 거다. 이렇게 계산을 하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팩트를 전달하니.. 반응들이 재밌다.
큰 아이는 정말 궁금했는지.. 그래서 엄마가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요?
정말 모르는 눈치.
"응. 엄마가 그만큼 헌신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ㅎㅎㅎ 당연하진 않은 거란 거..."
남편에게는 1시간당 만원 아르바이트를 쳐도 매일 적어도 5만 원은 벌어주고 있는 거라고~ 하면서 한 달이면 150만 원은 내가 아끼고 있는 거라며 말을 해본다. ㅋ
(가정 노동 시간을 남들은 당연시해도.. 나 스스로는 알아주고 싶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물론 나는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생색을 내려는 마음은 별로 없다. 다만 나의 헌신도를 내 스스로 알아보고 싶었고(궁금)... 사춘기 10대 아이들이 많이 커서 지금은 이 정도를 내지만 아이들 어렸을 때는 더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그때 계산을 했어야 하는 건데...)
내 시간을 소중한 곳에 썼기에 아깝거나 하진 않고 내 선택이니까 괜찮지만.. 다만 엄마와 아내의 애씀이 당연시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딱 그 정도 바람임.
워킹맘들은 또 얼마나 바쁘게 살았을까 싶다. 엄마로서의 애씀이 당연시되지 않고 그 가치를 인정받고 존경도 받는 시대가 오길... 물론 남편들의 애씀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생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해야 하는 견디고 감내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 남편은 한 직장에서 곧 25년이 되어간다.
아내와 남편의 애씀을 가족들은 인정해주면 좋겠다.
남편의 꾸준함, 성실함 덕에 나도 자아실현 및 가정경제에 도움이 될 강사 직업도 갖게 되었으니~ 고마운 마음도 든다.
당연한 건 없다. 희생과 섬김을 기억하고 당연시 여기지 않을 때.. 그 가치와 의미가 살아난다. 바라고 한건 아니지만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은 작은 거라도 가족을 위한 기여, 작은 섬김의
노동이 필요하다.
재활용 버리기. 화분 물 주기. 강아지 산책시키기. 블라인드 치고 닫기. 자신이 먹은 음식 설거지에 잘 가져다 놓기. 컵 씻기. 강아지 밥과 물 주기, 강아지 패드 정리 등...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노동시간을 계산해봤지만 아이와 눈 맞춤하고 아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기 걸린 아이를 간호하는 기꺼이 드려지는 시간... 아이의 성장을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시간...
그리고 사춘기 아이의 짜증을 감내하고 아이의 성장을 기대하는 바람의 가치는...
값으로 매기기엔 너무 귀한 거니까..
나의 섬김과 애씀이 당연시되지 않아야 억울하거나 허무하거나 인정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수많은 과거의 어머니들이 화병이 많으셨던 것도..
무시당한 희생의 가치가 억울함과 슬픔으로 다가와서이지 않았을까?
그들의 거룩한 낭비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애썼다. 고맙다. 잘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