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매력

#여행, #현대미술관, #커피, #이현구

by 비루투스

오래간만에 부산에 있는 집에 오게 되었다.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2박 3일 동안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방문 목적은 부모님 뵙는 것이고, 다음은 미술관에 가는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휴양지에서 맛있는 것 먹고, 리조트에서 휴식하는 개념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관람하거나 거리를 쏘다니고. 골목을 뒤지는 것이다. 그리고 장거리 여행보다는 거주지에서 지하철로 이동이 편리한 곳을 찾다 보니 미술관, 문화회관 같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일단 짐 싸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잠자리가 바뀔 때마다 잠을 못 자서, 내내 컨디션과 루틴이 깨져서 회복되기까지가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아예 안 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끌려갈 뿐이다.

우리 가족은 이런 내 성향을 알기 때문에 내가 부산에 내려오면 미술관이나 가까운 바닷가에 주로 간다. 나는 주로 현대미술을 관람한다. 일단 현대미술은 접근하기가 용이하고 특별한 지식보다는 작품을 마주할 때 다가오는 생각과 감각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전 미술을 감상할 때는 클래식을 듣지만, 현대미술일 때에는 재즈나 뉴에이지를 듣거나. 클래식 중에서도 쇤베르크의 곡을 듣곤 한다.


나는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되었을 때, 현대미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미술이라고 하면 그림밖에 몰랐던 나에게 현대미술은 새롭고도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은 나프탈렌으로 만든 작품이었는데, 전시 기간과 함께 사라지는 작품으로, 인생무상을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도슨트가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점괘 같은 것으로 만든 구조물이 있었는데. 주역처럼 진행방향에 따라 해석이 달라졌었다. 그 밖에도 사람 뼈로 다이아몬드를 만든 것도 있었고, 정말 여러 가지 소재와 해석으로 가득한 작품들이 많았었다. 나에게 현대미술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현대미술의 매력은 무엇이든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든지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술이라고 생각되는 것부터 시작하여, 시각, 촉각. 후각 같은 모든 감각들. 그리고 기쁨과 슬픔, 환희와 분노 같은 감정들. 특히 뒤샹처럼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서 충격을 주거나. 마그리트처럼 이질적인 이미지 사이에서 개념을 제시하는 등, 사물의 본질에 의문을 제시하는 작품들은 마주칠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다.


현대미술은 경계도 없고 범주도 다양하다. 이번에는 을숙도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가서 영상과 음악 그리고 레터링 기법을 사용하여 공감각적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대예술의 특징은 무엇이든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미술관에 방문할 때마다, 내부에 있는 커피숍에 항상 들린다. 이곳에서는 핸드드립 커피와 수제 에그타르트를 먹을 수 있다. 여기 커피숍의 특징은 커피숍 자체가 예술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두를 주문할 때 나오는 커피잔이 예쁘다. 커피잔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것 같다. 거기에 음악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이다. 물론 공감할만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다면 대화에서도 향기가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시끄럽고 산만해서 글쓰기에는 그리 좋은 곳이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영종도에 탁 트인 바다 뷰에 공간도 넓고 재즈음악이 울려 퍼지는 카페를 소개하려고 한다. 주로 야간근무 끝나고 글을 써야 할 때 방문하는 곳인데, 글이 어느 정도 써졌다고 생각되면, 해안가 산책을 하면서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온다.


1층 입구 쪽에 가니 바닥에 무언가 의미심장한 글 한 편이 적혀있었다. 처음엔 아무 감흥 없이 그냥 읽었는데,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는 커다란 모니터에 영상이 나오고 있었고. 그 밑에는 입구의 있던 글이 영상별로 10개의 문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는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이 비치되어 있었다. 자리 앞에 앉아서 헤드폰을 쓰고 가만히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영상은 음악과 함께 뒤섞이면서 현대사회와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대해 역설적이거나 반어적인 표현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마지막 작품은 자살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영상 속에 반복되는 문장과 함께 나타났던 신발 한 켤레가 잊히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꿈과 현실에 나타나 말없이 있다, 사라질 때 '안녕'이라 되뇐다."


예술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현실을 특유의 방식으로 고발한다.

2층에 가보니 요즘에 화제가 되고 있는 NFC작품, 추상화, 게슈탈트 구조가 반복되는 영상들이 있었다. 나는 글을 쓰다 보니까 개념미술에 좀 치우치는 성향이 있만, 그렇다고 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거나. 너무나 현학적인 것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공감할 수 있을만한 작품들을 만날 때 희열을 느낀다.


때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감각적으로 와닿는 경우가 있다.

이번엔 해운대 시립미술관에 대하여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곳은 접근성도 좋고, 관람 후 해운대로 놀러 가기도 좋 때문에 부산에 들를 사람들은 꼭 방문하시길 바란다. 이 장소는 서울만큼 유명한 작품들은 없지만, 시에서는 무명작가나 신진작가를 보조하고 시민들에게 미술을 좀 더 친숙하게 알리고자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나는 미술에 대해 거의 문외한에 가깝지만, 자주 미술관을 방문하고, 도슨트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식견을 높일 수 있었다. 지금은 미술 관련 전문서적도 간간히 읽고 있고, 현대미술 감상법에 대한 글을 적도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이현구'라는 독특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일단 이 작가의 작품을 보자마자 대한민국 사람답지 않은 풍부한 상상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입구 쪽에 미키마우스나 도널드 덕 같은 캐릭터의 뼈대가 매달려 있었는데 마치 자연사박물관에서 공룡 화석을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만화 캐릭터에도 생명의 흔적을 부여하다니, 놀랍다. 작가는 말에 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해부학을 배워 말의 특징들을 연구하고, 말의 습성과 걸음걸이를 익히기 위해 기구를 만들었다고 하다. 그것을 위해 마장마술을 배우는 영상은 웃겼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진지했다.


말의 눈은 540도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렌즈로 말의 눈을 만들고. 기구에 실제 말의 꼬리를 달고 난 후, 말처럼 걷다가 보니 말발굽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서 악보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 작가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밖에 인체의 장기를 통해 소우주를 표현하고, 앞으로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오면 관상까지도 필요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관상과 얼굴 구조도 재조합한 작가 특유의 유머는 신선했다.


현대예술은 위트와 유머로 현실을 비꼬아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종교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절대로 믿지 않는다. 오직 철학과 예술을 통해서만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사람이. 우리가 좋은 컨디션이나 정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 법이나 도덕 그리고 종교 같은 이념들은 나를 지지해 주고 지켜주는 것 같다. 그러나 힘들고 지칠 때, 때로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그러한 가치들은 짐이나 부담으로 다가오며, 힘을 주기는커녕 내가 죄인이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비난한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의지할 곳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예술 작품 속에서 나는 잔잔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예술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 간과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비록 너의 삶이 연약해 보일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삶 그 자체를 사랑하고 긍정하라고 말해주었다.


' 나'라는 존재는 내게 주어진 삶의 주인공이자 곧 예술의 주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의 삶을 더 이상 부러워하진 않는다.

그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과 이전의 기억들을 어떻게 엮고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내 앞에는 아직도 남은 이야기가 있고, 그 주인공은 바로 '나'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공백의 의미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