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하면 시간은 자기 앞에 벌어지는 모든 것을 흘려보내어 사악한 것도 선량하게, 선량한 것도 사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분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한 몸에 선과 악의 머리를 가진 ‘아브락사스’라는 신을 설명한다. 그 신의 속성을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인간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어둠의 속성까지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일, 즉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키아벨리는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시대에, 인간 본성의 이면을 직시했던 사상가였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분열된 도시국가로 나뉘어있었다. 그들은 법과 제도보다 교권을 우위에 두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군대도 보유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러나 분열된 도시국가들은 점차적으로 외국이 침입을 받게 되면서, 존속을 위협받게 되었고 막대한 비용을 요구받았다.
그러한 국가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였던 메디치에게 헌정한 책이 바로 그 유명한 ‘군주론’이다.
이 책이 유명한 것은 필요하다면 사악한 수단도 쓸 수 있다는 내용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론자였지만, 그의 주장은 마치 군주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들린다.
체사레 보르자
당시 마키아벨리는 제2서기관의 직분이었고, 교황의 사생아로 실권자였던 체사레 보르자를 만난 후 국난을 타개할 이상적인 모델로서 그를 주목한다.
체사레는 신의를 중시하면서도 경우에 따라 그것을 어길 줄 알았고, 냉정하지만 온화한 측면도 있었다. 또한 교권을 등에 업고, 당시의 열강들과 대등하게 외교를 할 줄 도 알았다. 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과감한 결단을 토대로 한 신속한 추진력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이라는 정치적 명분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존경하기도 했다. 이는 병으로 실각한 체사레를 위해 끝가지 싸웠던 로마냐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자로서 인간의 악함도 경우에 따라 필요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필요하다는 것은 최후의 수단일 때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를 성악론자로만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브락사스처럼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군주제는 목적이 아니라 로마시대의 공화 정체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사실은 또 다른 저서인 ‘로마사 논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국가 정체를 고집한 것이 아니라, 고대의 기록과 현재의 정세 그리고 미래의 예상까지 고려하였다.
군주론의 해석
‘군주론’은 군주제 확립이 아니라, 시대에 적합한 정치체계를 주장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즉 군주라고 해서 그 지위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도 군주가 될 수 있으며 공화국일지라도 때로는 독재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서 인민이란 말은 북한에서 먼저 사용했기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지만, 사실 대의제인 nation주권의 관념적 추상적 국민이 아니라 주권의 보유자와 행사자가 일치하는 유권적 시민의 총체로서 직접민주제의 주권자를 말한다.
세계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세계 간에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무너진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시대가 창조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조화를 중시한 다른 사상가들과는 달리, 갈등을 정치의 필요적 속성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운명은 여성의 속성을 가지므로, 자유로운 인간은 그녀를 정복할 수 있는 ‘비루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비루투는 미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라틴어 어원에 따라 주로 ‘남성적인 능력’ 또는 ‘탁월함’ 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인간은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중세를 지배하고 있었던 기독교 정신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이는 그가 “약한 자의 천국에 가기보다 차라리 지옥을 선택하겠다.”라고 말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은 항상 충돌하게 마련이며, 역사를 통해서 미루어볼 때 성군이 명군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성군이라 일컬을 수 있는 세종과 정조도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중요시 여겼다는 사실을 역사적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주체
마키아벨리의 어조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하려면 할 수도 있다.’는 통사 구조가 자주 발견된다.
어떤 결정이 옳은 것인지 그것은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직 역사만이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가치들의 충돌 속에서 변해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 정체만 갖추었다고 해서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이상향은 주체적인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화국이었다. 비록 그는 이상을 뜻대로 실현하지 못했지만, 그의 이론은 더욱 복잡해진 현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운명에 지배당할 것인가?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 역시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 세대에서 완전한 역사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 어떤 정보든지 입수할 수 있고 어떤 문제든지 해결 가능하므로, 전통적인 역사를 마감할 수 있고 전진의 도정에서 우리가 도달한 지점을 보여줄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