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분신'은 하나의 주체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하며,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주인공이 겪게 되는 불안과 혼란과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현실과 주인공이 인식하고 있는 환상에 대한 경계가 불분명해서 읽는 내내, 내용의 전개를 따라가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번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야만 했는데, 책을 한번 더 읽었을 때는 맥락이 어느 정도 파악된 상태라서 인지 몰라도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질감의문체가 이 소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급관리 골랴드낀은 높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정작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신분이 높거나 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틈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도덕적인 우월감에 기대어 심리적인 결핍을 보상받으려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자신보다보다 낮아 보인다고 생각되는 이들은 하대하며, 사치함으로 되먹지 못한 부를 과시하고. 나름의 지위와 위치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수가 없다. 모두가 소위, 골랴드낀을 무시하거나 피하게 되는데, 그는 아랑곳하지않고 자신을 정당화하며 현실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그런 그에게 아첨하는 무리뿐이다.골랴드낀은 소위, 세상을 왕따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랴드낀은 마음에 드는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초대받지 못한 모임에 억지로 들어가려다 문 앞에서 제지당하게 되고, 그녀의 눈앞에서 끌려나가게되는 혹독한 망신을 당한다. 골랴즈낀만의 고상했던 자존감이 바닥에 치닫게 되면서, 그는 자아분열의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음 날, 골랴드낀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직장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는 얼굴부터 시작하여 이름까지 같지만 주인공과 반대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골랴드낀은 자신의 그림자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골랴드낀보다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림자는 사사껀껀 골랴드낀의 심기를 거슬리겣하고 심지어 성과까지 가로채가며 상사에게 능력까지 인정받게 된다.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 골랴드낀은 그림자의 정체를 폭로하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 골랴드낀은 사람들 앞에서 폭주하게 되고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
골랴드낀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각기 다른 정체감을 지닌 인식이 존재하여 행동에 전적인 영향을 끼치는 해리성 정신장애의 증상을 보여준다. 골랴드낀은 자신의 완전무결함을 확신했고, 불완전한 모습을 부정하거나 못 본 체하며 스스로를 합리화시켜 왔다. 그러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자, 더 이상 콤플렉스를 합리화시킬 수 없게 된 골랴드낀의 고상한 인격은 무의식 속으로 숨어버리게 되고, 그동안 숨겨왔던 그림자가 표출되며 의식을 잠식하게 된 것이다.
푸코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상상적으로 찬양함으로써, 자기의 광기를 신기루처럼 생겨나게 한다고 했다. 그러한 거울은 실제의 것을 비추기는커녕 거울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자가 빠지는 자만의 꿈을 은밀히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어두운 부분인 그림자를 누르고 마치 그것이 없는 듯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격체처럼 행동하다 보면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을 소외된 채로 만드는 신경증적 해리상태에 머무르게 될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우리의 기질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이상적인 기준을 미리 세워놓고, 교육과 교정이라는 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주입해 왔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고, 사람들 또한 그에 따라 서로를 우월과 열등감으로 나누고 평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우월과 열등인자를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영역들은 그림자로서, 그것은 분석심리학에서는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말해지는 필수적 요소이기도 하다. 전체로서의 인간의 정신은 의식의 대자인 그림자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무의식으로부터 분열된 사람은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실체가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분열은 골랴드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부터 현대인의 고약한 질병이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더블'은 우울한 분위기와 음산한 음악을 더하여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고, 산업사회를 유지시키는 수단인 반복적인 노동과 숫자로만 인간의 가치를 평가되는 성과주의와 함께, 도구처럼 이용만 당하면서 기계 부속품처럼 대체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실적을 산출하기 위해 상사에게 압박을 당하며 기계처럼 일한다. 심지어 사적인 공간에서도 실적에 대한 강요는 은밀하게 계속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제임스는 골랴드낀과는 달리 사람들의 눈길에 아량곳하기보다는 눈치를 많이보고 굉장히 내성적인 모습으로 나오며,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에게 유령처럼 인식되는 사람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설정은 소설과 비슷하지만 홀어머니는 치매에 걸려있는 상태이고, 의사는 서비스에 대한 개선도 없이 가격만 올리고 있다. 심지어 종업원들도 그를 우습게 보고 그의 주문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감독은 주인공에게 스토커의 역할까지 부여하여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게 하고 있다. 극 중 제임스의 취미는 망원경으로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어느 날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는 제임스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이 뭔가 미심쩍은 생각에 잠기는 순간, 자신의 눈앞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경찰은 참고인조사를 위해 제임스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품긴다.
이러한 사건은 평소에 마음을 두고 있던 한나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그녀로부터부터 자살한 사람이 그녀의 방을 들여다보던 스토커였음을 알게 된다.
소설처럼 영화에서도 제임스의 분신이 직장이 나타나 주인공을 이용하고 궁지에 빠지게는 만드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분신에게 빼앗기고 심지어 협박까지 당하면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방을 들여다보다가 그림자의 바람기 때문에 한나가 자살을 시도하려 하자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게 되지만. 오히려 주인공은 인간말종 취급을 받게 되면서 분신에 대해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이제 그는 분신에게 이용당하고 굴복하기보다 당당하게 맞서기로 한다. 제임스는 그림자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리다가 아픔을 느끼게 되고, 자신은 분신과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는 분신을 벌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거꾸로 떨어지면서 얼마 전에 자신의 눈에 비쳤던 손 흔들던 남자가 바로, 그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의 소설은 약간 결이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정신분열에 관한 내용이라면 게이고의 소설은 클론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는데, 극 중에서 클론의 모체인 아키코가 했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30년이 지나 네가 자신의 앞날에 점차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 지금의 너와 똑같은 모습,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남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라! 내기를 걸어도 좋아. 너는 그 남자를 몹시 증오할 거다. 질투라고 해도 좋겠지. 만약 네게 그럴 만한 권력이 있다면 죽이는 방법도 생각할 거야!"
나는 그냥 나와 마주치는 네가 너무도 싫다.
자신과 비슷한 외모와 특성을 가진 사람을 낯선 곳에서 마주치게 되면 어떠한 감정이 들게 될까? 나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내 모습조차도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증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편한 존재로 여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