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대하여

by 김승주

그리스도 어느덧 한 여름이 가고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거리의 옷가게만 봐도 여름 옷이 모두 정리되고 가을 용 외투와 니트류들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Khora를 찾은 손님 들 중에서도 외투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이들은 계절에 변화에 더 취약할 터, 어느 날은 2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 엄마가 찾아와 아이가 입을 만한 외투가 있는지 물었다. 기부로 운영되다보니 모든 연령, 모든 사이즈가 구비되어 있지 않다. 아이 사이즈에 맞는 옷을 찾지 못해 빈 손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은 7명의 가족이 Khora를 찾았다. 그들은 이제 막 아테네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9월 한 낮 날씨(가을이 되고 있으나 아직 낮 기온은 평균 29도였다.) 에 전혀 맞지 않는 두터운 옷을 입고 있었다. 흐르는 땀과 벌개진 얼굴들을 보니 그들에게 아테네의 날씨가 고역인 듯 했다. 계절에 맞는 옷을 찾는게 시급해 보였다. 나는 공강 시간에 동기들과 옷가게와 신발가게를 둘러 보는게 하나의 루틴이었다. 시장조사, 뭐 이런 건설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쇼핑이었다. 의류학과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옷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에게 옷을 사는 건 하나의 놀이와도 같았다. 옷이 너무 많아 쓰리룸으로 이사를 간다는 선배도 있었다. 하늘 아래 같은 핑크는 없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비슷한 옷을 여럿 가지는 게(근데 이제 디테일이 좀 다른)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난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소비행동이 보통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을 해 2명의 룸메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우린 공용거실과 방 2개가 있는 빌라에서 함께 살았다. 공용 거실이 협소해 옷을 어디에 보관 할지가 문제였다. 룸메 둘과 옷 정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서로 다른 소비습관을 알게 돼 놀랐더 기억이 있다. 우선, 두 사람의 4계절 옷을 합친 양이 내 봄· 여름 옷의 양과 같았다. 한 룸메는 옷을 잘 구매하지 않는 편이었다. 필요한 경우에 구매하는 편인 듯 했다. 다른 한 명은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고, 필요한 만큼 옷을 새로 구입 한다고 했다.(많은 양을 구입하진 않았다.) “필요할 때 산다”는 명제가 당시 내겐 소소한 충격이었다.

오랫동안 내게 옷은 필요에 의해 구매하는 품목이 아니었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예뻐서 사고, 유행하니깐 샀다. 그렇게 옷장에 쌓인 옷들이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나 패션 산업은 끔찍하게도 싫었다.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도 싫었고, 노동인권 문제를 뗄 수 없다는 것도 싫었다. 우습게도 누구보다 메커니즘에 일조하고 있으면서도 패션 산업을 혐오했다. 어쩌면 의식과 무의식의 부조화가 낳은 아이러니일지 모른다. 그런데, 패션 산업에 명과 암을 다 떠나서 우리에게 옷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