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에도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앞으로의 출간 계획이라든가,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등에 관한. 또 '표백'에서 이야기한 무력감을 극복할 방안에 대한 조언이라든가에 대한. 하지만 나는 이미 그에게서 너무 많은 용기를 얻었기에 약간 뽕 맞은 기분으로 남은 시간을 앉아있었다. 가슴을 꽉 메우고 있던 답답증과 무력감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았다. 무언가 다시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을 지경이었다.
노트북에 처박아둔 쓰다 만 소설들이 눈 앞에서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제발 나 좀 꺼내 달라고.
제발 나 좀 완성해달라고.
왜 만들다 마는 것이냐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아니냐고!
나는 나의 보라색 노트북 안에 짱박아둔 그 쓰다만 소설들, 혼자 쓰다만 소설들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빨리 자괴감을 맛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더 처절하게, 더 철저하게 절망하고 싶어 갈증이 났다.
밤 10시 30분이 넘어서야 팬사인회는 끝이 났다. 그의 책 맨 앞장에 사인을 받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내 질문이 인상 깊었었는지, 그는 내게 물었다.
"글을 쓰시나 봐요."
내가 선망해마지 않는 작가에게서 글을 쓰냐는 질문을 받다니,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앞에 선 내가 작아도 너무 작게 느껴졌고, 그렇게 내게 물어준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아? 네. 아 네... 하하하"
"아 이런 내가 호랑이 새끼를 만난 것 아닌가 몰라요."
이런 영광이. 이런 찬사가.
나는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얼마나 헤벌쭉하며 웃었는지, 집에 돌아와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영락없이 좋아하는 연예인 콘서트장에 온 여고생 같았다.
그에게 오늘의 만남을 글로 남겨 보내드리고 싶다며 이메일 주소를 받아왔다.
"저 결혼도 하고 애도 있어요. 귀찮게 안 할게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까지 덧붙여가며.
그는 내가 웃겼는지 웃으며 기분 좋게 이메일 주소를 건네주었다.
그 후로도 몇 분간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의 주변을 빙빙 돌다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를 마지막으로 먼발치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밤 11시의 버스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이를 낳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밤 외출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상암동에서 돈암동까지 서울 시내를 횡단하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제 생각에는 원래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채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동족'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글을 쓸 때 무언가 치유되는 것 같고 충족되는 느낌이 있어요. 그게 좋아서 글을 써요."
그가 했던 말대로,
그래 나는 원래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채로 태어난 사람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남편을 출근시키고
밥을 차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 10시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고
보내고 나서는 빨래하기 빨래 널기 빨래 개기, 청소기 돌리기 물걸레질하기 먼지 닦기,
장난감 정리, 설거지, 주방정리, 장보기, 아이 간식과 저녁 만들기
계절마다 옷장 정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불빨래를 하고, 그 외에도 설명하기도 입 아픈
살림을 하다가
오후 4시면 첫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뛰어가야 하는,
아이가 돌아오면 아이랑 실랑이하며 놀아주고 밥을 짓고
남편이 오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밤이 되면 아이를 씻겨 재우고
그러고 나서 피곤해 곯아떨어지거나 겨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식탁에 앉아
오늘 하루 무엇이 남았나 멍 때리는 나는
엄마이자 주부이자,
곧 둘째 출산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이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다면
나는 비로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 채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내게 용기를 주고
나를 일깨워준 장강명 작가님께 깊은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