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시작은 한 뇌과학자였다.
과학자는 철학을 부전공했던 사람이었다.
과학자는 사람의 감정을 8가지로 구분해냈다.
그리고 각 기억들이 감정에 해당하는 뇌의 8가지 위치에 저장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과학자는 곧 기억을 추적하는 방법을 알아냈는데,
기억의 바로 전의 과거의 순간을 재현해내고, 이를 미끼로 하여, 그 순간의 기억이 저장된 뇌의 장소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과학자는 오래된 신화에서 미궁을 탈출하는데 도움을 줬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에서 이름을 따와, 그 방법을 ‘아리아시스(Ariasis)', 그 원리를 ’아리아드네시스(Ariadnesis)'라고 이름 붙였다.
과학자는 세계 곳곳에 ’아리아디움(Ariadium)'이라고 불리는 대리점들을 냈고, 많은 사람들이 잊혀져가는 기억을 다시금 발견하기 위해 이 곳을 방문해서 ‘아리아드네움(Ariadneum)’이라고 불리는 기억 기계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기억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 대상들이었다.
한 늙은 남자는 어린 시절 보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찾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 눈 앞에서 만난 것처럼 이제는 뚜렷해요.
그 때의 엄마와 아빠가 이젠 그려져요.”
그의 눈은 한층 맑아져있었다.
한 여자는 어린 시절 헤어졌던 친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 기억나요, 여름날의 놀이동산이었어요.
저는 옆에 있던 노점상의 맛있는 아이스크림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 이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나는 수많은 바지와 옷들 가운데서 엄마를 찾을 수 없었죠.”
그녀는 생생한 그 모습을 바탕으로, 친엄마를 찾으러 가게를 나섰다.
누군가는 오래된 자신의 흔적을 찾기로 했다.
“제가 그 일기장을 캐리어에 넣어두었었군요, 이제 기억나요.
분명 잘 보관한다고 두었는데, 어디에 넣었는지를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한 여자는 자신의 첫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른 누군가는 아침에 도저히 찾지 못한 리모컨을 기억해낸 사람도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 기술을 그들의 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범죄 현장에서는 한 사람의 목격자만 있다면 모든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피해자의 기억을 찾아내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가 죽거나 실종된 상태라면, 목격자의 기억을 읽어들여 가해 시점과 사건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기술이 등장한 이후 1년 동안의 범죄건수는 크게 감소했다.
사람들은 이제 무궁무진한 엔터테인먼트로 가득한 자신만의 기억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추억은 그 무엇보다 재미있고 짜릿하고 기쁜 것이었다.
과학자는 말했다.
"세계의 마지막 사각지대였던 인간의 뇌는 이제 활짝 열렸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말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합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늘 뚜렷하지 않고, 때로는 왜곡되거나 잊혀져버리기도 합니다.
‘기억’이라는 보물은 많은 이들에게 불확실성과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 재단을 통해,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 잊혀져가는 기억을 다시금 손에 넣는 이야기를 그려보려 합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기억을 다시 꺼내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기억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과 마주하게 될까요?
혹은 기억을 통해 얻게 된 정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는 고대 신화에서 착안한 이 이야기는, 우리의 머릿속 미궁을 풀어나가는 새로운 여정을 제시합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우리의 ‘나’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기억이란 때론 기쁨을, 때론 슬픔을 가져다줍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이 마주하게 될 다양한 감정의 향연을, 여러분도 함께 즐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