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이후 인간은 시대가 바뀌어도 소유에 집착하는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경향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도 그러할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소유의 영역을 크게 확장하도록 만들었고 이제는 질병과 죽음까지도 정복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죽음은 원래 소멸이라는 단편적인 의미를 넘어 종말과 생성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만물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을 대체하며, 질료는 형상으로, 형상은 질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죽음을 예감하거나 다른 이의 죽음을 보게 될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성찰의 과정은 죽음의 이미지에 여러 가지 해석들을 가능하게 하고,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00세 인생을 넘어 ‘길가메시’가 추구하였던 영생이 실현된다면 죽음은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 과연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인가? 소유의 영역이 확장된다면 과연 행복이 증대될까?
소유와 존재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실존 양식을 소유와 존재로 분류하였다. 소유는 ‘Have’로 존재는 ‘As it is’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소유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꺾어버린다. 그러나 그렇게 소유했을 때, 생기를 잃은 꽃은 한낱 물건에 불과할 뿐이다. 반면 존재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꽃을 있는 그대로 둔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꽃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소유의 관점에서는 사랑을 ‘명사’로 보고, 사랑을 가진다고 표현한다. 가지려는 사랑은 대체물을 항상 필요로 하고, 그것이 결핍될 때, 지속성이 떨어지게 된다. 반면 존재의 관점에서는 사랑은 하는 것, ‘동사’이며 그것의 대상은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트랜스 휴머니즘
“당신은 유전자 검사, 혈액검사 또는 자기 공명 영상 촬영을 한다. 그러면 알고리즘이 대규모 통계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검사 결과를 알려줄 것이고 당신은 그 알고리즘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이다. "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 이브 헤롤드>
죽음과 질병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되면서 사람들의 행복과 가치관에 대한 기준도 그에 따라 변하고 있다. 거대 기업들은 노화의 질병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도덕에 관한 것까지도 빅 데이터로 수렴하여 정량화하려 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경계하기보다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며, 정보수집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
만약 역사가 트랜스 휴머니즘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단계의 기술적 생리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스마트 기기는 항상 사물인터넷으로 우리의 건강을 체크해주고 노화된 신체와 장기는 인공물로 교체가 가능해질 것이다. 더 나아가 ‘뉴럴 링크’는 신체를 넘어 정신까지도 기계에 이식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앞으로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인공지능에게 중요한 결정을 맡기는 것이 일반화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불완전성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메시아적 비전을 포기하고 우리의 생존 문제를 우리의 목적에 맞게 변경시킴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인간의 대표적인 특질은 바로 ‘불완전성’이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을 기계에 가깝도록 개량하려 하고, 기계에는 지능과 감정을 부여하여 불완전한 인간에 가깝게 만들려고 한다.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수명이 연장되면, 연장된 만큼의 삶을 위해 일을 더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는 생명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초석이 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기존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나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어떻게 얼마나 만들어질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구절벽 현상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며, 그것은 사람의 교육과 생활의 질적 상승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견해는 인구의 양적 증가로 지구의 수용 능력은 이미 한계를 초과했기 때문에, 세계의 존속을 위해서는 성장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공통되는 의견은 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자원을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분배할 수 있으므로 사람의 가치가 귀해지고, 삶의 질이 그만큼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는 인류의 질적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데이터 알고리즘
“우리의 사회는 유별나게 불행한 사람들의 사회이다. 고독하고, 불안하고, 억울하고, 파괴적이며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들, 그렇게 아끼려고 애쓰는 시간을 한편에서 낭비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필요가 점점 약해져 갈 것이다. 그저 자신의 경험을 기계 속에 기록하여 거대한 데이터에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얼마나 자신을 잘 알릴 수 있는가에 집착하며, 심지어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연기하는 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싶어 하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가상현실은 실제 하는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며, 그 자신을 데이터로써 아낌없이 제공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람들이 데이터의 흐름 속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들이 데이터의 일부가 되었을 때 자신보다 더 큰 어떤 것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알고리즘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것이며 아마도 그것은 아마도 가장 최적의 방법을 도출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컴퓨터의 성능을 높이면 높일수록 사건들은 더 제멋대로, 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측정이 명확하고 정형화된 기계와 달리 인간에게는 정량화할 수 없는 유기체의 속성이 있고, 인간은 항상 존재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 의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것은 아주 유혹적이다. 그 이유는 소유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습성과 운명이 결정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써 주어진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을 철학에서는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스마트 폰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선택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수고를 줄이기 위해 이전보다 기계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스마트 기기를 신뢰하는 만큼 기계는 주인인 우리에게 충실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만든 제조업체에 수집한 정보를 매번 업데이트하여 제공한다.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편의성을 위해 기계를 이용하지만, 기계 또한 우리를 검색하고 이용한다. 기업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사업과 마케팅을 구상하고,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러한 편의 속에는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광고가 내포되어 있다. 광고는 성별과 성향을 가리지 않고 의식적인 영역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곳까지도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한 자극들이 쌓이게 되면 패턴이 만들어지고 어느 순간부터 유행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우리의 정신과 신체 속에 광고는 스며들어왔다.
유행이 지나가게 되면 그렇게 원했던 것들은 예전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허탈한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새로운 소비를 추구하며, 그러한 패턴은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미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특질을 부인하는 게 거짓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유의 증대에 따라 욕망도 비례하여 증가하게 되고, 그러한 추구가 과도할 때 의식은 욕망에 지배당하게 될 것이다.
욕망이 우리를 소유하게 될 때,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들, 즉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다. 반면에 데이터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은 한층 더 정교해질 것이다.
우리는 기술의 주인이 되기를 거절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소유와 존재의 관계
“존재는 나와 경험을 나누어 가짐으로써만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것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가 방출해내는 것에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 양식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축적한 것, 즉 토지, 명성, 사회적 지위, 지식, 자녀, 기억 등에 얽매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존재에 비중을 크게 두고, 소유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존재는 능동성을, 소유를 수동성을 수반하며 두 영역 모두 인간이라면 겪게 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가 우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인간은 존재가 전제될 때 소유할 수 있으며, 소유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는 존재 그 자체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유해야 하는 것들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것들은 존재 자체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계선에서 사람들은 갈등하게 되게 되므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선택의 길목에 서게 될 때 많은 이들은 소유하는 것에 비중을 크게 두는데, 그러한 양식에 대해서는 인식이 뚜렷하고 자신의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반면 존재의 양식은 사건을 겪게 되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며, 존재하는 자는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과거를 소유할 때 과거는 죽어 있는데 반해, 존재 양식은 ‘지금, 여기’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존재할 때 과거를 되살아나게 할 수도 있고 과거를 재창조할 수 있다. 그때 과거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리고 미래 또한 그것이 마치 지금 여기에 있는 것처럼 경험할 수 있다. 그는 이런 현상은 너무나도 완전하게 우리의 경험 속에서 예측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와 공항
“어느 경우에도 금방 기억할 수는 없다. 즉 우리는 주제를 다시 창조하여 그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되살리려한다.
<소유나, 존재냐, 에리히 프롬>
인천공항에서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코로나가 처음 창궐했을 때 대한민국의 우호국들조차 국경을 닫아버렸고, 우리 국민은 쫓기듯이 입국했다. 검역 쪽도 패닉 상태였지만, 출입국 역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천공항 출입국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 이외도 낯선 검역업무까지 떠맡게 되었고, 날마다 갱신되는 매뉴얼에 머리를 싸매고 적응해야만 했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인천공항의 상황을 보도했고 검역 당국은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반면 우리 직원들은 공항 구석에 흐릿한 영상으로만 잡혀 보일 뿐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공항 공사 직원인지 알았다가 특별검역절차가 생기면 우리를 검역직원으로 오인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당시에 확진자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던 검역 당국은 출입국의 차세대 시스템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출입국이 증상자 구분과 주소 확보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확진자 동선 추적이 이전보다 수월해진 것은 부처들 간의 긴밀한 협력에 있었다.
지금은 방역 시설과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있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고 공항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보균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지키기만 해도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에게 검문검색과 동선 추적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거기에 방역수칙이 하나 더 붙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태풍의 눈이 가장 안전한 이유는 태풍은 안쪽으로 갈수록 풍속이 증가하게 되지만 그 중심에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고유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인천공항도 외부에서 볼 때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우리가 긴장의 눈을 늦추지 않고,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다면, K방역과 함께 인천공항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속에서 가장 신뢰받는 공항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존재한다.
“생산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접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탄생시키며 다른 사람들이나 물건에도 생기를 불어넣는다.”
처음 방호복을 입고 유증상자 부스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된 날, 출입국 직원들은 방호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된 시점에서 그들은 머리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 맞을 채비를 했다.
다른 사무소에서는 어려운 기간 동안 수고한 직원들을 칭찬하는 글들이 내부망을 통해 하나씩 올라오고 있는데, 유독 인천 공항 직원들에 관해서는 그러한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허브로서 인천 공항의 지위와 역할에서 하는 일들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그 안에도 여러 가지의 삶들이 함께 숨을 쉬며 공존하고 있고 곳곳에 우리의 기억과 흔적들이 녹아들어 있다.
여전히 코로나는 그 맹위를 떨치고 있고, 기약 없는 날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잃어버린 봄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지금, 여기에서 함께 존재하며 그날을 기다릴 것이다.
『당신의 미소는 나를 웃게 하고, 나의 웃음 속에는 당신의 미소가 깃들어 있다. 모두가 항성이자 행성이기 때문에 서로를 비추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