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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Nov 12. 2021

봄날은 간다

당신을 그리는 계절


   -가만히 있어보라니까, 할머니도 참


5월의 어느 날이었다. 바람도 좋았고. 흩날리는 송진 가루마저도, 뽀얀 분이 내리는 것처럼 예뻤던 날.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방글방글 웃으시는 통에, 앞머리가 이리 빼뚤 저리 빼뚤이었던가.

할머니의 곱슬 머리를 다듬어 드리기로 한 날이었다.

나이가 드니 미용실 가기가 괜히 부끄럽단 할머니를 위해,

전공책이 아닌 주방 가위를 들고 서걱서걱.

거울을 보며 둘이 한참을 낄낄댔다.


   -봄이구나 봄.


먼 데를 가만가만 보더니,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셨다.

마루에 걸터앉아 발끝을 까딱까딱 흔들며.

할머니 발엔 항상 희고 코가 뾰족한 버선이 신겨 있었다.  

마치 날 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봄날은 간다. 할머니가 약주를 드시는 날엔

항상 흥얼거렸던 노래.

노래 가락을 따라 흰 버선코도 까딱까딱.


   -뭐야, 머리 다듬어 달라더니 약주 드셨어? 갑자기 노래를 하고 그런대


그땐 몰랐다.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약주 때문도 아니고, 봄이라서도 아니고, 그냥

그냥 그리워서였다는 걸.





   -뭐해?

   -응? 아, 송진가루 날아다니는 거 보느라구.

   -차에 다 들어오겠다. 얼른 창 닫아. 알러지 있잖아.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송진가루가 닿으면 두드러기가 났다.


   -어릴 때는 없었는데. 갑자기 왜 생겼나 몰라.

   -어릴 땐 건강했나 보지 뭐.


실없이 너는 웃어 보인다. 나도 널 따라 실없이 웃는다.

그리고 조용히 창문을 올린다.

차창 밖으로 날리는 송진가루가 그날을 떠올리게 한다.


억세지만 부드러웠던 할머니의 머리칼, 날리던 송진가루

그리고 아련하게 웽웽 울려오던 노랫소리

입술을 모아, 조용하고 낮게 그 소리를 따라 불러 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창 밖에 흩날리는 송진가루가,

그 너머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이, 가득 고인 물에 잠긴다.

그리울 땐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목이 메면, 온 세상이 뽀얗게 번져오면,

그럼 번진 눈으로 가만가만 하늘을 본다.


이렇게 또 다른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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