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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대한하루 Aug 13. 2024

영광의 기억

당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영광의 순간이 있나요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어릴 때는 그냥 불편하게 생활했지만 마흔이 넘은 지금 생각해보니 참 지독하게 가난했던거다.

초등학교 때 반장선거를 나간 기억이 있다. 외모 컴플렉스가 심했고 소심하고 자존감 낮은 아이는 수줍게 공약을 말하고 뒤돌아 서던 순간 반 친구의 조롱섞인 장난을 듣고 말았다. 물론 악의는 아니였을거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수치스러웠다. 그 기억이 내 머리에 내 마음에 각인되어 나서는 것을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으로 초중고를 보냈다.




집이 가난하다는 건 돈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돈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아닌집도 있을 것 같다.)

아빠는 술을 많이 드셨고, 지금 생각해보니 알콜 의존을 넘어 중독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하루종일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는 커녕 우리 가족은 점점 더 어둠속으로 지독한 가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집은 고성과, 엄마의 한숨과, 눈물이 함께 했고 종종 깨진 살림살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학교다닐 때는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5학년이 되고 생리를 했지만 왠지 말하기가 힘들었다. 휴지로 몰래 생리를 안하는 척 하며 한 동안 학교를 다녔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 내 외모가 못생겨서 내가 가난해서 성격이 소심해서 나를 본다고 생각했다.




나도 잘하는 게 있었을텐데.. 그럴 때 힘을주는 말, 일으켜 세워주는 말, 행복해지는 말, 자존을 지켜주는 말들을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항상 나를 의심하고 못할까봐, 잘해내지 못할까봐 늘 불안해했다.

왜냐면 못하는 나를 발견하면 나는 살아갈 힘을 아예 잃을 것 같았고 너무 크게 좌절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 생각한다. 나에게도 아마 작은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을텐데

내가 내 부족함에 집중한 나머지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살아내기 바빴고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살아오신 부모님에게서는 비록 영광의 순간들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니 보석처럼 빛나는 말로 나를 감싸주던 사람들이,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래,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영광의 기억들이 있었던거다.




지금은 영광의 순간을 스스로 만든다.

아무리 직장생활이 힘들어도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운동을 한다.

습관이 되면 좋은 것은 나는 운동하는 사람으로 정체성이 바뀐다는거다.

또 정말 아프거나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노트북이든 종이든 한 줄이라도 쓴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힘들고 귀찮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도 성장했구나, 어제의 나보다 낫구나. 영광스럽다.


나는 나서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물론 모두 나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좋은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마음의 저장 창고에 쌓아두고 힘든 일이 있을때마다 또는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나를 의심하는 순간마다 창고에 있는 그 영광의 순간들을 꺼낸다.


'아, 나 할수 있지. 나 해내는 사람이였지.'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꺼내야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영광의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그 사람의 마음에 그 사람도 모르게 쌓아주고 싶다.


그래서 무의식으로 힘을 낼 수 있길 용기를 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나보다는 덜 번거롭게 더 일찍 충만한 마음으로 행복에 집중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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