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어떤 답이 되었건 각자가 선택할 필요는 있다.
코로나와 팬데믹
“‘언컨택트’는 비접촉, 비대면, 즉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건 접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과 접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언컨택트’이다.”
독한 감기정도로 여겨졌던 코로나19는 팬데믹 현상이라 일컬어질 만큼 세계적인 전염병이 되어버렸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버렸고, 식료품보다 품귀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연일 백신과 관련된 바이오산업 관련주는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고, 사회적 거리 두기는 전 세계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보편적 예절이 되어버렸다. 코로나는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코로나의 확진은 과연 누구의 잘못으로 볼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를 방관한 중국 정부인가? 아니면 무분별한 전도와 예배를 강행하는 종교 탓인가? 사회적 거리 두기 권고를 무시한 이들의 잘못일까? 더 큰 범주에서 본다면 도시화, 세계화, 기후변화라고 구분 지울 수 있고, 한단어로 표현한다면 ‘문명화’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은 문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인간의 자연 침범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 위기는 많은 사람에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개인은 어떻게 행동을 바꾸고 사회는 어떻게 재조직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현상
코로나는 우리의 환경뿐만 아니라 사고와 가치체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혁명으로 따진다면 역대급 블록버스터 수준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간의 역사 속에서 코로나만큼 세계의 단합을 이끌어 냈던 것이 있을까? 코로나는 중국과 관련되었기도 하고 그 가공할만한 폭발력은 가히 중국의 5대 발명품의 범주에 넣어도 될 듯하다. 코로나는 우리가 알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던 구조적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꺼내 놓았고 코로나는 이미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와 버렸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법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자 하는 문명의 욕구를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인류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
신뢰할 수 있거나 공인된 관계라면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라면 감염과 동선 공개에 대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개인의 자유권을 우선시하는 서구에서는 정부의 통제정책에 반발했고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QR코드를 비롯한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하여 코로나 조기종식을 선언하기도 했다.
자유와 통제애 대한 활발한 논의 속에서 한국은 다른 국가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상당수의 국민들이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적 생존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국은 코로나가 크게 번져갈 때마다 정보공개와 신속한 대처로 한국에서도 자유와 통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갔고, 우리나라는 예방적 제재보다는 권고를 우선시했다. 위의 두 집단과 구별되는 것은 많은 국민들이,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적 생존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국은 코로나가 크게 번져갈 때마다 정보공개와 신속한 대처로 K방역이라는 이례적인 기준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창궐하는 이유는 도시화에 따른 인구밀집도와 그에 따른 소비문화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현대 문명의 기준으로, 많은 일자리와 교육과 주거 등의 접근성이 용이하다. 그리고 그 이외에 많은 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도시로의 유입은 근대 이후로 더욱 가속화 되어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더욱 확산되었고 면대면 영역들은 비대면 쪽으로 방향이 이동되고 있다.
'언컨택트'로 인한 직업의 전망
“원격근무와 재택근무는 중요한 화두였다. 미래의 업무 방식이 이런 방향으로 간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실행은 달랐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그것을 경험하기 전까진 큰 문제가 없는 한 기존 방식이자 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서로 마주보며 회의하고 치열하게 일하고, 야근하고, 회식하며 친밀하게 어울려 일하는 문화에 일하는 기성세대의 조직 문화에선 재택근무를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봤다. 코로나 이전에 재택근무를 임시적으로 시도했던 기업이 있었으나 코로나는 한국 기업뿐 아니라 재택근무의 필요성을 부각시켰고, 화상회의를 비롯한 비대면에서의 협업을 도와주는 IT 솔루션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켰다.”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 발달에 의해 집에서 있을 수 있게 되면 가족의 유대가 강화되며 통신의 발달에 의해 통근의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주변 상권도 살아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 핵가족 이외의 다른 가족 형태를 생각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택근무에 관한 평가는 직업군마다 호불호가 갈렸다. IT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매출이 많이 늘었고, 정신과 의사는 고립으로 인한 불안으로 환자가 더 늘었다고 했다. 그리고 영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던 강사는 학생들의 피드백이 없어 아쉽다는 말을 했다. 대개 남성보다 여성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재택근무가 근무를 장점이 많다고 하면서도 집이 집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직업군에서는 화상회의로 업무 진행을 하는 것이 답답했다고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특히 직업과 사생활이 구분되지 않아서 불편했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사이렌 오더서비스를 시작했다. 매장 반경 2km 이내에서 스타벅스 앱으로 주문 결제하면 실시간으로 메뉴가 준비되는 상황도 알려 주고, 이를 확인하며 매장에 찾아가 커피를 받으면 된다,’ 아마존 고라는 매장에서는 고객이 매장 입구에서 자신의 스마트폰 앱을 스캔한 후 입장하는데, 갖고 나오는 물건을 센서가 자동으로 인식하고 앱에서 결제까지 해준다.
언컨택트 기간 동안 배달앱과 택배서비스 때문에 생활하는 데 불편하다는 점은 없었다고 했다. 앱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의 취향에 관한 데이터가 쌓일 것이고 인공지능은 그것을 추출하여 휴대폰을 사용할 때마다 필요한 정보를 가르쳐줄 것이다. 아마도 인공지능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에 관해 더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점차 선택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하게 될 것이고, 때로는 나로 위한 위로의 말을 심심찮게 건네받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다면 구글에서 ‘광고개인최적화’에 들어가면 된다.
디지털 디바이드
“언컨택트로 인한 소외와 차별을 일컫는 언컨택트 디바이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되었다. 햄버거를 하나 먹으로 가도 사람이 아닌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 앱으로 다 처리하고, 주차장에선 더 이상 사람에게 주차요금 계산하는 걸 보기 힘들어졌고, 심지어 현금 안 받고 카드만 받는 주차장도 많다. 키오스크 사용이 서툴거나, 스마트폰이 없거나 혹은 있어도 서툴거나, 카드나 디지털 계좌가 없는 사람들은 햄버거 하나 사 먹기도 어렵고, 주차장도 이용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람에게 직접 주문하거나 계산하지 않아도 되어 편리하다고 여겼던 사람들로선, 편리 뒤에 숨겨진 소외된 이들의 불편을 생각해보지 못한다.”
경제력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술수용여부와 상관없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군들은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문제는 노령층 인구가 많은 한국에 언컨택트 디바이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노인의 자녀들이 도와줄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스웨덴에서는 언컨택트 기술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현금을 취급하는 은행점포나 ATM기계를 늘렸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전면적으로 QR코드를 도입하였고, 재래시장뿐만이 아니라 걸인까지도 QR코드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우리나라에서도 도서관과 복지센터에서 노령층을 위한 컴퓨터사용법과 스마트 기기 강좌를 열고 있다. 아주 간명하게 설명하는 책자가 교재로 사용되고 있고, 강사들도 이들을 위해 최대한 배려를 하며 강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맞춤형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교육을 따라가는 것을 힘겨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전에 살던 집 근처에는 방송통신대학에는 노령층을 특성화한 인문학과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1학년 커리큘럼으로 인터넷과 스마트기기 이용, 레포트 쓰는 것을 가르쳐주는 강좌가 있었다. 강의는 영상으로 진행되지만,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선배들이 강의를 따라오지 못하는 후배들을 짝을 삼아 개별적으로 가르치는 멘토링 동아리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줌’이란 화상회의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멘토링 서비스를 통해 노령충에게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결혼이민자들 가정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처럼 전 국민에게 디지털화를 강제하는 방식은 비인격적인 면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국가답게 구성원들의 특성과 생각을 수용하여 앞으로 전개될 스마트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양극화 문제
“언컨택트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끼리끼리다. 검증되고 안전한 사람이자 서로 비슷한 수준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 간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강화되는 것이다. 그동안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끼리끼리가 이뤄져 왔다, 부자들 중심으로 끼리끼리가 이뤄져왔다. 전자가 소위 말하는 살롱 문화, 힙스터 문화를 만들었다면, 후자는 상류층의 프라이빗 VIP 문화를 만들었다. ”
문명시대라는 것 자체가 계급을 전제로 차이를 구별하며 발전해온 측면이 있으며, 사회적 양극화는 예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오히려 코로나를 통해 사회적 양극화가 완화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좋은 차를 타고, 명품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것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위한 이유가 큰데, 일단 사람들이 전염병 때문에 밖에 잘 나가지 않으며, 설사 나가더라도 마스크를 하고 다니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로 외출하기 편해졌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온라인 교육이 보편화되면 교육에 대한 비용이 대폭 줄고, 명문대 졸업장에 부여하는 의미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구글과 애플과 같은 IT대기업 직원들은 고졸 출신이 많다.
IT기업들은 오픈소스 코드를 공개하고 있고, 그러한 것을 활용하는 방법들은 유튜브에서 학습이 가능하다. 만약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학생이라면 학벌과 연령 국적과 상관없이 언컨택트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인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활용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인문학’이다.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같은 IT천재들은 인문학으로 쌓은 지식의 토대 위에 기술을 접목시킨 사람들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게임, 영화, 예술 등과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람들이 앞으로도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인문학은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학문이다. 즉 상상력을 학습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개별적인 지식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또한 윤리와 도덕적인 면도 강조한다.
동선 공개와 사생활 노출이 일반화되고 있는 시대에서 이러한 인문학의 특성들은 자기관리 측면에서도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는 윤리적 소비가 트렌드가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상상력도 부족하다.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은 한계점에 부딪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가치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를 대처해왔던 경험들은 경직되어있던 한국 사회에 유연성과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요즈음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커다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코로나 확산에 취약하며, 비대면 재택근무가 더 확대된다면 회사들은 굳이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을 필요성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의 자산가치는 코로나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지방에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고,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인구밀도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을 해야한다.
앞으로는 ‘욜로’족보다는 ‘홀로’족이 대세가 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로 각국과 항공사의 방역조치는 강화될 것이고, 따라서 여행비용이 예전보다 증가하게 되어 더 이상의 특가는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대신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안적 산업들이 발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보편화되면 굳이 해외에 가지 않더라도 세계여행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편이 막혀버린 시점에서 가이드가 이용자를 대신하여 여행하고, 영상을 전송하는 서비스가 각광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불필요한 대면자리를 피해 자신의 세상 속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들은 더욱더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누군가는 다양해진 사회 관계망 속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좋아요’와 ‘구독’만 누르며 타인의 세계 속에 종속되에 살게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의 철학자 마우리오 페아리스는 “소설 미디어는 공산주의의 궁극적인 승리다. 왜냐하면 만인이 민중의 노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민중의 노동이란 ‘클릭수’, ‘조회수’, ‘좋아요’에 몰두하는 세대들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언컨택트 기술
언컨택트 세상에서는 어쩌면 대면사회보다 투명성과 진정성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블록체인’같은 기술은 거래하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제3자들에게도 장부가 투명하게 공유되므로 신뢰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생체이식 기능이 스마트폰 기능에 적용되고 있는데 지문, 홍채, 정맥 등 개인의 독특한 생체정보를 추출한 데이터로 인증하는 방식이다.
중국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이 상용화되었다. 안면인식 드론이 날아다니며 마스크 미착용자에 경고 방송을 하고, 스마트헬멧은 안면을 인식하고 개인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마스크를 쓴 사람의 신원까지도 인식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두바이에서는 O-R3이라는 도심순찰로봇이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며 수상한 사람을 인식하면 범죄자를 인식하고 중앙서버에 알린다. 그리고 한국은 일부 은행 자동화기기에서 손바닥 정맥 인식을 입출금이 가능하며 18년 1월 부터 김포-제주 노선에서 손바닥 정맥과 지문인식을 통해 편리하게 탑승 수속이 가능하게 되었다.
코로나는 각국의 입국절차에 많은 변화를 야기왔다. 한국에서는 검역 절차를 거친 후 앱을 깔고 유증상 자가 아니라면 한국인과 장기체류외국인은 자가격리, 단기외국인은 시설격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항체를 보유하고 있거나 음성이라는 증명서가 있으면 의무격리기간을 축소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항체검사로 면역여권 발급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항체의 지속기간에 대한 의문이 있고, 검사를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와, 입국에 유리하도록 항체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병에 걸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의료기록과 동선 추적 등에 관한 개인정보 침해문제이다.
언컨택트 시대의 주체성이란
사람들은 자신과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으므로 존 롤스가 주장했던 ‘무지의 베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언컨택트 사회에서 남긴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를 지배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그것 때문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언컨택트 시대에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회는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우리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며, 그것을 학습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학습이란 연습인 경험의 결과로 일어나는 행동의 지속적인 변화를 뜻한다. 반면 학문은 학자들이 연구 활동을 한 결과를 축적해 놓은 지식체계를 통하여 탐구하는 방법을 말한다. 짧게 말하면 학습은 비판의 과정 없이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이고 학문은 지식 속에서 생겨나는 것에 의문이나 호기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식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틀이다. 그러한 틀을 통하여 나만의 시각으로 삶의 과정들을 통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언젠가는 누군가의 지식이 될 것이다. 지식과 지혜는 그렇게 맞물려져 돌아가는 창조와 재생산의 영역이다. 지혜로운 자는 언컨택트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가상이건 그것이 실제이건 구애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더 큰 기회와 가능성이 부여될 것이다. 반면 그러한 과정에 익숙해질 수 없다면 유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언컨택트는 컨택하기 위한 대안일 뿐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고 언제나 타자와 연결되고자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상적인 관계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선도하는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항상 인간에게는 스스로 풀어야하는 숙제들이 앞에 놓여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시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었고, 앞으로도 인간은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많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해왔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교훈은 항상 평범하게 여겨왔던 일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시절이 행복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잠식하지는 않았고, 아직까지는 반복해온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라도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야한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가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