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그후, #나쓰메 소세키, #비

by 비루투스


전혀 슬프지 않은데,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잠들 때마다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고독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떠나지 못했다.

문이 열리자, 비 냄새를 품은 밤공기가 들어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그저 하릴없이 걸었다.

비가 그친 정원에는 못 보던 꽃들이 있었고,
향기 속에서 어떤 감정들이 피어나는 듯했다.

밤하늘 높은 곳에 하얗고 둥근달이 떠있었고,
다른 무언가를, 나는 그곳에 그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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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선다. 대기의 흐름과 수증기의 응결로 이루어진 이 자연의 현상은, 어두운 하늘과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흙냄새와 젖은 공기를 동반하며 우리의 시각과 청각, 후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그 감각의 총합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환기시키며,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경을 굵은 빗소리로 씻어주기도 한다.


밤부터 내린 빗줄기
낮의 기억을 적시고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단순한 물방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 선호하는 비의 형태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한다. 잔잔한 이슬비는 잔향처럼 스며드는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고,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억눌린 감정의 폭발을 연상시킨다. 천둥을 동반한 폭우는 깊은 슬픔이나 분노를, 새벽녘의 안개비는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낸다.


고요한 집 안 가득히
너의 목소리가 들려


비는 본래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내릴 뿐이다. 하지만 음악은 이러한 비의 감정을 또 다른 언어로 번역해낸다. 엑스 재팬의 ‘Endless Rain’은 그 대표적인 예다. 도입부의 피아노 전주는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전율을 일으키고, “Endless rain, fall on my heart”라는 가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가 상처 입은 마음을 조용히 씻어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잠은 이미 달아났고
하늘은 아직 어둡네

그치질 않는 슬픈 노래여!


건즈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은 또 다른 방식으로 비를 노래한다. 이 곡에서 비는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상징한다. “And it's hard to hold a candle in the cold November rain”이라는 가사에서, 차가운 11월의 비 속에서 촛불을 지키기 어려운 것처럼, 사랑을 지키는 일 또한 쉽지 않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그저 기다릴 뿐
날이 어서 밝아오길


문학 속에서도 비는 자주 등장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에서는 비가 인물의 내면을 조용히 비춘다. “비는 다음 날까지 그치지 않았다. 다이스케는 축축한 툇마루에 서서 어두운 하늘빛을 바라보며 어젯밤의 계획을 다시 바꿨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다이스케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친구의 아내인 미치요를 향한 감정, 그리고 그 감정 앞에서의 망설임과 함께 비는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결심을 내리자, 신기하게도 비는 멈춘다.


푸른 하늘 아래, 그저 나는,
네가 웃는 걸 보고 싶었어


비는 언제나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빗방울은 감정의 파편들을 되튀게 만들고, 우리는 어느새 그 빗소리에 젖어들게 된다.
그때부터 비는 단순히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잊고 지냈던 기억들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젖은 마음에 우산을 씌워
백합 한 송이를 손에 쥐고
말 못 한 감정을 꽃에 담아

조심스레—
네 품에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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