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by 차주도

각자도생 各自圖生


손녀의 과제물로
‘고추 키우기'가 선정되어
고추 모종의 성장을 살펴보다가 시원치 않자
햇빛이 잘 드는 할머니 집으로 들고 온다

손녀의 부탁이라
정성껏 키우다 보니
키만 쑥쑥 자라고 꽃은 피건만
열매 열릴 기미가 없자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할멈은
“고추가 열리지 않으면 버려야지” 하면서 엄포를 준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식물일지라도 야박하게 말하지 말라"라고
경고장을 띄우자마자
위기를 느꼈는지
고추가 두 개 열렸다

아무리 봄일지라도
바람이 전하는 속삭임을 모른 채
순리를 거스른 것이다

눈치챈 할멈은
연신 피어난 꽃에
바람의 역할을 대신해
솜을 가지고 톡톡 문지르니
주렁주렁 신기하게 베란다에
생명이 수두룩하게 열렸다

이제는 분갈이하여
바람이 잦은 복도로 옮겨놓으니
신선한 고추가 한 끼의 입맛을 돋운다.


시작 노트

발 딛고 사는 세상
결코 쉬운 게 없다
순리 順理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이 나이가 걸렸다

지켜야
안분지족 安分知足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차주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광진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탁구강사로 밥벌이 합니다.

44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3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