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제국, #네그리와 하트
* 한 명의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책임이 주어지는 행위 중 하나이다. 1)
집단의 의사가 개개인의 독립성에 합법적으로 간섭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2)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란 단어가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보편적인 의미로써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그러한 가치들은 여전히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이기도 하다.
‘자유’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이고 ‘평등’은 신분·성별·재산·종족 등에 관계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는 모두 동등하다고 정의 내린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들은 어느 정도는 충족시킬 수는 있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경제적 불평등이나 특정 계층의 독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평등을 무조건적으로 추구하면 개인의 선택이나 경쟁의 자유가 제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두 가치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장치로서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지만, 현실 속에서의 개인은 타인을 고려하면서 자신에게 최선인 것을 판단하는 ‘도덕적 개인’이라기보다 자신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이기적 개인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충돌하게 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행해지는 국가의 ‘자의성’은 의도와 다르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며, 그러한 외부의 결정이 개인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고 평등은 신분·성별·재산·종족 등에 따라 동등하지 않다는 현실 속에서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혈통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더라도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개성이 각기 다른 것처럼, 자유와 평등에 공통되는 특질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유사하게 겹쳐지는 범위 내에서 구성요소들은 하나의 집합체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상의 반대자들을 상정해서 반대의 효과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들을 찾아내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류의 스승들이 이미 확립해 놓았던 기존의 수단들까지도 무시해 버렸다. 3)
고대 그리스 국가의 자유는 국가의 간섭 없이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삶을 누린다거나 개인적 이익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는 다른 민족의 지배나 누군가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을 논하고 공공정책 결정과정에 적극 참여할 때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는 개별구성원이 자신의 인간됨을 완성하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생산을 담당하는 노예계급이 있기에 향유 가능한 것이었고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었다. 그리스에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그저 노예가 아닌 상태를 의미했을 뿐 그 자체가 인간의 본성이라거나 도덕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플라톤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인 생각을 억견인 ‘독사’라 부르고 독사와 반대로 이성을 통해 얻은 객관적 지식을 ‘에피스테메’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이성 정도, 유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며 '독사' 속에서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평등이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영혼은 이성과 의지 그리고 욕망으로 이루어지며 국가는 이성의 정도에 따라 각각 통치자·수호자·생산자 계급으로 구분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각 계급이 지닌 이성· 의지·욕망이 지혜·용기·절제를 만들 때 ‘정의’가 생겨서 ‘이상 국가’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그가 볼 때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은 무지와 감정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고, 가장 큰 문제점은 평등이 불필요한 자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와 정의보다 개인적 이익과 쾌락을 추구했고, 권력자들은 이러한 개인들을 기만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도덕적 퇴보와 철학적 결핍은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켰고 이로 인해 발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뿐만 아니라 그리스 사회 전체에도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결국, 그리스의 민주정은 알렉산더라는 독재자에게 유린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살아있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 규범들이 그들의 행위를 규율해서, 그들이 그 규범들에 의거하서 실제로 그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살아있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4)
아우구스티스에게는 자유는 도덕적인 책임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에게 있어 의지의 자유는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며, 이성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모습을 질서 있는 것으로 보았다. 행위의 자유는 외부의 장애물이나 간섭에 의해 방해받을 수도 있지만 의지의 자유에 관한 한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로우며,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스는 ‘영원법’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참된 자유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현세법’에 따르는 자유로 구분하는데, 영원법은 최고의 가치인 이유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법을 따르기 때문이며, 그러한 사람은 스스로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된다. 반면 현세법이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규범을 지키게 되는 인간이 타율적인 개체로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세법이 영원법에서 파생된 것일 때 그 법이 준수되는 한도 내에서는 인간사회의 질서가 보전되기 때문에 일정한 의미와 역할을 부여했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자유의 핵심은 자치와 자결이다. 군주국과 대비되는 공화국의 특질은 그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는 말은 그들의 동의에 따른 법이 제정되고 모든 시민들이 그 법의 지배에 평등하게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선량한 때인 공화국의 탄생기에 형성된 제도와 법률은 사람들이 사악하게 된 후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군주론>에서는 자유로운 생활양식에 익숙해져 버린 도시국가의 지배자가 된 자는 그 도시를 파멸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도시에 의해 도리어 자신이 파멸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노예상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인민을 해방시키려고 시도하는 일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인민을 노예상태로 속박하고자 하는 일만큼 어렵고 위험한 것이라고 보았으나, 자유를 희구하는 인민의 열망이 자유에 해로운 경우란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열망은 억압에서 또는 억압이 발생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고, 그때 자유는 스스로의 의지로써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투쟁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적인 삶 속에 존재하는 그 밖의 다른 서로 상반된 것들 중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의견이 똑같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똑같은 능력과 열정으로 주장되고 옹호되지 않는다면, 각각의 요소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게 된다. 5)
토머스 홉스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의 보존을 위하여 스스로 원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연권’을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가 만연해 있고 일정한 법칙 없는 상황에서 인간들은 서로의 자유를 빼앗는 ‘만인을 위한 만인에 대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타인과 이성으로 판단된 동의를 하게 되는 것을 자연법이라 명명했다. 이러한 계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려면 절대적 힘을 지닌 공적 기관으로서 국왕이 필요하고 이러한 권력을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무시무시한 바다괴물에 비유했다. 그는 국왕이 리바이어던처럼 강한 힘을 지니지 못하면 나라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주권자의 임무는 자연법에 의한 신민의 안전보장이며, 신민 또한 폭력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국가 권력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홉스에게 자유는 법과 정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며, 즉 자연 상태를 떠나 정치적 권위가 확립된 사회 상태에서 사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로크의 자연 상태는 홉스 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도 무질서한 방종의 상태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자유는 자연법의 구속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법은 최고 이성의 법이며 그러한 계약의 결과로써 형성되는 국가는 ‘실정법’의 형태로 이성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로크가 홉스와 달리 국가에 대한 복종을 개인에 대한 억압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와 위임이 정치권력의 근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자를 처벌하거나 국민을 보호하는 권한은 공권력에 신탁하더라도 주권은 어디까지나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짓밟는다면 국민이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국가를 수립할 ‘저항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힘은 정당성을 만들지 못하며 복종의 의무는 오로지 정당한 권력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개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여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지만,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사회상태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유지하게 된다.”라고도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유의 공통분모로써 일반의지를 주장했는데, 이 의지는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으로 성립하는 국가가 가지는 단일한 것을 말한다.
개인의 의지는 본질상 부분성을 지향하지만 일반의지는 평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그렇다면 일반의지는 무엇인가? 루소는 평등이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일반의지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며 오히려 간단히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시민은 저마다 시민으로서 일반 의지에 참여하지만 또한 개인으로서 일반 의지에 반하는 개별의지를 가질 수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계약은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한 사람은 누구든지 복종하도록 강요받게 된다는 것을 포함하는데, 이런 식으로 강요당하는 평등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까? 만약 평등을 절대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인다면 그의 일반의지 개념은 개인의 자유와 모순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인 의미에서 평등을 해석한다면 그가 반대한 것은 신분과 제도적 장치에 의한 불평등이었으며 사람들의 자연적인 능력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모든 결과를 감수한다는 이 마지막 조건이 반드시 추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의견을 포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을 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6)
밀은 자유를 행복과 연관시켜 이해했는데 그가 생각한 행복은 ‘발전’이었다. 인간이 이러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꼭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을 것과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이 타인의 이익과 조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자유가 가져올 사회적 결과를 고려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그의 원칙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자유의 이름으로 옹호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사회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더 나아가 그는 만인에게 공통되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독단적인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악의를 가지고 행해지는 적극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위해를 가하는 경우까지도 포함시키며, 인간은 오직 사회의 ‘맥락’ 속에서만 그들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행위 규범들은 먼저 법률을 통해 강제되어야 하고 법률로 정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여론을 통해 강제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밀은 여론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을 포착했고,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법과 이성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당연히 자기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각 사람들의 ‘선입견’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감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보다 자신에게 수용가능하거나 친밀도에 따라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관습’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각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이성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통해 그 힘을 한층 더 강화시키기도 한다.
카뮈의 ‘이방인’은 살인죄 때문에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여론과 관습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밀이 정의하는 자유는 공동체를 전제로 하며, 동시에 공동체 내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고려까지도 필요로 한다. 또한 민주주의에서 속에서 구현되는 '자기 통치'는 타인에 대한 배제나 타인과의 관계결여가 아니라 설득과 타협, 합의를 요체로 하는 소통을 토대로 한다. 밀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언제라도 선입견과 감정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고, 완전한 법과 이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간은 언제나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는 동일한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들과 국가들은 권력을 행사하는 많은 일들에서 잘못들을 범해왔다. 7)
자유주의적 공동체가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평등한 개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면 자유주의적 국제관계는 자유롭고 평등한 주권국가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다. 앞서 이야기한 그리스도 처음에는 자율적인 정치공동체인 폴리스를 기반으로 했고 아테네는 자유의 수호자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페르시아라는 공동의 적이 있을 때는 폴리스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단결했으나 적이 사라지자 아테네는 인근 폴리스의 정치에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아테네에 반감을 가진 폴리스들은 스파르타와 연합하여 아테네 패권을 무너뜨렸고, 필요이상의 힘과 영토를 갖게 된 스파르타 역시 변두리 국가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스의 이상을 전파하려던 알렉산더의 꿈은 세계가 아니라 자유를 정복해 버렸고, 그는 자신의 힘에 도취하여 페르시아의 황제처럼 옷을 입고 신이 되려 했다. 하지만 무리한 전쟁을 강행하다 결국 병사해 버렸고, 그가 세운 제국은 흩어져버렸다.
프랑스혁명은 자유·평등·박애를 주창하며 전제 군주제를 전복시켰으나 독재자에게 다시 전복당하였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을 박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설파하던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을 약탈하였다. 이제는 글로벌 기업들이 그들의 뒤를 잇고 있다.
시민은 ‘신민’이 , 국민은 '우민'이 되었다. 바야흐로 공화국에는 점점 왕이 되려는 자들이 득실거리고, 리바이어던은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저 즐겁기 위해서 하는 일조차도, 남들이 무엇을 하며 즐겁게 노는지를 먼저 생각하고서,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서 한다. 그들은 군중 속에 묻혀 있기를 좋아한다. 8)
오늘날에는 통신기술과 수송기술의 진보와 함께 지구상에 나타난 제국도 있다. 이 제국은 지본주의 아래에서 국경을 뛰어넘어 네트워크상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권력 시스템을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중심이 없고 영토 확장도 필요가 없다. 현대의 제국은 우리의 욕망이며, 즉 극단적 자본주의가 만든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이 세부적인 일상까지 침투해 전 방위적으로 우리를 자본주의에 순응시키기 위해 관리·육성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비자본주의 단계에서 ‘나’의 정체성은 소비자로서 내가 행사하는 자유를 통해 구현된다. 소비자 간의 경쟁과정을 통해 선택지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다양해지는데, 소비에서 이탈한 자들까지 그러한 자유에 포섭되도록 만들어버린다. 사람들은 신분이 나누어져 있던 시대보다도 차별과 격차를 더 크게 느끼게 되는데, 소비의 자유를 실현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개인은 공동체에 참여할 권리로서의 자유에 관심이 없다
소비의 세계가 개인적 자유의 핵심영역으로 부각되고 자유의 실현이 소비의 실천과 연결되면서 뒤따르게 되는 문제는, 생산 및 재분배의 과정에서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전통적인 관심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국가와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는 모든 인간을 ‘멀티튜드’라고 불렀고, 이러한 영역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권력에 저항하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제국은 ‘네트워크’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인종·국적·계층을 초월한 사람들이 자기의 특기 분야를 연결하고 공유한다면 억압적인 성격의 시스템을 역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회구조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복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폭력혁명과도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인간 본성의 좀 더 강력한 속성들이 다른 속성들의 권리를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압박은 있어야 한다. 9)
맬서스의 이론은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식량은 천천히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에 불균형이 일어나 식량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빈곤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고, 밀의 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밀의 자유론에도 ‘적자생존’의 원리가 도입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밀은 덕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통한 자유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약육강식’의 관점과는 차이점을 가지며, 그의 이론을 양적공리주의와 구별 짓게 만든다. 즉, 이성과 품위를 갖추며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만이 '시민'이 되는 것이다.
거대권력에 지배된 질서 있는 사회와 자유롭지만 무질서한 사회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할까? 밀이 자유주의자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는 거대권력에 지배되는 사회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유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구속이 전제되는 것이라 보았으므로 무질서한 사회에 대해서도 반대했을 것이다. 그는 '자유론'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자유로운 국가가 지향해야 할 태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가치가 있는 그런 주제들에 ‘스스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10)
밀은 자유방임주의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적극적 자유에도 그만큼의 문제점이 있고, 모든 것을 똑같이 취급하는 평등 또한 정의에 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론'에서 말하는 자유에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배분적 정의'가 요구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어떤 정해진 모형을 따라 만들어져서 정해진 곳에 배치되어 정해진 일을 정확히 해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내면의 힘을 따라 사방으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게 되어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11)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내가 의도한 대로 풀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항상 주변의 시선에 휘둘렸고, 주어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은 지금까지 어떤 ‘틀’ 속에 갇혀서, 의식도 못한 채로 그게 '나'인 것처럼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겪게 된 세월호 사건은 충격으로 다가왔고, 종교단체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대신, 나는 도서관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내가 속해있는 세계의 구조를 해부해보고 싶었다. 물론 수험생의 입장에서 딱히 갈 데도 없었고, 처분할 수 있는 돈이 별로 없다는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책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끈이었고, 나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카뮈’는 세상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며, 사람은 그것에 저항할 때 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고, ‘니체’는 높은 곳에 서기 위해서는 낮은 곳을 내려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칸트’는 “너의 의지가 '보편의지'가 되게 하라!”라고 했고,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 되었다.
‘샤르트르’에 따르면 처음에 있는 것은 '의식'이며, 나라는 존재는 없다. 그것이 '나'라는 본질을 만들어가며 사물과 타인을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방식은 ‘대자존재’이며, 반대로 사물처럼 처음부터 본질로서 고정된 존재를 ‘즉자존재’라고 했다. 스스로를 자신으로서 의식한 순간 ‘나’라는 존재는 과거부터 현재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게 되며, ‘주체’로서 자신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더 이상 잃어버린 시간들에 매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반면 ‘레비트로스’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은 그 바탕에 있는 사회적·문화적 구속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여 이러한 주장을 일축하기도 했다.
자유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며,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파동'이 되었고, 조금씩 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 자유란 무엇인가 』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Ⅰ. 서론
- 인간 존재의 책임과 자유의 본질
-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현대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경향
- 자유와 평등은 여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
Ⅱ. 자유와 평등의 개념과 민주주의
- 자유와 평등의 사전적 정의
- 자유와 평등의 긴장 관계
- 민주주의의 조화 장치로서의 역할
- 개인의 이기성과 국가의 자의성 문제
Ⅲ. 고전 그리스와 플라톤의 자유론
- 고대 그리스의 자유: 공동체 참여 중심
- 자유의 한계: 노예제와 여성 배제
- 플라톤의 자유: 이성과 계급에 따른 정의
-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Ⅳ. 아우구스티누스와 마키아벨리의 자유론
- 아우구스티누스: 의지의 자유와 도덕적 책임
- 영원법과 현세법의 구분
- 마키아벨리: 자치와 자결의 자유
- 공화국의 제도와 자유의 열망
- 자유와 억압의 역설
Ⅴ. 사회계약론자들의 자유론
- 홉스: 자연권과 리바이어던
- 자유는 정치적 질서 속에서 실현
- 로크: 자연법과 실정법
- 자유는 이성과 계약에 기반
- 저항권의 정당성
- 루소: 일반의지와 자유
- 평등을 지향하는 일반의지
- 개인의 개별의지와의 긴장
Ⅵ. 밀의 자유론
- 자유와 행복(발전)의 연관성
- 자유의 조건: 개성과 타인에 대한 고려
- 해악 원칙과 사회적 제재
- 여론과 관습의 위험성
- 공동체 속에서의 자유 실현
Ⅶ. 역사 속에서의 자유
- 고대 그리스의 자유 이상과 패권 다툼
- 알렉산더 제국과 자유의 상실
- 프랑스혁명과 자유의 왜곡
-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순
- 권력 집중과 리바이어던의 재등장
Ⅷ. 자본과 소비 사회 속에서의 자유
- 현대 제국: 국경 없는 자본주의 네트워크
- 소비자본주의와 자유의 재정의
- 공동체적 자유의 소외
-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관심 약화
- ‘멀티튜드’와 네트워크 기반 저항
Ⅸ. 적자생존과 밀의 자유론
- 맬서스 이론과 진화론의 영향
- 밀의 자유론과 적자생존의 차이점
- 자유와 공동체 책임의 균형
- 배분적 정의와 국가의 역할
Ⅹ. ‘나’의 자유론
- 인간은 기계가 아닌 성장하는 존재
- 개인적 경험을 통한 자아 성찰
- 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한 자유 탐색
- 주체로서의 ‘나’와 사회적 제약
- 자유는 감당할 수 있는 자의 몫
♧ 참고도서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현대지성, 2018.06.01. >
1) 238p
2) 38p
3) 112p
4) 106p
5) 119p
6) 134p
7) 63p
8) 145p
9) 149p
10) 237p
11) 141p
12) 253p
< 일러스트 철학사전, 다나카 마사토, 21세기 북스, 2016.04.18. >
& 요즘 ‘사랑과 평화’, ‘자유와 평등’을 외친다는 집단들이 연일 언론과 시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은 이상만을 외치며 현실의 책임은 회피하기 때문이다. 본질은 외면한 채 이미지와 외관만을 소비하고, 그 이미지가 본질과 어긋나도 그것을 진실이라 우긴다. 그러나 본질과 괴리된 이미지는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
내가 말하는 ‘그들’은 사이비 교육, 사이비 종교, 사이비 정치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럴듯한 외양과 달콤한 언어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마치 메피스토펠레스가 흉측한 모습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희생자를 현혹하듯, 악은 종종 매혹적인 형태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 매혹에 속아 본질을 보지 못한다.
교육 현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나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직접 겪은 세대다. 과거에는 지식을 억지로 주입했지만, 지금은 억지스러운 논리로 학생들을 방임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나는 다섯 살에 한글을 배웠고, 일곱 살 무렵부터 세계 문학과 위인전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형성된 독서 습관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표현의 근간이 되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왔다. 그런데 언어 능력이 가장 활발히 발달하는 시기에 공교육에서 한글 교육을 배제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의 아이들만 유리한 출발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수행평가의 부담은 학생과 부모에게 전가된다. 제대로 된 수행평가는 어릴 적부터의 탄탄한 문해력과 독서 습관을 전제로 한다. 이는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데에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우리나라만큼 도서관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은 드물다. 시간이 곧 자본이라면, 그 시간을 책으로 채우는 사람은 결국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낸다.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단지 자원의 유무가 아니라 기회의 구조라는 점이다. 가진 자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고, 하나라도 부족하면 뒤처지며 비난받는다. 역사적으로 교육은 계급을 재생산하는 도구로도 작용해왔다. 그렇기에 후자에 속한다면 그 논리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특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트렌드는 참고하되, 질 높은 독서를 통해 자신을 단단히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강요가 아니라, 자녀와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통일교의 정경유착 문제는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신흥 종교들이 공유하는 패턴은 얕은 뿌리, 절대화된 교리, 그리고 역사 왜곡이다. 이들은 기존 전통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교리만을 절대화하며, 타 종교와 불신자에게 배타적인 논리를 펼친다. 국가의 보호와 혜택을 받는 만큼, 종교 단체에도 책임과 세금 부과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종교가 언론과 기업을 장악하는 현실은 민주적 균형을 해친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은 대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치 영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된다. 부패한 권력에 맞서 진보의 기치를 들었던 세력들이, 막상 권력을 잡은 뒤에는 방향을 잃고 결국 기존 권력과 다를 바 없게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항자로서의 결집력은 목표가 달성되면 분산되고,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소규모에서 통하던 원리를 대규모 집단에 무리하게 확장하려다 모순에 부딪히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당대에는 파격적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읽혀야 할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그의 사상이 시대를 초월하는 핵심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앞서 비판한 사이비 담론들은 유행과 트렌드를 짜깁기해 만든 장황한 설명에 불과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기득권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기득권이 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는 간결하고 본질적이며, 변명은 장황하고 피상적이다. 그래서 밀의 글은 얇지만 무게가 있고, 그들이 다루는 학술물은 두껍지만 공허하다.
내가 다시 쓴 자유론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나름의 체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나는 시스템에서 내쳐진 인간 중 하나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책했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나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사회의 구조부터 시작해 인간 본성에 대한 방대한 책을 읽었고, 어느 정도 스스로 개념화할 수 있을 때 사회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잘난 사람들만 잘 사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굳이 그들의 논리에 휘둘리고 싶지도 않다. 이 방대한 글은 그에 대한 나의 반항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은 각기 다른 개성들이 공존하고, 서로 다른 매력으로 사회를 더 풍요롭고 흥미롭게 만드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내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얽매임과 강제된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 자유를 타고 >
그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좇고 싶어 하고
그들은 모두 똑같은 말만 믿고 싶어 하지.
저항은 선택받은 자의 조건,
썩어가는 상처를 불로 지지고
진물 나는 염증에 재를 뿌리지.
반항은 선택하는 자의 운명,
막지 마! 내버려 둬! 바람처럼 날 수 있게!
어두운 길일지라도 꿈꾸는 것은 나의 자유니까!
돌아오지 못할 길을 나만의 방식으로,
밟힐수록 강해지고 밟을수록 빨라지지.
그것은 나의 절망이자 희망
그것은 나의 고통이자 자랑
그것은 나의 선택이자 운명
정부가 개인의 노력과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고 촉진시키는 활동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정부가 개개인과 집단들의 활동과 역량을 이끌어내는 대신에, 그들이 해야 할 활동들을 정부 자신이 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해 주며 때로는 경고를 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잘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에, 그들에게 족쇄를 채워서 그런 상태에서 일하게 하거나, 그들을 옆에 세워두고서 그들의 일을 직접 나서서 할 때, 폐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가치는 결국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가치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