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은 어떻게들 하세요

'결핍'의 습관이 결정의 습관이 되다.

by 일희일희

어린 시절 물질적인 결핍은 정신적인 결핍으로 이어지곤 한다.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았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 그 현상은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나에게 큰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준 은인들을 있다. 그들은 성숙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좋은 어른으로 또 선배로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래도 뼛속깊이 남은 결핍의 기억은 아직도 가끔 나를 아프고 슬프게 한다.



결정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했던 다소 큰 결정들은 극강의 상황에서 살기 위한 몸짓 같은 거였다.



그래서 언제나 나에게 결정은 너무나도 쉬었다. 다행히 큰 결정의 길목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었다.



디테일한 정보를 알아보고 결정을 한다는 것은 사치다.



집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준비물을 확인하지도 않고 도망가듯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다 추위에 벌벌 떨며 며칠 잠을 못 이뤘던 날 룸메이트 친구와 드라이기를 껴안고 자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집에서 온열 제품을 보내주기 전에 아마도 더 많은 좌절을 느꼈을 것 같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도와준 또 하나의 은인이다.



서툰 결정들은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지만 나의 20, 30대를 차곡히 채워주었다.



Stop Dreaming Start Doing.png



서른이 될 때쯤 나에게 절대적인 결핍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토록 원하던 생활과 환경이 주어지고 작은 행복과 직업적 성취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내가 끔찍이도 싫어했던 곰팡이가 가득한 세면공간, 집 밖에 있어 무서웠던 화장실은 잊은 지 오래됐다. 심지어 화장실이 2개 있는 집에 살게 됐으니 얼마나 나아진 건지 놀랍다.



그동안 고생했다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행복함과 감사함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임이 틀림 없나 보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이 감정들이 낯설다.



인간이 이토록 지독한 적응의 동물인 걸까.



반대로 이토록 각인된 습관을 떨쳐버리기가 힘든 걸까.



결핍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용기가 같이 사라졌다. 사람들의 말이 거슬린다. 자존감이란 그렇게 나에게는 먼 일이었다.



출발.png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 아니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놓였다.



마흔에는 어떤 시작을 해야할까...



현재의 50대를 위기로 바라보는 사회를 다룬 콘텐츠들이 종종 보인다. 얼마 전 50대인 지인을 만나니 아직은 40대라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고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렇지만 너무 조그마해진 나를 만난다. 새로운 결정들을 앞둔 지금. 그렇게 결정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결핍을 찾아 나선다. 나를 극으로 밀어 넣고 항상 기한의 끝에 '에라 모르겠다.'를 시전한다.



가봐야 아는 게 길이고 뜻밖의 일들이 계속 펼쳐지는 게 인생이니 나쁜 습관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언제까지 모든 걸 운명에 맡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 나를 쫒던 결핍도 별로 없으니 결핍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아마도 결핍이란 이유로 내렸던 결정들에서 만난 선물 같은 행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다. 기다리면 오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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