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만 청량한 비가 내리는 걸 보니, 이제 봄이 제대로 오려나보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내가 살던 시골집 대청마루에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등이 비를 피해 올라왔었다. 집 뒤에 개울물이 흘렀기에 작은 생명체들이 쉬어가던 우리 집은 그 녀석들의 작은 쉼터였다. 내가 태어날 무렵 바람에 날아온 오동나무 씨앗은 마침 변소 옆 마당에 안착하여 영양분을 가득 머금고 내 나이만큼 쑥쑥 자랐다. 아빠는 그 오동나무를 나 시집갈 때 베어 예쁜 화장대를 만들어 주겠노라 공언을 하셨다. 수레를 끌고 아이스크림 파는 일을 하던 옆집 아저씨는 어린 나를 붙들고 실없는 농담을 자주 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얘기는 “신연아, 고양이가 크면 사자가 된단다. 우리 신연이 6살이지. 2년 후에 신연이가 국민학교 입학할 때 우리 살찐이가 사자가 될 거야. 사자 타고 우리 공주님 등교하는 거다.”... 정말 순진하게도 난 그 얘기를 오랫동안 믿었더랬다. 얼른 커서 사자 되라고 생선대가리 버리지 않고 옆집 살찐이에게 한동안 자주 가져다주었었다. ㅠㅠ
심심한데 비가 와서 함께 놀 동네친구가 보이지 않을 때면 골목길 끝 가정집이 딸린 모퉁이 약국에 놀러 갔었다. 은숙언니... 집이 가난해서 어린 동생들을 건사하기 위해 식모로 왔다고 했다. 키가 크고 피부도 하얗고 말수가 적고 차분했다. 은은한 미소에 정갈한 살림 솜씨의 은숙언니는 주인 할머니에게 신임이 두터웠다. 은숙언니방의 세간살림은 옷장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약국에서 파는 비누를 쌓아두는 찬장... 이게 다였다. 본인이 가지고 놀 것도 아닌 종이인형을 예쁘게 잘라 빈 비누종이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내가 오면 꺼내서 마음껏 갖고 놀게 했다. 은은한 비누향이 가득 밴 종이인형이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고급지고 매력적이어서 더 좋았다. 내 나이가 막내 동생나이와 같다며 귀찮은 내색 한번 없이 조용히 놀아주던 은숙언니는 어느 날 결혼을 하면서 홀연히 떠나 버렸다. 은숙언니는 알까. 본인이 만들어준 종이인형을 갖고 놀던 그 아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걸 ㅋㅋ
봄비가 내릴 때마다 은숙언니가 생각난다.
<**연수원에 사는 청둥오리 삼 남매_사람을 자주 봐서인지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렇게 포즈를 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