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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Dec 10. 2021

아빠의 전축과 엄마의 전자레인지

고물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정리를 하다 보면 있는  몰랐던 물건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떡하니 보이는  있지만 쓰지 않는 물건도  된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린다는 점에선 어느 쪽이든 쉽지 않지만, 때론 후자가  어렵기도 하다. 아빠의 오래된 전축이 그랬다.


녀석은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데, 군데군데 버튼이 사라져서 이빨 빠진 늙은 악어를 보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전축을 작동한 게 최소 10년 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소리가 날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부모님 댁 짐 정리를 하면서, 몸집 큰 전축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쓰지도 않고 작동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거 그냥 버리자는 나, 그리고 그냥 두자는 아빠. 팽팽한 며칠이 흘렀다. 그러다 어제 힘겹게 입을 떼셨다.


“아빠 안 볼 때 버려주라.”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버리는 걸 볼 수 없을만큼 아빠에게 큰 의미였다니.

일단 알겠다고 하고도 마음이 괜히 싱숭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찍은 사진엔 전축이 조금씩이라도 걸려서 찍혀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나의 과거에도 한 자리를 차지한 녀석이었다.


엄마의 전자레인지도 그랬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였다는 오래된 금성 전자레인지는 집을 여럿 바꾸는 동안 계속 함께였다. 올해 새 집으로 오기 직전까지니까 최소 31년 이상, 즉 엄청 오래 엄마 곁을 지켰다.



왜일까를 가만히 생각해봤다.

어쩌면 아빠는 ‘전축 보면, 음악을 즐겼던 30대가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금성 전자레인지 돌릴 때마다 예뻤던 20 새댁이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다.


오랜 물건들은 젊었던 엄마 아빠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품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들을 버리면,

젊은 시절의 모습도 같이 잃는 것 같아서

그래서 버리지 못했는가 싶어, 괜히 마음 한 쪽이 짠했다.


아무래도 이 빠진 오랜 전축은 조금 더 우리와 함께할 것 같다. 아빠 스스로 보내줄 수 있을 때까진 말이다.

그때까지는 세월에 쌓인 먼지나 잘 닦아 줘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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