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들 보드

by eto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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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패들 보드를 탄 적이 있다. 평소 그런 액티비티를 선호하지도 않고 물에 젖는 것, 특히 바닷물에 젖는 걸 싫어하던 나로서는 대단한 용기였다. 당시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던 나는 밴쿠버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여름을 맞이했다. 밴쿠버의 여름은 한국처럼 습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 해는 아홉 시까지 떠있어, 네시면 어두워지는 겨울과 달랐다. 하루가 두 배가 된 기분이었다.


여름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었다. 한국의 찌는듯한 더위는 내 체력을 갉아먹었고, 그리 좋지 않은 성격을 더 안 좋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으니 당연했다. 대학생 때 한 달 동안 프랑스 남부에서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아홉 시까지 떠있다는 것만 빼면 날씨는 한국과 같았다. 살고 있던 기숙사에 에어컨도 없었으니 한국보다 더 최악을 꼽자면 프랑스의 여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여름을 겪은 내게 '여름은 덥고 습하다.'라는 명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참이었다.


그러나 밴쿠버의 여름은 달랐다. 햇빛은 강하나 견딜만한 정도였고, 무엇보다 습기가 없으니 하루 종일 밖에 있어도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보던 여름이 실재하는 것 같았다. 바닷가에서 광합성을 하는 백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말았다. 그런 여름이라면 나도 선베드에 누워 내내 햇빛을 맞을 수 있었다.


심심하고 재미없는 도시 밴쿠버. 한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에 비싼 물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이득이 아닐까 싶을 때마다 주변에서 밴쿠버는 여름이 '진짜'라며 나를 말렸다. '여름이 좋아봤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우습게도 여름이 오자마자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그들 말대로 밴쿠버는 여름이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내게 부족한 건 한국의 인프라가 아니라 햇빛이었다. 자연스럽게 '여름은 덥고 습하다'는 명제는 거짓이 되었다.


패들 보드를 타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여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길에 넓은 호수 한가운데 패들 보드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곧바로 일행들에게 저게 무엇인지 물었다. 패들 보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확한 명칭은 SUP(Stand Up Paddle). 이름 그대로 서서 타는 패들 보드라는 뜻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패들 보드를 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는 약간의 의무감 같은 것이 내 마음속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패들 보드를 타기 위해 바다에 간 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집 앞바다에서도 탈 수 있지만 나는 호수에 가고 싶었다. 호수는 바다와 달리 물에 젖어도 소금기가 없어 찝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수는 멀고, 호수에 갈 수 있는 휴무에 날씨까지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이 흘렀다. 다음 주 일기 예보에는 내내 비구름이 있었다. 결국 일주일 뒤에는 추워서 바다에 뛰어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바다로 이끌었다.


바다는 집에서 십분 거리에 있었으나 패들 보드를 대여해 주는 곳까지는 십 분을 더 걸어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물에 젖으면 추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구름에 햇빛이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윈드서핑 스쿨이라고 적혀있는 바닷가 앞 보드 대여점에서 구명조끼를 빌리고 키에 맞는 패들과 보드를 받았다. 패들 보드가 처음이라는 말에 직원은 간단한 설명을 이어갔다. 무릎을 꿇은 채 패들을 저어 바다로 나가면 중심을 잡고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패들을 저어 바다로 나간다. 방향을 바꾸고 싶을 땐 패들을 길게 저어 반 원을 그린다. 이론은 간단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초보가 타기에 좋은 날은 아니라고 했다. 바람을 등지고 가면 쉽겠지만 직원은 내게 바람을 맞서고 가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분명 그건 너에게 힘든 일이겠지만 너는 할 수 있을 거야. 패들 보드에 대한 얘기였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배운 대로 무릎을 꿇고 패들을 저어 모래사장과 조금 떨어졌을 때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코어가 없어 금세 주저앉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편안했다. 바람에 맞서며 패들을 저었다. 저으면 젓는 대로 보드가 움직였다. 바람이 많이 불어 조금 앞으로 향할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쌌다.


저 멀리 보이는 부표를 임시 목표로 삼고 열심히 노를 저었다.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패들을 움직였다. 그러다 고개를 들면 정면에 있던 부표가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경로를 이탈한 것이다. 나는 패들 손잡이 끝부분을 잡고 패들로 넓게 반원을 그렸다. 부표가 정면 시야에 온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열심히 패들을 저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이번엔 부표가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다. 다시 방향을 맞추고 앞으로 나아간다. 조심조심 빠지지 않게 패들을 움직였다.


하나의 점으로 보였던 부표가 탁구공 크기로 보일 때쯤이었다. 순식간에 바다에 빠졌다. 중심을 잃는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바다에 빠진 것이다. 빠지기 전 바다의 상태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바다에 빠진 순간 시원했던 바닷물만큼이나 나를 감싸던 깊은 해방감은 똑똑히 기억한다. 구명조끼가 있어 금세 바다 위로 몸이 떠올랐다. 바다에 빠질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패들을 움직였던 게 무색하게도 빠져보니 별 거 아니었다. 바닷물의 찝찝함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보드 위로 올라가고 나서는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나왔다.


다시 무릎을 꿇고, 일어서 패들을 움직였다. 시간이 지나자 약간의 요령이 생겼다. 센 파도가 밀려오면 그대로 주저앉아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경로를 벗어나면 방향을 바꾸고 부표를 향해 나아갔다. 마침내 내가 정한 목표인 부표에 도달했을 땐 해냈다는 성취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저앉고, 일어서고, 바다에 빠졌던 순간만이 떠올랐다. 즐거웠던 그 순간들이.


문득 이 모든 게 인생과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진부한 삶의 진리를 깨닫고 만 것이다. 나는 앞을 향해 똑바로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고개를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그때는 그냥 패들을 움직여 방향을 맞췄던 것처럼 다시 돌아가면 된다. 바뀐 경로에서 즐겁다면 거기서 좀 더 헤매도 되고. 파도가 밀려올 땐 애써서 버티기보단 주저앉는 게 방법이다. 어차피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웃기지 않은가. '주저앉았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으로 쓰이곤 하는데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주저앉는 것이 답이라는 게. 설령 바다에 빠진다고 해도 문제 될 거 없다. 다시 보드에 올라타고, 일어서면 된다.


나는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하지만 괜찮다.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고, 주저앉아도 된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작년 한 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꼽으라면 바다에 빠진 그때를 꼽는 것처럼 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