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감정

by 비루투스

소녀가 멀어져 간다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섰다

연기처럼 스쳐 지나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그녀

그 시절의 거리들
건물도, 거리의 폭도
변하지 않았지만

대기 속에 떠돌던 무엇이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붉은 벽돌 건물의 그림자가
길 위에 길게 늘어져 있다
누군가 막 떠난 자리처럼,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버린 걸까
아니면, 기억에 구멍이 나버린 걸까
그 사라진 것들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길모퉁이에 있는 재즈바,
낮은 조명이 흔들리고
문틈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창가에 앉은 남자 하나
외투 깃을 세운 채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그 음악이 귓가에 조용히 울린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낡은 색소폰의 선율이
담배 연기를 타고
어떤 장면들이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바깥 거리엔
낡은 전차가 지나간다
그녀는 창밖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그 시절의 거리들
그 사라진 것들
그녀의 흔적
그리고 나

모두가
그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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