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다는 것
어릴 적 나름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상의 딱히 상의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고민의 중요도가 클수록 혼자 생각하고 다소 대담하게 실행하는 편이긴 하다.
결정의 책임이 나에게 있으니 결정도 혼자 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가끔 지혜로운 어른의 말들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어른이라고 하는 나이가 되니 이제 어른을 찾기도 민망해졌다. 새벽 일찍 눈을 뜨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를 반복하고 내 생각과 느낌을 믿고 결정을 내린다.
이번에 회사를 퇴사하기로 한 결정도 다르지 않았다.
나름 호기롭게 시작한 회사생활이었고 나름 괜찮게 잘해왔다. 물론 나름.
그래도 잘 해내려 한 노력만큼은 나름이 아닌 최선이라 불러주려 한다.
새삼 회사에 고마운 마음이 너무 크다.
일단 경험의 폭을 넓혀준 것, 회사원으로 살게 해 준 것, 다른 분야의 일에 도전할 기회를 준 것, 성장하게 해 준 것,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해 준 것, 어린 동료들의 에너지를 받게 해 준 것
비록 스스로 나이에 대한 부담감을 내 스스로 지고 출. 퇴근 시간까지 10시간 이상을 회사에 쏟는 것이 어느 순간 마음을 몸을 짓눌렀다. 사회의 갑질을 처음 경험해 보고 스트레스는 심해져 갔다.
갑질에 대응하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생겼고 동료들과 건강하고 즐겁게 회사생활을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3년 차가 되었다.
이제 좀 덤덤한 회사원이 되었나 했지만 퇴사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큰 이유는 없지만 확실한 건 내가 회사 안에서 내 성장에 대한 방향을 잃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청개구리 같다.
오히려 안정을 찾으려 하면 다른 쪽으로 시선이 간다.
하지만 지금의 다른 쪽, 다른 길은 다소 좀 두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제는 또 다른 어른들이 이야기를 좀 들어보려 한다.
구직사이트를 몇 번 들여다보며 현실파악도 하고 세월의 지혜가 담긴 조언들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퇴사하고 싶은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할 수는 없다.
원래 다 그런 마음을 품고 다닌다 하지만 유독 그게 잘 안된다.
잠을 잘 못 자 얼굴이 수척한 나를 보며 가족들은 걱정스러운가 보다.
그래서인지 엄마한테는 항상 제일 늦게 이런 결정을 통보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엄마가 가장 대담한 대답을 해 준다는 거다.
'잘했네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그래 사회생활은 회사생활은 고생스러운게 맞다.
그 고생이 헛되지 않게
고생은 그만할 수 있게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시작하려 한다.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는다.
백수 생활을 앞둔 두려움인가?
새로운 일에 대한 불투명함 때문인가?
자신을 잃은 건가?
매일 새벽 나에게 묻는다.
근데 아직 대답을 못 들었다.
나는 어떤 인간인지, 어떤 걸 할 수 있고, 뭘 해야 행복한지
내일 새벽에도 또 물어보려 한다.
제발 찾을 수 있기를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나를 위해
이 또한 좋은 결정으로 만들기 위해 빈약하지만 강한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