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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Feb 25. 2022

엄마와 시

시 쓰는 50대 청춘


지난 달, 엄마는 정식 시인이 되셨다. 오래도록 품어온 꿈이었다는 걸 잘 알기에 몇 배로 기뻤다. 가족 톡에는 폭죽을 터트리는 이모티콘이 쏟아졌고, 전화로도 함께 한참을 기뻐했다.


엄마가 되면서, 받는 것보다 주는 데 익숙했던 당신은 쏟아지는 축하 세례에 수줍어하셨다. 사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시인이었다. 어딘가에 기고하거나 등단하지 않았을 뿐, 오래도록 글을 배우고 쓰셨다.


엄마의 시는 대체로 맑고 슬펐다. 외로움이 느껴지는 시도 있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글들을 쓰는 걸까 궁금했다.   물어봤는데,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엄마 안에 한참을 고여 있던 것들이 쏟아지는 날이 있어. 엄마는 그런 날에 글을 써.”

정말이지 시인이었다.


엄마의 시를 처음 읽은 건 중학생 때였다. 책장에 처음 본 종이 파일이 꽂혀 있었는데, 호기심이 한창일 나이라(?) 꺼내서 읽어 봤었다. 누가 봐도 시처럼 생긴 형식의 글이었다. 제목과 내용이 가운데 정렬되어 있고 여러 개의 짧은 도막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목과 내용 중간에 쓰인 엄마의 이름이 낯설었다. 어떤 시인분의 문하생으로 있던 시절에 썼던 글이라고 했다. 엄마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이미 시인이네라고 했었다.


내 시는 주로 초등학생 때 쓰였다. 백일장에서 상도 몇 번 받았다는데, 이건 다 게으름이 운 좋게 발현되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시는 주로 일기장에 담겨 있었다. 이 말인즉슨, 짧고 굵게 일기를 끝낼 수 있어서 시를 썼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짧은 문장들을 모으고, 가운데 정렬하면 줄이 쫙쫙 채워져서 좋았다. 게다가 시처럼 생긴 글을 쓰면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았다. 시를 안 쓸 이유가 없었다. 한없이 가벼운 이유가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중학생 때 우연히 마주친 엄마의 시는 묵직했다. ‘외로워’, ‘슬퍼’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는데, 읽는 내내 외롭고 슬펐다. 나는 그 후로 시를 안 썼던 것도 같다. 중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일기를 내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한없이 가벼운 이유로 쓰인 내 글이 부끄러워 서였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의 이유든 나는 쓰는 쪽보다 읽는 쪽의 사람이 되어갔다. 엄마의 시는 좋은 읽을거리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엄마의 시가 잠깐 멈췄던 때가 있다. 대학원 공부도 멈추고 시 쓰기도 멈춘 엄마는, 메말라 보였다. 몇 번 이유를 물었지만 그냥 쓰고 싶지 않다는 게 주된 대답이었다.


엄마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작년에 이사한 이후였다. 집을 옮기고 마음이 안정되서였는지, 혹은 일이 안정되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어떤 안정감이 엄마로 하여금 펜을 다시 잡게 만든 듯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마냥 보기 좋았다.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글을 쓰는 엄마는 20년도 더 젊어 보였다.


나이 50 한참 넘어 등단이라니, 너무 늦은 것 같다며 엄마는 부끄러워했고,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앞으로 50년은 더 쓸 텐데 이보다 더 젊은 때가 어딨는가, 하하!”

이런 긍정왕 아빠가 있기에, 엄마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할 때도 그랬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그런데 앞으론 시 쓰는 엄마를 떠올리며, 그리고 아빠의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낼 것이다. 나이에 겁먹지 않고 도전하는 삶이 계속되길 바라본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은 오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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