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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Oct 28. 2019

좋았던 곳에 다시 가는 게 두려워

조금은 이상한 버릇


조금은 이상한 버릇

좋았던 곳에 다시 가는 게 두려워





뭐라도 쓰겠다고 하릴없이 책상에 앉아있던 어느 날, 습관처럼 켠 음악 앱에서 나의 취향을 저격한다며 추천해주기에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 하나 있다. 독특한 음색과 가사가 매력적인 가을방학의 노래였다. 낯선 곳으로 떠날 때면 항상 겁이 났는데 나 이제는 좋았던 곳에 다시 갈 때가 더 두려워 최악의 결말을 떠올려라는 가사가 순식간에 마음을 관통했다.


가사를 몇 번이고 곱씹다 보니, 조금 이상한 나의 몇 가지 버릇들이 문득 떠올랐다. 귤을 먹기 전에 양치를 하는 것, 화가 났을 땐 아니, 하고 말문을 여는 것, 좋아하는 사람을 유독 냉랭하게 대하는 것, 우유를 나눠먹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다녀온 여행지(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절대 보지 않는 것.



copyright 2015.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캐나다/캔모어]



지난날, 나는 적잖은 곳들을 여행하며 곳곳에 추억을 남겨왔다. 개중에는 기억의 상자를 열어 한참을 앉아있어야만 떠오르는 희미한 이야기들도, 혹은 끝끝내 기억 저편으로 저물어 버린 이야기들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의 기억/추억은 마치 주크박스처럼 툭-하면 튀어나와 늘 나의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나만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의 소식을 다른 사람의 입과 눈을 통해 전달받는 것이 나는 그다지 달갑지가 않다. 이게 무슨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인가 하겠지만, 이제는 숫자가 무의미할 만큼 방대한 누적 방문자를 자랑하는 여행지가 마치 나만의 것인 양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애써 모른 채 하는 질투와 경계 그 언저리쯤 있는 쫌생이 같은 이 기분은 나 또한 뭐라 설명할 도리가 없다.


보통의 여행자 눈으론 만나볼 수 없는 다양한 구도와 색감, 맛있고 행복한 것들로 가득한 TV 여행 프로그램 또한 나의 쫌생이 레이더에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찾아본 적은 몇 번 있어도,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찾아보지 않았다. 아 맞아 그랬었지, 저기 참 좋았는데 따위의 감상은 나에게 외로움 그 이상의 것을 가져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copyright 2015.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캐나다/캔모어]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의 추억이 깃든 여행지의 소식을 듣는 것이 질투와 경계 그 어딘가였다면, 더 나아가 좋았던 곳에 다시 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계와도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농도 짙은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몇 번을 곱씹었던 그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아시아, 미주,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까지 새로운 곳에 발도장을 찍을 때의 그 설렘은 늘 두려움을 동반하였지만 나만의 시선과 추억이 가득한 곳에 다시 가는 것은 오직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몇 해전, 삼촌의 권유로 뜻하지 않게 가이드 완장을 차고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단지 내가 살았던 곳이라는 단순 명료한 이유였다. 삼촌이 내게 준 믿음과 기대가 무색하게 우리의 여행은 모든 게 삐그덕 거렸지만 캘거리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지난 얼마간의 고생을 말끔히 잊고 옛 생각에 사무쳐 굉장히 들떠있었다. 꽤나 능숙하게 가족들을 이끌던 나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비교를 하였다. 분명한 타지에서 찰나와 같던 현지인 시절을 떠올린다는 것, 그때 나는 정말이지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당시에 함께 했던 사람들, 풍경, 이야기, 그리고 그 시절의 나 조차도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 어쩌면 나는 어떠한 변수로 나의 소중한 기억이 실망으로 덮혀질까 두려웠던 것일까. 꽤나 긍정적인 사람이라 자부했던 나는 이 부분에서 만큼은 늘 최악의 결말을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 새로운 바람이 들어올 틈을 내어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언젠가 나이가 들고 많은 게 느슨해져 마음의 문도 헐거워지길 바래도 보지만 나는 아직은 혹은 여전히, 좋았던 곳에 다시 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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