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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씨 Apr 05. 2024

1년간의 제주살이 기록

제주도 살지 마세.. 아니 한번쯤 살아보세요


지난 월요일. 제주도에서의 1년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지방생활을 한지 무려 8년만의 복귀다.


제주도에 있는 1년 동안 지인들의 연락은 한결같았다.

'우와 제주도라니.. 너무 좋겠다. 매일 바다가겠네?'

아니 틀렸어 얘들아. 제주도에서도 집-회사의 반복이야


오늘은 제주를 떠난 것을 기념하며 그간의 기억을 기록하려고 한다.

제주도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크롤을 내리지 않기를 추천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들이지만 제주도에 대한 로망이 박살날 수도 있다.




01. 제주도에서는 우산을 쓰지 않아야 도민이래요

워낙 비가 자주 오기도하고, 갑작스럽게 비가 오는 경우도 많다. 바람까지 많이 부는 곳이라 우산은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어지간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슬비에 우산을 펼쳣더니 이주민인거 티내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몇번 있을 정도이다.

어쩌다 한번 제주도에 놀러왔는데 비가 오지 않고 화창만 날들만 계속된다면? 그건 정말 여행 날짜를 잘 정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승기가 제주도에 와있거나.


02. 가습기를 튼다고? 왜?

나는 육지에 있을 때부터 제습기를 사용해왔다. 그래서 제주도로 떠날 때에도 빨래를 말릴 용도로 제습기를 들고 갔다. 그런데 제습기만 사용하면 너무 건조해질까봐 가습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왠결. 제주도에는 가습기가 필요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습하다. 내 침실은 매일같이 80%의 습도를 기록했다. 가습기를 틀고 자는 날이면 90%가 넘기 일쑤였다.

제주도에 사는 지인들에게 내가 어제 가습기를 틀고 잤는데.. 라는 대화를 시작하면 의아한 표정으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왜?? 라고 묻는 경험을 하게 된다.


03. 제주도 차에는 방향지시등이 없나요?

나는 광주에서 운전을 배웠다. 다들 부산 운전이 제일 험하다고들하지만 광주도 만만치않다. 빨간불에 서도 빵- 멈춰도 빵- 험한 운전자들이 참 많다.

그런데 제주는 다른의미로 운전이 험하다. 복잡한 도로가 없기 때문인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거나 급정거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심지어 초보 운전인 렌트카들이 많아서 운전하기 참 힘들다.

모두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지인들과 제주도 차에는 방향지시등을 안만드냐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꽤나 많다.


04. 생활비가 저렴하다고요??

얼마 전 지인과 블로그 맛집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옆테이블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주도는 생활요금이 진짜 싸대~ 전기나 가스 요금이 몇천원밖에 안나온다는거야! 나도 여기 살고싶다~' 그말을 들은 내 표정은 물음표 그 자체였다. 어디가?? 대체 어디가 싸?

제주도에는 도시가시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가스는 LPG를 쓴다. 그래서일까 가스 요금이 어마무시하게 나온다. 부모님이 집에 오신 적이 있어 4일 동안 20도의 온도를 유지했을 뿐인데 가스비가 12만원이 나왔다. 나는 평소에 샤워할 때 외에는 가스를 쓰지 않는편인데도 말이다(요리도 안한다).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어서 전기장판 외에는 틀고 산 적이 없는데, 그 일을 계기로 더더욱 보일러를 틀지 않고 매일 기침을 하는 슬픈 삶을 살게 되었다.


05. 이런 유부남들

예민한 이슈라 다룰까말까 고민을 했지만, 주의는 하면 좋을듯해서 쓴다.

제주도에 있으며 유부남인걸 속이고 여러 이성을 만난 사람을 보았다. 그런데 주위 도민들은 '저런사람 많아~ 흔해~' 라고 말하고는 했다. 아니 이게 무슨말이람.. 저게 왜 흔한 일이지.. 육지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이 그렇게 외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겁이나서 이성을 만날 때에는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는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은 나가지 않게 되었다.


06. 낮은 임금, 질낮은 일자리

일 때문에 제주도에 가게되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르게 이직을 하게되었다. 이직할 회사를 알아보던 중 너무 놀란 것은 일자리 자체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관광지이다보니 서비스직은 많지만 나머지 일자리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게다가 면접을 보았던 몇몇 회사들은 200대 초반의 임금을 제안했다.

아- 관광지 물가는 비싼데 저런 임금이라니. 조금만 검색해보아도 제주도 임금이 전국 꼴찌라는 글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제주도에 본사만 둔채 주요 인력은 육지에 있는 회사가 대부분이다보니 업무 환경 또한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차라리 당근에서 감귤농장 아르바이트를 찾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07. 그럼에도 좋은 귤-

제주도는 귤이 정말 많다.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까지하면 1년 내내 귤이 나온다. 월별로 제철인 것이 달라서 기다리는 맛이 있다.

이중에서도 귤은 제주도민들이 정말 많이 나눠주는데, 귤농사를 짓지않는 도민들도 주변에서 나누어주는 것이 워낙 많아서 그 귤이 나에게까지 오고는 한다. 겨울에는 식당에서도 무료로 귤을 가져가라고 박스채 두는 곳들도 많다. 귤을 사려고하면 왜 귤을 돈주고 먹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귤이 흔한 곳이다.

귤을 좋아하지 않는데 제주도에서 그 맛을 알아버렸다 이제 매년 주문할 예정이다.


08. 불편한 배송

제주도에서 짐을 풀고 처음 켠 앱은 마켓컬리였다. 그런데 주소지를 입력하자마자 뜨는 문구는 서비스 대상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에...? 서비스 불가 지역은 상상조차 못해본 일이라 앱을 켠채로 굳어버렸다.

뭐 마켓컬리가 안되면 쿠팡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쿠팡을 켰지만, 쿠팡 프레시도 안된다.

제주도에서 제일 빨리 받아볼 수 있는 플랫폼이 쿠팡임에도 이틀은 걸린다. 그럼에도 제주도에서는 쿠팡을 최고로 친다.


09. 쇼핑은 어디서 해요? 백화점은 어딨어요?

계절이 바뀌며 옷을 사고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심지어 헤어샵 원장님께도 물어본 것. '제주도에서는 어디가서 옷을 사야해요?' 그리고 한결같은 대답. '인터넷이요'

제주도에서는 브랜드 자체를 만나보기 힘들다. 물론 몇몇 브랜드들이 있긴하지만.. 정말 한정적이다. 보세샵들은 백화점에서 사는 것 마냥 비싸다. 어쩔수없이 쇼핑앱으로 사려고하면 도서산간지역 추가 배송비가 붙는다. 내 지인중에는 육지 집으로 배송을 받아 집에 갈 때마다 택배를 가지고 오는 분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배송비 지원 사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배송비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마트라고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이마트가 전부이고, 백화점은 없다. 아울렛? 없다. 그냥 다 없다.


10. 이것도 독점이라면 독점이겠지

얼마 전 육지에서 매트리스 브랜드에 방문한 적이 있다. 할인중이다보니 구매하고싶은 마음에 제주까지 배송이 가능한지 물었으나, 제주도와는 따로 협약이 되어있어서 육지에서 물건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제주도에 가서 사야겠다고 했더니 제주에서는 할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브랜드인데.. 제주도에서만.. 배송비를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제주 내에 매장 자체가 적다보니 그런것일까

제주에는 가구를 사려고하면 배송비가 워낙 부담이다보니 당근에서 가구를 판매하면 정말 잘팔리는 것도 이런 이유인듯하다.

당근에서 가구를 팔며 '정말 힘들게 들여왔어요..'로 시작하는 문구가 흔하며, 심지어 제3자가 구매자에게 연락이와서 제발 자기한테 다시 팔아달라고 하는 것도 봤다.


11. 세차를 하면 무얼하나

아.. 바닷바람.. 소금이 섞인 바람은 빗물에도 씻기지 않는 먼지들을 차에 묻히고는 한다. 세차를 하면 금새 더러워지거나 세차를 하자마자 비가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확실히 육지에서보다는 빠르게 더러워진다.

나는 세차하기 지긋지긋해서 그냥 더럽게 사는 것을 선택했다.


12. 보이지않는 그들만의 리그

제주에서 사업을 하려면 제주도민을 끼고 해야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낀 적이 많다. 심지어 꽤 큰기업임에도 실력이 좋은 외지인보다 평범한 제주도민을 영업직으로 쓰는 경우도 보았다. 섬이라는 독립된 환경의 영향이겠지만, 제주도에 학교가 많은 편이 아니다보니 사업을 하다보면 다 어느학교 선배 후배하고 있어서 외지인은 그 틈에 낄 수가 없다.

나는 심지어 접촉 사고가 났는데 '이 동네 살아요? 아버지 성함이 뭔가?'하는 얘기도 들었다. 사고가 났는데 우리 아빠 이름을 알아서 뭐할거냐고.. 흔히들 제주에서는 육지 사람들을 육지것이라고 하는것을 보면 말 다한것이 아닌가. 그들만의 괸당 문화가 있다.


13. 비행기 지연은 너무 흔한일

가끔 육지로 나가려고하면 비행기 지연은 왜이렇게 흔한건지.. 지연이 없는 날이 행복할 정도로 지연이 잦다.


14. 맛.이.없.어.요

물론 맛있는 식당도 많고, 유명한 곳들도 많다. 하지만 맛없는 곳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어느정도냐면 도X노피자가 맛없고, 신X떡볶이가 맛없을 정도다. 육지에서는 프랜차이즈에서 이런 맛을 본적이 없다. 식재료가 육지보다 풍부하지 않은 탓인지, 예전부터 제주도에서는 여자들이 일을 해오며 요리문화가 발달하지 않은탓인지 상대적으로 도민들이 추천하는 곳들은 기대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네이버 지도 평점도 4.5점 이하인 곳들을 추천한다. 그래서 도민들이 추천하는 맛집은 그냥 걸렀다.

왠만하면 먹고나와서 투덜거리는 내가 식당에다 대고 사장님 정말 너무하신거아니냐고 말을 한적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다니던 식당들만 가게 된다.


15. 맨날 술이야

도민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었는데, 매일같이 술을 먹었다. 즐길 거리가 부족한 탓인지 매번 술을 먹자고 한다. 그리고 술을 잘먹는 사람도 정말 많다. 낮에도 술을 먹고 밤에도 술을 먹고 새벽에도 술을 먹고 계속 술만 먹고 논다. 정말 멋진 자연경관이 지천이지만 도민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것인가보다.

하나 좋은 것을 꼽자면 날이 좋을땐 바다를 보며 술을 먹는다. 자연을 둘러볼게 아니라면 그 외에는 즐길거리가 부족하긴하다.


16. 주차할 곳이 많다.

그냥 아무데나 주차할만한 곳이면 주차를 하면된다. 공영주차장도 잘 되어있고, 공영주차장들은 저녁 6시 이후나 주말에는 무료이다보니 이용하기 편한다. 골목골목 어디에든 주차가 가능하다보니 서울처럼 차를 가지고 나가는게 두렵지 않다. 그러니 꼭 차를 가지고 가거나 렌트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제주도는 차가 편하다.


17. 대기시간 180분이요?

얼마 전 오프라인으로만 처리 가능한 업무가 있어 은행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제주 전역에 국민은행은 단 4개. 점심시간을 피해서 갔음에도 대기시간이 180분이었다. 작은 동네에 있을법한 규모의 은행이었는데도 사람이 참 많았다. 번호표를 뽑으니 대기 180분.

비단 이건 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디든 영업점 자체가 적다.


18. 아름다운 자연

힘들거나 지칠 때 캠핑의자 하나 들고 바다에 가면 모든게 괜찮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위의 모든 것들을 감안하고 살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예쁜 바다를 골라가는 맛이 있다. 그냥 책만 들고가서 바닷가에 털썩 앉아있기도 하고 바닷가의 버스킹을 보며 맥주한캔 하는 낭만도 있다.

오름도 너무 예쁘다. 같은 오름도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러 갈만하다. 100대 오름 깨기를 목표로 하는 지인이 있었는데, 오름을 함께 갈 때마다 탁 트인 자연을 보고 있을 때면 마음이 정말 뻥 뚫리는 기분이다.

조용한 동네를 걷기만해도 유채꽃이 만발해있고 돌담 사이를 걸을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제주도에서 나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에는 참 좋다.




지금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제주도의 삶에 대해 기록해보았다. 단점만 너무 나열해서 제주살이 단점을 쓴듯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참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인들이 제주도에 가서 살겠다고하면 말릴 예정이다..

딱 한달살이 정도가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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